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하나에 씨앗 엄청, 왕도깨비가지 리포트

by 무량화


아미만 드러난 산방산이 시야에서 곧 사라질듯한 위치다.

화순 곶자왈과 소떼가 풀을 뜯던 목장의 경계지점, 완만한 언덕 바로 아랫녘이다.

이삼일 뒤면 동지, 한겨울임에도 목장터에는 연초록 식물들로 봄기운이 감돌았다.

자잘한 클로버, 광대나물, 꽃다지와 별꽃풀 등이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있다.

풀잎들 사이로 흰 버섯 비슷한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기에 다가갔다.

발끝으로 건드려보니 활짝 벌어진 왕도깨비가지 열매였다.

안쪽에 자잘하게 들러붙은 씨앗 수량에 그만 질겁을 했다.

땅에 떨어진 열매는 수분을 접하면 스스로 탁 터지며 속에 저장된 씨앗을 뱉어내는 듯.

가만, 그렇다면 열매를 꼼꼼하고 알뜰히 거두는 일이 급선무겠다.

나부터 열매 하나라도 제거하므로 하느님이 지으신 우주의 한 모퉁이를 살뜰하게 보듬어줘야 하리.

환경을 어지럽히는 온갖 병폐들로 시름에 잠긴 지구별을 위해 빗자루를 들어야 하리.



왕도깨비가지는 가짓과 꽈리 속 식물이다

이름 그대로 도깨비처럼 괴이쩍고도 험상궂은 형체를 가졌다.

현재 목장 주변에서 왕성하게 퍼져나가고 있는 이 식물은 동종 중에서 가장 큰 식물에 붙는 왕(王) 자까지 딸려있다.

'왕'자가 붙었듯 외형이 엄청 크고 무성해 50-100cm 키에 가지가 여럿으로 갈라져 한 그루가 숫제 덤불숲을 이룬다.

이리 살벌하고 지독스런 게 곶자왈 주변에 군락을 이뤄 점점 더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한국의 토종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외래종이라며 진작에 환경부에서 유해식물로 판정한 바 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원산지인 다년생 이 식물은 아마 건초 수입 시 딸려왔지 싶다.


줄기와 잎맥마다 바늘 같은 가시가 돋아있어 암튼 보기에도 험상궂은 식물이다.


구글 사진 옮김


여름내 무성하게 자라 숲을 이뤘던 왕도깨비가지는 열매가 익어갈 즈음 예초기로 거의 다 베어졌다.

그러나 목장터만 예초기가 사용됐다.

산자락이나 숲으로 번진 그 식물은 키대로 자라 지금은 잎 지고 노란 열매만 오소소 매달려있다.

멀리서 보면 유채꽃이라도 살랑대는 줄 알겠지만 노랗게 익은 왕도깨비가지 열매들이다.

예초기가 지나간 목장터 역시도 그 식물이 사라진 게 아니다.

뿌리짬 줄기에서 새순이 올라와 왕성한 생명력으로 키 돋워 세력 넓혀가는 그 풀은 다시 옥토를 장악해 나가고 있다.

한라산에 눈이 허연 한겨울이건만 이 식물만은 독야청청이다.

아마도 명년 봄 활기차게 가지 뻗고 키 움쑥 키워 다시금 수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그간 왕도깨비가지가 눈엣가시처럼 거슬려, 보이는 족족 전지가위를 들이댔는데 그 정도로는 소탕되기가 어렵다.

어쩌다 일회용으로 환경단체에서 현수막 내걸고 소탕작전을 펴봤자 소용없다.

화순 마을회에서 주부들 동원해 한나절 열매 수거했지만 겨우 눈 가리고 아웅한 격이었다.

왕도깨비가지에 명승지 잠식당하기 전에 더 본질적이고 대대적이며 지속적이고 근원적인 대책 수립이 요망되는데.

도나 시 차원에서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 면이나 리 단위에서 그나마 하는 시늉이라도 낼까.

열매를 달기 이전, 적어도 여름철에는 이 식물을 면도기로 턱수염 밀듯 깔끔스레 처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해마다 영역이 늘어나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터.



가을 곶자왈에 자연학습 견학을 온 유치원 아동들 조그만 손에는 곧잘 노란 열매가 쥐어져 있었다.

딴에는 노랑 방울같이 예뻐서 가시에 찔리며 취한 왕도깨비가지 열매이리라.

양 갈래머리를 쫑쫑 따내린 소녀가 검지에 일회용 반창고를 감고는 손가락을 호오 불었다.

이 열매를 매단 식물은 줄기 전체를 비롯해 잎맥 위로도 가시가 날카로이 돋아있다.

열매꼭지에도 머리카락같이 가늘면서 강한 가시가 나있어, 보나 마나 열매를 맨손으로 따다가 찔렸으리라.

이 가시에 찔리면 한동안 아리고 또 아리다.

해서 열매는 하나씩 감귤 따듯 전지가위로 꼭지를 절단시켜 따낸다.

그렇다고 잡을 곳이 있느냐 하면, 가지고 줄기고 잎이고 가시 투성이라 어디도 만질 데가 없다.

코팅된 목장갑쯤은 마구 찔러대는 가시다.

최대한 손 조심하며 몸 사려가면서 가위질을 해도 어느새 가시에 찔려 아릿거린다.


곶자왈의 무뢰한 왕도깨비가지, 난생처음 희한하게 생긴 고약한 식물을 만나 목하 전투를 치르고 있다.

누가 시켜서 한다면 부담이 돼 재미없겠지만 스스로 자원한 일이라 보람이라는 묘미도 느낀다.

숲에서 재재거리는 새소리 들으며 수행하듯 왕도깨비가지 열매를 구도정신으로 따내고 있는 중이다.

동안거 들어간 승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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