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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여정수첩 3ㅡ전쟁의 상흔 새겨진 연곡사의 봄

by 무량화


민족 수난사와 궤를 같이 하는 지리산 피아골.

피, 란 첫 글자 때문인지 왠지 휘청~ 느낌 아뜩해지는 지명부터 예사롭지 않다.


생생하게 증언되는 역사 속의 실제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임란 때 승병과 의병이 왜병과 싸우다 순절했는데 선대들이 흘린 피가 내 이루며 흘렀다 하여 피내골로 부르다가 피아골이 됐다고도.


6.25 난리 통에 지리산 피아골 일대에서 빨치산과 국방군이 피아(彼我) 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피아골로 굳어졌다고도.


좌든 우든 아니면 누가 옳든 그르든, 치열한 이념 대립장이었던 것만은 소설 태백산맥이나 남부군을 통해 얼추 알려진 사실이다.


낮에는 빨치산 토벌차 파견된 국군이 진을 치고 밤 되면 골짜기 기어 내려온 인민군 세상이 되던 시절.


한밤 사이에 판세 엎치락뒤치락, 대한민국 태극기와 북괴 인공기가 번갈아 올라갔다니 그 땅에 사는 민초들 삶은 얼마나 피폐해졌겠는가.


예나 이제나 전쟁이건 내전이건 무자비한 어떤 형태의 폭력사태가 발생하면 윗자리 인물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그 와중에도 큰돈 버는 건 돈 있는 자들이다.


애꿎게 피해당하는 건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 그중에도 아이와 여성들은 목불인견의 참상을 몸으로 겪는다.


인민군 즉 조선 인민유격대는 남한 내 좌파 남로당 조직 중 폭력 노선 따라서 산에 들어가 유격활동을 벌여 남부군, 공비, 빨치산으로 불렸다.


제주 4.3 사건 및 여수. 순천 사건을 통해 내전상황 야기시킴으로 이후 삼 년에 걸쳐 한국전쟁에 유리한 교두보를 쌓았던 그들.


이를 총괄 지휘한 남로당 총책은 박헌영이었고 전쟁 후 북으로부터 숙청 당해 개죽음에 이른다.


빨치산 곧 야산대는 지리산 백운산 소백산 태백산 덕유산 한라산을 근거지 삼았는데 그중에도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 피아골.



연달아 며칠 시야 흐리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쾌청하다.


이마 맑게 드러낸 산마루까지 조망권이 탁 트여 콧노래 흘러나오게 모처럼 날아갈 듯 상큼한 아침이다.


오늘만은 대중없이 사진마다 하늘을 잔뜩 배치시켜도 됨직해 마음까지 하늘을 날듯 가볍고도 푸르렀다.


청명하고 화창한 푸른 하늘 우러르자 한껏 고조되는 기분이나 연곡사에 드니 절로 옷깃 여며지며 숙연해졌다.


연곡사(鷰谷寺)는 통일신라시대 인도 고승인 연기조사가 창건, 고려 초기까지는 선을 닦는 도량으로 이름 높았던 사찰이었다.


통일신라 말과 고려 초기 선종의 대찰로 도선국사 현각선사 등 고승대덕이 많이 배출되었다.


그래서인지 뛰어난 예술성이 돋보이는 보물급 우아한 승탑 곧 사리탑이 여럿 남아있다.


제비가 연못에서 물장난 치며 놀았다는 자리에 세워진 절이라 이름에 제비 연(鷰) 자가 들어있다는데.


숭유억불정책에 숨죽인 채 명맥을 이어가던 연곡사는 혹독한 임란의 피해를 고스란히 당한다.


호남의 의병장 고경명 장군이 왜병에 맞서 싸우다 순절한 뒤를 이어서 항일투쟁을 벌인 의병장 고광순이 의병을 일으켜 연곡사로 집결시켰다.


그러자 절은 왜군들에 의해 송두리째 불태워져 폐사가 되고 만다.


그 뒤 어렵사리 중건을 했으나 한국동란 때 피아골 전투의 참담한 병화로 소실된 것을 다시 중건해 오늘에 이른 연곡사.


국보 제53호인 동 승탑 (東僧塔), 국보 제54호인 북 승탑 (北僧塔), 보물 제151호인 삼층석탑과 보물 제152호인 현각선사탑비(玄覺禪師塔碑), 보물 제153호인 동 승탑비 (東僧塔碑), 보물 제154호인 소요대사탑 (逍遙大師塔) 등 다수의 문화재들을 품었다.



'혈류성천(血流成川) 위벽위적(爲碧爲赤): 피가 흘러 강이 되니 푸른 물이 붉게 물들었다'에서 혈(血) 자와 천(川) 자를 따와 순우리말로 피내골이 되었다는 게 그럴싸하긴 하다.


한편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곡식인 피(기장)를 많이 심어서 피밭골이라 불리던 것이 변해서 피아골로 불리게 되었다는데.


합리적이기는 인근 마을이 피 직(稷) 자 직전리(稷田里)란 현재 지명이 있는 걸 보나따나 피밭골이란 설이 가장 부합되는데 하여튼.


피아골의 단풍이 그리도 핏빛으로 고운 것은 먼 옛적부터 골짜기에서 수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이 그렇게 피어나는 것, 이라고 이 비극의 현장을 읊은 작가도 있다.


단풍만이 아니라 신록이나 녹음 또한 눈부신 데다 여름날 차디찬 계류가 좋아 숱한 산행인들을 이 계곡은 불러들인다.


지리산 봉우리인 반야봉 기슭과 노고단 기슭에서 발원한 물이 치달려내려 질마재에서 만나 큰 계곡을 이룬 피아골.


피아골 골짜기는 임걸령에서 연곡사에 이르는 서늘한 계류와 깊고 푸른 숲이 조응하며 서로 어우러져 최절경을 이뤘다.


날씨가 받쳐줘 그 어느 곳보다 꼼꼼스레 둘러본 연곡사.


앞산 자락 연둣빛 신록 사이 산벚꽃 하얗게 피었고 봄꽃 만화방창 흐드러지게 어우러진 연곡사는 그러나 환희작약하며 둘러볼 수 없는 곳.


경내 여기저기 알싸하게 남겨진 비문 글씨 아니라도 가슴 무겁게 짓누르는 그 무엇이 피아골 골짜기로부터 비릿하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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