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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그 쓸쓸함에 대하여

by 무량화


제목은 제법 그럴싸하지만 사람은 어디까지나 먹어야 산다는 이바구를 할 참이다. 어릴 때 선생님은 밥도 안 먹는 줄 알았다. 물론 변소도 안 가는 줄 알았다. 인간은 밥 수저 놓고 목구멍에 아무것도 넘어가지 않게 되면 이승과 작별한다. 동물만이 아니라 식물도 물 며칠 안 주고 방치하면 그냥 가버린다. 뭐니 뭐니 해싸도 생물체는 무조건 먹어야 생명을 이어갈 수가 있다. 제때 놓치지 말고 꼬박꼬박 잘 먹어야 잘 산다는 그런 단세포적 야그에 변죽만 울렸다.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한 데는 다 이유가 있고말고.



오전 11시 무렵 물만골 지하철역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80년대에 딱 한번 다녀온 마하사를 다시 찾아보고자 함이었다. 왜 딱히 마하사인가? 불공드리러 절집에 올라가는 건 아닐 터. 다만 오래전 무척이나 인상 깊었던 사하촌이 어찌 변했는가 궁금해서였다. 당시 삼십 대였던 난 마하사 가다가 만난 산동네가 어찌나 누추했던지 아주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땐 영도나 감천동 같은 피난민 부락을 아직 모르던 시절이라 그리 놀랐지 싶다. 우리가 살던 망미동 바로 건너편 황령산 골짜기에 있던 그 절에 대한 얘기를 듣고는 가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라고들 했기 때문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무려 사십 년 만에 가보니 어리둥절한 건 당연지사다. 우선 초입부터 몹시 헷갈렸다. 높은 건물이 하도 많이 들어선 데다 골목마다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라 물어물어 겨우 입구를 알아냈다. 요새는 아무리 남루하고 후미진 동네라도 마을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나 설렁설렁 언덕배기를 걸어 올라갔다. 예전에 보았던 궁색하고 초라한 집들의 변모를 걸으며 확인해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산언덕에 의지해 옹기종기 모여들었던 그런 집은 이젠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 스토리는 다음으로 미루고 하여튼 그렇게 마하사를 왕복으로 걸어서 다녀왔다.



찻길까지 내려오자 시장기가 확 돌았다. 벌써 시간은 세시 가까웠다. 그러나 아는 동네도 아니다. 아무 데나 들어가기 꺼려져 맛집 검색을 할까 했는데 너무 허기가 져 도리 없었다. 기왕이면 살던 동네인 망미동에 가서 점심을 먹으려 했으나 도저히 더는 걸을 수가 없었다. 기운이 다 빠져 주저앉을 듯 무릎이 풀렸다. 동시에 비척거려지며 어질어질하더니만 빙 도는 거 같았다. 폰의 배터리가 완전 끝나버린 것 같았다. 전기요나 히터를 끄면 방이 서서히 식어 마침내 냉골이 돼버리듯, 그보다 더 적절한 비유라면 자동차 기름이 바닥나 차가 멈춰 서듯. 연료가 완전히 떨어지면 차에서 더덜덜거리는 진동이 느껴지다가 슬그머니 시동이 꺼지고 만다. 이럴 때 전자동으로 엥꼬란 일본말이 따르는 것처럼 내가 그 짝이 났다.



마른 체형답게 비축해 둔 지방이 적으니 비상시 태울 에너지원이 없는 관계로 도시 저력이란 게 부족하다. 당장 열량 공급이 급선무다. 가까운 골목에 식당이 여럿 보인다. 그 와중에도 깨끗한 식당을 골라 들어갔다. 의자에 앉으니 당장 땅속으로 꺼질듯하다. 추어탕 전문집이라 들깨 추어탕! 주저 없이 단품메뉴를 외쳤다. 맛 따위 음미하기보다 일단 요기부터 하는 게 중요하다. 밥 한 그릇에 국 한 그릇 게눈 감추듯 비우고 나자 비로소 눈이 뜨임은 물론 기운이 차려졌다. 나이 들면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맞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머리가 맑아지더라는 체험 이후 일 년에 한 번씩 단식도 했고 한 끼쯤 건너뛰어도 별 무리가 없었는데 이상스럽다. 이래서 '나이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복기해봐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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