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가를 지날 때는

by 무량화


밀린 일을 정리하고 좀 늦게 퇴근하는 길

일몰 후라서 어스레해진 도로를 달리는 차량마다 헤드라이트를 밝혔다

연못 근처를 지나는데 양편으로 차들이 멈칫거리며 서기 시작한다

통상 구급차나 소방차가 지날 때 길을 터주느라고 차도 옆으로 붙어 서서 그들이 원활히 빠져나가도록 배려해 준다

그러나 사이렌 소리도 없었는데 차들이 왜 길가에 서서 기다리는 거지?

뉴저지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호기심 천국' 기어이 차창 내려 고개 길게 빼고 내다보니...

길을 건너는 구스(goose) 가족이 전혀 서두름도 없이 그야말로 겁도 없이 뒤뚱거리며 대로를 횡단 중

여유만만, 급한 기색이라고는 조금치도 없으니 종종걸음 칠 리도 만무하고 달리는 녀석 역시 없다

일사불란하게 부모 뒤를 졸졸 따르는 털 부숭이 새끼들까지 똑 같다

마치 자기네 뜨락을 산책이나 하듯 그 행보가 너무도 당당하고 천연스럽다

유유히 좌우로 궁디 흔들며 앞장선 어미를 따르는 털 부스스한 아기들, 예닐곱 쯤 되는 분대의 이동이다

건너편 공원에서 놀다가 연못으로 잠자러 가는 길인가 보다

녀석들이 완전히 건넌 다음 차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끔 도로 표지판에 구스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만날 적이 있다

구스가 길에 나올 수도 있으니 운전 조심하라는 사인이다

분명 인근에 늪지나 연못이 있을 것이다

차를 돌려 연못 가까이 다가가 보니 못 가에서 푸드덕거리며 샤워하는 일가족은...

인적이 성가신 듯 부들과 수련 무성한 연못 가운데로 무리 지어 멀어졌다. 2002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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