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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골목에 전깃줄 얼기설기 -초량 골목길 1

by 무량화

대기 청명하다면 조망권 좋은 데를 찾겠지만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이다.

꿩 대신 닭, 전부터 염두에 두었던 초량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수정동 산복 도로도 싹 훑었다.

부산 살 적에 어쩌다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산복 도로를 지난 적이 있었다.

아마도 밤 모임에 참석했다가 서둘러 귀가하면서 급한 마음에 아무거나 집어탄 결과였지 싶다.

생판 모르는 낯선 동네를 굽이굽이 감돌아 달리는데, 저 아래로 부산항 야경이 무척 화려하게 펼쳐지는 게 아닌가.

그 후 중앙동에 나갈 일이 생기면 역부러 연산동까지 걸어가 86번 버스 타고 그 산복 도로를 지나 보곤 했었다.



육이오 전쟁통에 피난민들이 모여들며 부산역 앞 구봉산 자락 따라 판잣집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산기슭 타고 오르면서 형성된 하꼬방촌이라 집이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서로 어깨 비비며 붙어 있었다.

전후 삼십 년이 지났어도 언덕배기 그 동네는 당시도 남루하니 꾀죄죄한 모습인 채 슬럼화된 마을이었다.

연탄 리어카도 오르기 힘든 비좁은 도로 사정, 단지 버스 길이 뚫린 까꼬막길로만 산동네는 문명화된 다른 마을과 이어졌다.

불이 나도 소방차가 접근하기 힘들어 골목마다 소방수 통이 비치돼 있던 도심 속의 오지로 더없이 낙후된 채였다.

이번에 돌아보니 곳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며 전보다는 많이 발전되고 말쑥하게 현대화된 면모 보였지만 여전 가풀막진 언덕길 오르내리기 숨찼다.

오래된 이런 동네가 다 그렇듯 얼기설기 드리워진 전깃줄 어수선해, 사진 찍으려면 하도 걸리적거려 풍경 하나 옳게 건지기 쉽지가 않았다.

처음엔 요령껏 전깃줄 배제시키려 요리조리 각도 바꿔봤으나 결국 소용없는 일이라, 그래~ 이런 게 묵은 골목 이미지야!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산복 도로에 서니 부산역은 납작해 보이고 재개발에 들어간 북항이 질펀히 깔렸으며 바다에 뜬 부산대교만 아리따웠다.

한국해양대가 있는 아치섬이 저만치 자그맣고 영도 봉래산이 건너편에서 맞짱을 뜨겠다며 다가선다.

그만큼 고도가 높은 산복 도로라 날씨 좋은 날은 전망이 좋겠는데 하긴 요샌 도시 스카이라인이 고층건물로 하루 다르게 변해간다.

골목길 걸으며 본 풍경 하나가 그래도 따사로운 그림이 되어 미소 머금게 힐링시켜주면서 기분 좋은 선물로 남아있다.

한 아낙이 집 앞 빈터에 텃밭 일궈 오이를 심고는 덩굴 타고 오르라며 얼기설기 줄을 엮어놨는데 어떤 설치미술 작품이 이런 감동을 줄까.

두 장의 사진을 얻은 것만으로도 골목길 마실은 흡족한 소풍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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