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 줄기 일자진(一字陣)으로 적을 맞으리."
용틀임하듯 거친 노량의 물살을 바라보며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 충무공.
소설이지만 시에 가까이 읽히는 김훈의 <칼의 노래>를 다시 펼쳤다.
처음 읽을 때 칼의 노래라기보다 칼의 울음을 듣는 듯, 장군의 사무치게 서늘한 외로움이 줄곧 가슴을 옥죄어 들어 먹먹했었다.
슬픔이 복받쳐서 혼자 울고 싶을 땐 소금을 구워 바치던 강막지라는 종의 집에 가서 울었던, 위대한 성웅 이전의 인간 이순신.
건조한 직시와 냉철한 통찰이 어우러진 비장한 문체로 삶의 정수를 뽑아 올렸다고 평가되는 소설이다.
난중일기를 토대로 썼다고 한다.
미주 중앙일보에서 미 해군 연구소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함을 선정 발표한 기사를 만났다.
첫 번째로 든 전함은 당연 미제, 미국 독립전쟁 중 해양 대국 영국의 해군을 무력화시킨 목재 철갑선인 USS 컨스티튜션이다.
영국 전함의 집중 함포사격을 받았지만 포탄이 철판을 맞고 튕겨나감으로 불패의 신화를 이루며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한 축이 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가 그보다 206년 앞서 만들어진 거북선이다. 독창성과 과학적인 측면에서 독보적 존재인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이다.
만일 영국의 넬슨 제독처럼 국가 차원의 거국적인 지원을 받아 무기와 배가 충분히 주어졌다면, 뛰어난 전술과 거북선으로 일본을 점령하고도 남았을 이순신 장군이라는 말이 맞다.
1545년에 조선에서 불멸의 명장 충무공이 태어나 풍전등화 같은 이 나라를 왜적으로부터 지켜낸 구국의 영웅 맞다.
임진왜란의 막바지 백의종군하던 장군을 1인칭 화자로 하여, 정유년 봄에서부터 전사하기까지의 2년여를 다룬 <칼의 노래>다. 누란의 위기에 처한 조선의 마지막 보루 되어 묵묵히, 몰려오는 적을 힘겹게 물리치는 실존적 고뇌자 이순신을 간결한 문체로 그린 소설이다.
태풍 앞에 곧 꺼질듯한 사직의 등불을 붙들고 계속 보채대는 선조는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할 줄 몰랐고, 조정의 권력자들은 서로 분당을 지어 패를 갈라 다투었다.
전쟁을 돕겠다고 와서는 진탕 퍼마시고 즐기며 오히려 뒤로 은밀히 왜와 내통하는 명군은 도움보다 해악이 컸다,
난리 통의 백성들은 조밥에 짠지로 연명하다가 그도 떨어지면 풀뿌리 찾아 헤매며 굶어 죽기 예사이던 당시.
백성들은 얼굴에 코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왜군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코는 왜군들이 일본에 가져가는 전리품이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이니 바다를 왜적들의 시체로 가득 채우고 싶다 할 정도로 뼈에 사무친 증오심을 보이면서도, 인간으로서 느껴지는 적들에 대한 연민마저 뒤엉키던 이순신이다.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전술과 거북선을 만든 이순신 장군의 업적만을 언급해 왔던 일반 위인전과는 달리, 이 소설은 역사 속의 한 개인으로서 이순신의 내면적 번민을 담백하게 표현하였다.
전투에 임하는 심정이나 한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장군으로서의 고뇌는 물론이고 혈육의 죽음을 대하는 심정, 특히 왜군에게 셋째 아들 면을 잃은데 대한 슬픔, 부인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님에 대한 효심 등,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여러 감정들이 비릿하도록 선연하게 표현되었다.
위대한 영웅의 모습 이전에 혼란한 세상과 전쟁, 그리고 죽음 사이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의 모습이 읽는 내내 쓸쓸하고도 절절하게 다가섰다.
조선이 택한 유교 이념에서 왕과 백성은 군사부일체라는 말처럼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로 묶인다.
왕은 아버지로서 백성을 돌봐야 하지만 선조는 일본군이 한양에 도달했을 때 궁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른다.
선조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에 이른 국운. 화급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에게 면사첩을 써 보낸다.
이순신은 왕에게 받은 면사첩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머리맡에 두고 생활하며 왕이 아닌 적에게 죽기를 바란다.
이순신은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라고 하였다지만 그의 최후는 죽고자 하여 죽은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임금의 붓에 자신이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임금은 강한 신하인 이순신을 두려워했다.
왜란에서 큰 공을 세운 이순신은 가장 큰 공을 세웠기에 백의종군하게 되었고, 가장 큰 공을 세웠기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다.
13척의 판옥선뿐인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지형을 활용하는 뛰어난 지략을 구사하였으며, 앞장서 군대를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하여 결국 133척의 적선과 맞서 승리한, 충의 빛나는 구국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 장군.
바다를 지키는 이순신은 임금이 자신에게 의지할수록 그를 가여워했고, 임금이 자신을 두려워할수록 그를 무서워하였다.
장군은 천지 간에 마음 둘 데가 없었고 몸 둘 데도 없었다.
임금의 손에 죽지 않으려면 왜적과 싸우다 죽어야 했다. 그것이 역설적이게도 그가 사는 방법이었다.
무인에게 칼은 자신의 분신이다. 소설은 그런 칼로 이순신 장군 자신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장군의 검명(劍名)인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 즉 한 번 들어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는 문장은 한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장군으로서의 소망이자 고뇌의 결산이 아니었을까.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후세들에게 자랑스럽게 알려야 할,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구국의 영웅이자 특히 이 시대 한국 지도층들이 본받아야 할 귀감임에 틀림없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