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모처럼 엄마 꿈을 꾸었다.
느닷없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십여 년 만에 꾼 꿈이기 때문이다.
그간 엄마 꿈은 고작 두어 번이나 꿨을까말까다.
한번 보고 싶어도 어째 꿈길에서라도 좀 찾아와 주지 않는 걸까, 은근 야속해 한 엄마였다.
오랜만에 꾼 꿈이 소중해 얼핏 사라지지 않도록 꿈 내용을 공굴리며 한참을 가만히 누워있었다.
허망한 꿈답게 꿈이란 게 오분 정도만 지나도 희미하게 스러져버리기 때문이다.
꿈에서도 이렇게 누워있었다.
온화한 표정의 엄마가 나에게 이불깃을 어깨 위로 덮어주던 생생한 느낌, 집이 아니고 호텔 같은 곳이었다.
전체적으로 편안하고 느긋한 느낌이 들었다.
꿈은 허무맹랑하기보다 무언가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한 암시 또는 내면의 강렬한 소망을 전해주는 메신저라고 한다.
경험과 지식이 저장된 무의식의 창고 속에서 골라낸 감정, 그중에도 심층 저 깊은 곳에서 걸러진 감정이나 기억의 재편집이 꿈이다.
굳이 프로이트 식 꿈 분석을 동원하거나 해몽사전을 찾아볼 필요도 없이 꿈 분위기상 길몽이라 여겨진다.
아마도 이 꿈은 언니집에 보관되어 있는 엄마 사진 몇 장을 언니가 건네주어서일 게다.
그 가운데 한 장인 아래 사진은 아들의 대입 합격 소식 듣고는 하늘을 날 듯한 기분으로 엄마 모시고 불국사에 가서 찍었다.
이 외에도 화엄사에서는 엄마랑 온 가족이 찍은 사진도 있으며 남편 친구네 가족이랑 찍은 사진도 끼어 있었다.
아래 사진들마다 심한 황사현상으로 마치 꿈에서 본 듯 아련하고 아릿한 분위기라 외려 고찰의 느낌이 더 살아있는데, 순 아전인수 격인가.
지리산 국립공원 안에 있으며 화엄경(華嚴經)의 화엄 두 글자를 따서 이름 지은 화엄사는 꽤 여러 차례 찾은 절이다.
여름휴가 때 가족들과 또는 산행 차 화개 쪽으로 지리산을 가면 들리는 화엄사였다.
완전한 깨달음을 뜻하는 화엄이나 어쩐지 장엄, 위엄이란 단어가 겹쳐지며 절로 엄숙 경건해지는 화엄사다.
오랜만에 와보니 담쟁이덩굴 추상화로 그려진 돌담을 한참 돌아야 했던 입구부터 완전히 변해버려 어리둥절해진다.
다만 단청의 호사 입히지 않고도 담담함이 외연스러운 각황전만이 석등 거느리고 옛 모습 그대로라 반가웠다.
대한민국의 국보 제67호로 지정된 화엄사 각황전(覺皇殿)은 중층(中層)의 웅장한 건축물로 신라 문무왕 때 만들어졌으나 임란으로 불타 조선시대 인조 때 복구한 불전이다.
정말이지 모퉁이 슬쩍 돌아 기둥이라도 얼싸안고 싶을 만큼 예전 그대로임이 고맙기만 했다.
세상 만물에는 제각각 나름의 감정이 서려있게 마련이다.
낯설 정도로 큰 변화를 보인 화엄사이나 그래도 변함없는 석등이며 석탑도 미쁘기 그지없었고.
각황전 규모에 걸맞게 거대한 석등은 국보 제12호로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것으로 높이가 무려 6.4미터나 된다.
화엄사에 소장되어 있는 영산회 괘불탱화도 국보 제301호다.
각황전 뒤편 토종 홑겹 단아한 동백꽃 밀밀한 숲 역시 옛 자태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동백 숲을 돌아가면 탑전이 나온다.
이곳에 세워진 화엄사 4사자삼층석탑은 국보 제35호로 다보탑과 더불어 완성도가 높은 탑으로 국가 보물이 됐다.
그 외에도 대웅전, 석탑, 탱화 등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다수를 품고 있는 화엄사다.
시나브로 꽃잎 휘날리던 홍매,
화엄사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홍매로 유명한 일명 부용매인 화엄사 매화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85호로 물경 삼백 년 생이다.
제철 지났어도 여전 시선 붙드는 홍매화 선물처럼 아직도 기다려 줘 뜻밖의 기쁨이었으며 분분히 날리는 벚꽃잎은 환영의 꽃가루 컨페티 같았다.
그랬다. 집 나가 오래 떠돌다 귀향한 탕자를 너그러이 품어 안은 아버지처럼 화엄사 너른 품은 무한 푸근히 날 감싸 안아줬다.
반가이 달려 나와 초췌해진 탕자의 발에 신발을 신겨주고 귀한 반지를 끼워주는 대신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하얀 벚꽃잎....
일체유심조라, 갑갑하게 만드는 황사 먼지도 타박 대신 생각 고쳐먹기로 했다.
위치: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