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겨울이 아쉬운 듯 모지락스럽게 샘 부리던 시샘달이 접히고, 산과 들에 봄물이 오르는 물오름달도 지나갔다.
바야흐로 만화방창 봄이 활짝 열리는 사월.
지리산 자락 온 동네가 노랫말 그대로 울긋불긋 꽃대궐이다.
산자락마다 몽실몽실 산벚꽃 솜사탕처럼 부풀고 팝콘 터지듯 조팝나무 하얀 꽃 흐드러졌다.
꽃보라 꽃구름 꽃물결에 싸 안긴 채 꽃비마저 휘날려 몽롱히 취하게 만들었다.
꽃향연 하도 질펀해 콧노래 가벼이 왈츠를 추듯 사뿐한 걸음새 내딛게 하지만 올봄도 역시나 심한 황사로 자연마저 몸살 앓는다.
펀치 센 코로나 타격에 휘청대는 지구촌일망정 그 무엇이 오는 봄 막을쏜가.
꽃철 때맞춰 떠난 일 주간의 남도 여행길.
십 리에 이른다는 화개 벚꽃길뿐이랴.
섬진강 사이에 두고 양켠 가로 따라 줄지어 하얗게 피어난 벚꽃 한창 절정기였다.
우리는 환호하며 꽃가람길에서 연방 사진을 찍어댔다.
비 온 뒤 하루 잠깐 푸른 하늘, 이어서 지독한 미세먼지로 시계 제로라 자꾸만 눈을 비벼댔다.
앞산 봉우리는 물론이고 건너편 풍경마저 희끄무레, 건공중에 뜬 해조차 숫제 부황 든 낯빛이다.
서편제 영화에서 시력 잃어가는 송화가 그러했듯 사물의 윤곽이나 겨우 잡힐 뿐이다.
폼페이 최후의 날 영화에서 화산재가 쏟아져 내리듯 해괴망측한 세상이 눈앞에 도래했다.
아니 아니 지구 종말의 날이라도 온 듯 세상천지 무슨 이런 변고가 다 생기나?
미세먼지인지 황사인지의 진원지인 이웃 나라는 우리에게 해악만 끼치는, 생각사록 고약한 이웃 맞다.
인천공항을 통해 일착으로 코로나를 확 퍼뜨렸으며 동북공정으로 역사를 왜곡시키질 않나 싸구려 일회용품 만들어 내느라 지구촌 환경을 오염시키질 않나.
그런 나라가 이웃 국가라니 땅덩이를 옮겨 이사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진짜 답답하다.
이번 남도여행 중, 기류 탓인지 최악을 기록했던 전남북 지역의 황사는 주의 경보까지 발령하기에 이르렀다.
일부러 작정하고 택한 날이 하필이면 바로 장날이었던 거다.
하기야 해마다 봄 내내 이 곤욕 치르며 그래도 무던히 참아낸 백성들이 사는 나라이니 뭐....
최적 시즌의 벚꽃 제대로 즐기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이 불평으로 터져 나오는 건지도.
그나저나 아쉽도록 짧은 봄꽃의 한 생이다.
화개에 닿은 때가 절정기였는데 어느새 하롱하롱 지고 있는 꽃 이파리.
화무십일홍이라더니 고작 삼일천하 누리고 떠나는 벚꽃의 영화가 속절없기만 하다.
정치권에서 자주 회자되는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
어떤 부귀영화도 영원하지 않거늘 하물며 잠시 거머쥔 권력이랴, 해서 퇴임 후를 두려워할 밖에.
막강한 힘을 남용한 자일수록 동서고금 막론하고 변함없이 딱 적용되는 진리다.
이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리.
꽃놀이라면야 바로 지금 이 순간 꽃그늘에 들어 향에 취한 채 그저 잠시 하나 되면 그만인 것을.
이럴 때 언어는 거추장스러운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꽃잎 시나브로 지다가, 바람 불어 꽃잎 눈발처럼 사태져 내린다면 차라리 하늘 우러러 꽃잎 아래 그대로 서있어 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