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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가 백설과 만나면

by 무량화


눈발 휘날리면서 날씨가 쌔하니 맵고 차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바다, 멀리서 봐도 파도는 하얀 비늘 곧추세운 채 결결이 일어서있다.

꽤나 갯바람이 거센 모양이다.

춥다면 두문불출이 답이나 눈 오면 가보려던 곳이 있다.


길에 눈이 쌓이지 않았으며 거처에서 멀지도 않으니 옷 따시게 입고 홍매 보러 나간다

이런 날씨에 어델 가노, 잔소리나 간섭 같은 거 받지 않는 이 자유가 고맙기 그지없다.


올레시장을 거쳐 이중섭거리로 내려가는데 설렘으로 가슴이 울렁댄다.



엊그제 새봄맞이 입춘굿과 흥겨운 풍물패 구경하다가 올해 첫 매화와 조우했다.


이중섭 거주지와 이웃한 공원에서다.


아직 벙글지 않은 백매 그러나 홍매는 환한 표정 아가처럼 맑았다.


홍매를 만나자 눈이 온 날 다시 와봐야지, 고개 끄덕였었다.


하얀 눈을 소복 인 홍매를 그렸으나 바람도 바람이지만 그새 눈발 그치고 햇살 투명해 눈이 녹고 있었다.


중섭 가족이 잠시 살았던 초가지붕에 백설 하얬으며 뜨락 동백꽃이랑 털머위 포기에도 눈이 쌓였다.


눈 더 녹기 전에 얼른 공원으로 향했다.


매화나무 등걸에 얹힌 눈이 희끗거렸다.


몰입의 순간, 초점 맞추려 숨길 참아가며 한 장씩 사진에 담아나갔다.


잔바람결에도 아니 잔숨결에도 눈이 녹아내리는 거 같았다.


새소리에도 눈송이가 흩어질 거 같았다.


청량하게 들리던 새 지저귐조차 신경 쓰이다니.


사진 몇 컷 찍는 도중에 싸락눈이 흩날렸다.


방수점퍼 옷깃 위로 사락사락 내리는 눈.


변화무쌍한 겨울날씨가 고마웠다.



집을 나서던 오전 기온은 영하 2도였는데 지금은 영상 3도.


어느새 눈 그치고 하늘은 푸르러졌다.


중섭아재 초기지붕에 쌓였던 눈도 꽤 녹았다.


거처에 오니 오전엔 자취 감췄던 한라산이 중산간까지 드러나 있다.


하지만 언제 변덕 부릴지 모르는 날씨, 오후 늦게라도 싸락눈 말고 목화송이 같은 눈발 날려 깊은 눈 쌓이면 다시 홍매 보러 공원으로 향하리.


이처럼 자신이 좋아하고 즐기는 일을 하며 매인 데 없이 유유자적 지낼 수 있는 노년기라는 행복한 시기에 이른 지금.

노년은 예전의 내가 생각했던 거보다 한결 근사하고 아름다운 시기다.

이제는 열정 타올라도 담담한 심사되어 욕심 거두어들일 뿐만 아니라 삶의 여유 편안히 즐길 수 있으므로.

절로 마음 비워져 시샘도 욕망도 내려놓게 되는 이런 시기가 왔다는 건 매우 감사한 일이다.

세상만사 부러운 게 없어진 연배에 이르니, 다만 지금 바라는 바는 심신 건강뿐이다.

백설 아래 홍매 만날 목적이 있어서 행복했던 하루,


주어진 이 자리 여기에 만족하며 오늘도 카르페 디엠!


방금 창밖으로 시선 돌리자 눈보라 난분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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