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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품은 이바구 길 -초량 골목길 2

by 무량화

끊길 듯 끓길 듯 이어졌던 거미줄 같은 초량동 골목엔 동네 사람 엮어준 마을우물, 산복도로, 도랑, 나른한 철길....

부산 소설가 조갑상의 <바다가 보이는 골목길>에서 회고한 유년의 초량 골목길이다.

작가는 순수의 시간으로 그곳을 그렸지만 난리통 하꼬방촌, 산복 도로 아래 남루했던 동네.

일제강점기 시절은 여러모로 노른자 땅이었으며 일본 대사관과 차이나타운을 아우른 초량은
한반도의 관문인 부산역과 마주하고 있는 동네다.

초량초등학교 정문 좌우 담벼락에는 사진과 그림과 도표로 초량의 근세사가 일목요연하게 적혀있다.

긴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학교답게 유명 한류스타가 배출되었음도 뻐겼다.

우뚝 솟은 구봉산의 정기를 타고났음인가.

삼일운동에 참여한 후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 동참한 허정 선생.

재불 거류민회를 이끌었으며 미국 한인 교민 총단장을 역임하였고 정부 수립 후 귀국
제헌 국회의원, 국무총리 서리, 이승만대통령 하야 후 대통령 권한 대행직을 수행한 허정선생이 초량 출신이었다.

태어나기는 기장이나 경남 최초의 신여성 교육기관이자 3.1 운동의 깃발을 들었던
독립운동의 산실 일신여학교에서 수학한 해암 박순천 여사.

기미만세 사건에 앞장섰기에 일 년 육 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광복군 비행사가 되겠다며 일본여자대학에 진학했다.

귀국 후 야학을 개설하고 부인 신문을 창간했으며
야당 국회의원이 되면서 민중당 당수였던 걸출한 여장부 사진도 여기 걸려있었다.



골목끼리 하나로 이어진 수정동 출신으로 부산 최고의 수재 소리를 들으며 고등학생 때 일찍이 시조시인으로 등단했으나 서른 하나에 요절한 시인 김민부.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리는 마음>을 쓴 시인이다.

초량 가파른 언덕배기에 김민부 전망대가 마련됐다.


초량초등학교 출신들 자랑도 이 골목에서야 빼먹지 않았다.


나이 지긋해질수록 가요계 최고의 예인 대접 받는 나훈아. 입담으로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경규, 음악감독 박칼린 이름도 학교 앞에 적혀있었다.

초량초등학교 맞은편에는 초량교회가 솟아있는데
개항기 때인 1892년에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가 설립했다.

외국인이 세운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이다.

신사 참배 반대 운동과 3·1 독립운동의 영남 지역 거점 교회였다.

육이오 전쟁 당시 전국에서 몰려온 피난 목회자와 성도들이 통회 구국 기도 운동을 펼쳤던 교회다.

초량 골목 초입 학교 주변에서 서성인 발걸음, 다음은 이바구 길 따라 본격 나설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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