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스케치
지난해 상반기부터 복지관에 다녔다.
글에 사진 대신 간략한 컷 한쪽 혹은 삽화를 그려 넣고 싶었다.
지역 복지관 어반스케치 반에 등록을 했다.
재미가 붙을 즈음 봄학기가 끝났다.
가을 학기에 다시 신청을 넣었으나 수강 희망자가 많아 탈락됐다.
올봄에도 경쟁률 치열했다는데 다행히 통과돼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을 받으러 다닌다.
학교 공부도 그렇듯 배운 걸 열심 내서 복습하는 게 중요하다.
하건만 교실에 들고 간 가방은 집에 와 열어보도 않다가 다음 주 그냥 들고 가기 일쑤다.
당연히 혼자 연습하는 시간이 전무하니 그림솜씨가 늘리 없다.
따라서 도통 발전이 따르지 않으므로 내동 제자리걸음이다.
시간이 안 난다는 건 엄밀히 말해 핑계다.
진정 좋아 죽겠다면 미룰 겨를 없이 우선순위 일 번일 테니까.
그림 한 장 완성한 다음의 성취감이 글 한 편 맘에 들게 썼을 때보다 한층 뿌듯하다면 당연 그리했을까.
아직은 그 경계에 이르지 못해 정진이 따르지 않는 걸 지도.
어느 땐 괜히 한눈팔지 말고 평소 하던 놀이에나 집중하는 게 낫다 싶기도.
사십 년 넘게 이어온 글쓰기라 아무래도 익숙해져 편안하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글놀이다.
치열하게 순수문학에 매진했더라면 어쩌면 중도에 지쳐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른다.
문학 언저리에서 잡기 수준의 글과 즐겁고 자유롭게 놀았듯 어반스케치 경우도 마찬가지로 그림을 즐겨보고 싶었다.
흥미는 느끼나 연습시간을 못 내는 것은 아무래도 관심도가 높게 자리하지 않은 까닭이겠다.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는 걸 훤히 알면서도 일지처럼 매일이다시피 작성하는 블로깅에 매달리다 보면 그 생각은 계속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밖에도 사회적 역할이 있는 하루를 지향하다 보니 나름 해야할 일도 기다렸다.
지난주 수업을 시작하기 전, 우리는 다 함께 시공원에 자리한 스페이스 70 전시실로 향했다.
작년도 어반스케치 가을학기 참여자들의 그림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봄학기 때 같이 그림을 그렸기에 아는 이름도 더러 있어서 그림과 이름을 대조하며 보는 것도 나름 흥미로웠다.
대부분 처음 그림을 접했다는 그들은 뒤늦게 숨어있던 자기 재능을 발견해 신이 난 아이처럼 열정적으로 그리고 또 그렸다.
양선생은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면 아파트 단지를 비롯해 마을 풍경을 그려 내게 보내주곤 했다.
원근법 무시된 그녀의 어설펐던 첫 그림과는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스케치 선부터 안정되며 차츰 그림이 탄탄해졌다.
다른 이들도 일취월장이란 말처럼 신기하고도 놀랍게 그림솜씨가 늘었다.
부러운 생각보다는 그래, 뭐든 미쳐야 미친다 했듯 미친 듯 정신없이 빠져들어 몰입해야 이루어지는 법이거늘.
어반스케치에 과연 그만큼 뜨거운 애정이나 열정을 쏟았던가.
나는 정녕 그러하지 못했다.
봄학기 동안 한라산 웅자와 주택가 매화나무와 양옥 이층집을 그렸을 뿐이다.
그것도 겨우겨우.
즐겁게 흥겨이 신명 올라 붓질했다기보다 숙제하듯 어거지로 마무리했으니 영혼없이 무미건조한 그림일 밖에.
놀이라면 갖고 놀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야 진정한 놀이 혹은 프로 반열에 낄 수가 있을 터.
언제쯤이면 어반스케치가 글처럼 내게 자유롭고 편안한 놀이가 될 수 있을까.
예술은 태초 시원부터가 놀이에서 출발했다고 여겨온 나.
억수장마 질 때 원시인들은 동굴 속에서 화톳불 둘레를 돌며 춤을 췄거나 동굴벽에 무언가를 그렸을 것이다.
사냥감 떠메고 온, 운 좋은 날은 천지신명 향해 감사드리며 우우우~다 함께 노래 불렀을 것이다.
그처럼 그림이나 춤과 노래는 태초부터 있어온 순수한 놀이의 변형, 상형문자가 생긴 다음 나온 글은 막내급이겠다.
살아가며 행하는 모든 건, 일조차도 그래서 놀이로 파악하고 놀이로 즐기면 덜 힘들고 싫증도 덜 난다.
이민살이하던 때 일터를 난 놀일터라 불렀다.
그렇게 견뎌낸 당시를 벌충이라도 해주려는 듯 서귀포에 와선 날마다 즐거운 놀이에 빠진 채 여유롭게 자유 누리며 지내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그림은, 어반스케치는 또 하나의 감사한 놀잇감으로 글에 어우러지는 삽화 선물해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