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다도 제주에는 한가지 더 특별한 게 있다.
말이다.
제주는 서기 145년 탐라국 시절부터 일본 등지와 말을 교역했다고 역사서에 나와 있다.
고려조에서 조선조에 이르는 동안, 당시 국방의 주축으로서의 군마를 키워 낸 제주이기도 하다.
말 먹잇감인 초지가 많은 데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 날쌔게 치달리는 말을 가둬 놓기 좋은 환경이다.
하여 한라산 자락이며 높고 낮은 오름마다 말을 키운 흔적들이 다수 남아있다.
관광 상품 중에 흔히 승마체험이 들어있는 연유도 이에 기인한다.
조정 대신 중에 관직도 생소한 헌마공신까지 배출한 제주다.
말고기 전문식당도 마찬가지로 심히 낯설지만 꽤 있다.
이형상 목사가 남긴 탐라순력도를 우연한 기회에 구할 수 있었다.
20대 초, 출판사에 다니던 이종사촌이 세계미술대사전을 구해다 준 이래, 다시 묵직한 화집을 지니게 됐다.
그림에 담은 옛 제주의 기억, 그 아득한 기억의 실타래를 가끔 풀어보곤 한다.
근자에 꽂힌 부분은 말과 관련한 그림들이다.
공마봉진(貢馬封進)이라는 화제가 붙은 그림, 조정에 진상할 말을 징발해 제주목사가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광경을 그렸다.
몇 장을 더 넘기자 교래대렵(橋來大獵), 그런 제하의 호방한 사냥터 그림이 나온다.
임오년(1702년) 시월 열하룻날 진상할 산짐승을 사냥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어서 사슴, 멧돼지, 노루, 꿩을 얼마만큼 잡았다는 숫자까지 적어뒀다.
그림에는 대록산 소록산 거문오름 구두리란 지명이 명시돼 있어 현장감에 더해 친근감이 들기도 했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처럼 달리는 말 위에서 활시위를 당기는 포수 동작은 박진감이 넘쳤다.
순간 섬광 같은 게 와서 박혔다.
호기심이 있는대로 부풀어 올랐다.
하늘 아래 첫 마을이라는 교래리부터 가보기로 했다.
이는 한라산과 가깝다는 소리, 즉 산속 오지에 깃든 마을이 되겠다.
조선조 숙종 때만 해도 사냥터였다니 높고 깊은 산중 맞다.
자연스럽게 말 부리는 목자와 화전민들이 띄엄띄엄 산간에 깃들면서 부락이 형성됐다.
4·3 혼란의 와중 주민들은 산지사방 흩어지게 되었으며 다시 돌아온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현재는 거의 외부 이주민.
처음 갔을 때, 중산간에 있는 동네라 서귀포 시내와 달리 겨울엔 늦도록 눈이 하얗게 쌓여있었다.
산 아래보다 기온이 몇 도나 낮다고 했다.
이후 한라산 생태숲이나 사려니 숲길을 가려면 지나가곤 한 마을.
삼다수 공장 소재지이기도 하고 주민들은 표고를 재배하거나 토종닭을 놓아 키우며 아예 백숙 요리로 자리 잡힌 동네다.
교래자연휴양림, 제주돌문화공원, 물영아리 입구며 거문오름 들머리도 이 길목에 있어 드나드는 관광객 숱하다.
산북과 산남을 이어주는 마을이 교래리이기도 하다.
하여 아라동, 봉개동, 회천동, 와흘리, 대흘리, 선흘리, 덕천리, 송당리, 가시리, 수망리, 한남리, 신례리, 하례리와 접해 있다.
해발 1400m에 육박하는 붉은오름, 사라오름, 돌오름에서부터 물찻오름, 말찻오름, 지그리오름, 돔배오름 등에 둘러싸인 마을.
아슴하지만 분명히 한라산 웅자가 자애로이 굽어보며 품에 안은 교래리다.
기름진 초지가 지천이라 조선시대 관영 목마장이 있음직하다.
갑급 목장인 녹산장(鹿山場) 수준까지는 아니라 해도 산자락 따라 펼쳐진 초원이 워낙 넉넉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마사회 제주목장이 자리했다.
렛츠런팜 제주는 한국마사회가 설립한 경주마 육성목장이다.
65만여 평의 부지에 마사, 초지, 의료시설을 갖추고 좋은 마필을 생산하고 키워내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심사가 끝난 어린 말을 육성하는 역할과 교배를 통한 경주마 생산이 함께 이루어진다고.
경주마 목장 탐방도 가능하고 목장 올레 산책 코스도 있다는데 남조로 대로변만 따라 걸으며 구경했다.
하얀색으로 칠한 나무 울타리 너머 저만치에 제주 조랑말 서너 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다.
아직은 봄빛 무르녹지 않아 연둣빛에 가까운 풀밭, 이 일대를 조선시대에 누비던 사람들.
제주판관, 정의현감과 대정현감과 산마장의 김진혁 감목관이 참여한 교래대렵(橋來大獵)을 다시 훑는다.
대록산, 소록산, 검은오름, 여문영아리오름, 따라비오름 등이 표기된 숲에서 진상품 산짐승과 날짐승을 사냥하는 중인 교래대렵.
역사적 의미와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탐라순력도는, 고작 일 년 남짓(1702/3부터 1703/6) 봉직했을 뿐인 이 목사가 제주인에게 남겨준 귀중한 선물인 셈이다.
제주목사와 병마수군절제사를 겸한 이형상은 군비 점검을 비롯 지방관의 공적 업무수행을 위한 순력에 나섰던 구체적 사실을 이처럼 생생하게 기록화로 남겼던 것.
사냥터 어름에 쓰여있는 낯익은 오름 이름 반가웠고, 말 타고 치달리며 사슴 쫓는 기마병 외에 총을 겨눈 채 달리는 병사도 있어서 신기하기만.
그 그림을 펼쳐보며 목장 초지가 푸르름과 윤기를 더하는 오월에 구두미오름도 오를 겸 다시 찾기로.
구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산 25-2
신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남조로 16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