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May 04. 2024

온천천에서 수영강 따라 광안대교까지

부산 스토리


산책로 아름다운 온천천을 따라 하류로 내려오다 보면 만나게 되는 수영강.

금정산에서 발원한 온천천은 수영강 한 지류로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선로가 물길 위로 이어진다.

온천천이 흘러든 수영강은 이때부터 대폭 세를 늘려 너른 강이 된다.

과거 수영강은 철마 노포동 일대 농축산 폐기물과 도시 쓰레기 뒤섞여 냄새 지독히 나는 오수였다.

부산을 방문한 교황이 수영비행장에 내리던 날, 구경꾼이 구름처럼 강변에 모였던 80년 중반까지만 해도 그랬다.

정수시설이 들어서기 전이라 악취 심했으며 강변은 정비되지 않아 너저분했다.

90년대 초에 잠시 근무한 적이 있는 모 신문사에서 문화산책 코너를 맡았다.

부산지역 사적지를 탐방하던 중 수영 강변에 선 '정과정' 유적을 찾았을 때 얼마나 후미진지 겁이 날 지경이었다.

강가 모래톱이던 자리는 폐타이어 더미가 방치돼 있었으며 가건물과 돼지우리까지 있어 퍽 을씨년스러웠다.




강산이 두 번 바뀐 세월은 그냥 흘러간 게 아니었다.

잘 다듬어진 강변로 따라 데크길 걷노라니 센 강 못잖은 서정 어린 운치마저 피어올랐다.

길가 조경지에는 무더기 진 영산홍 붉고 풀숲엔 토끼풀 무성했다.

강가 언덕엔 덤불진 찔레꽃 막 피기 시작했고 애기똥풀꽃이며 괴불주머니꽃 깔렸으며  산자고 하얀 꽃 살풋 고개 숙였다.

경제발전으로 생활의 질이 높아지면 날로달로 도시 스카이라인도 변하긴 하지만,   
삶터 가까이 공원이 들어서고 어딜 가나 잘 가꿔진 꽃과 나무들이 반겨주는 대한민국.

 2천 년대 초 뉴욕과 워싱턴을 구경하면서 언니가 크게 감탄한 부분은 공원의 다양한 수목과 화초들이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 실정은 지금의 눈부신 변모란 상상도 못 했으니까.

 


건너다 보이는 해운대 장산은 꽤 듬직한 산이나, 산 중턱까지 촘촘 들어선 재송동 아파트로 그 우람한 웅자가 반감됐다.

생태계 살아나 수질 맑아지니 수영강 물바람 푸르러 좋고 해질녘이면 통통 튀어 오르는 숭어 점프 대회도 볼만하다.

풀쩍 뛰는 순간 하얀 몸체 반짝했다가 곧장 떨어져 잠시 파문 남기고는 이내 강물은 잠잠히 흘러간다.

소리 나는 찰나 수면을 바라보면 어느새 고기는 물속으로 낙하해 가뭇없다,

어디서 튈지 몰라 두리번거리며 다음 순간을 침 삼키면서 기다리는 재미도 미상불 즐거웠다.



꽃도 보고 산도 보고 일찍 오른 낮달도 올려다보며 걷노라면 어느새 망미동 지나 민락동.

강 건너 동네 프로필이 그쯤부터 예사롭지 않아 진다.


영화의 전당 지붕선 날렵하게 날갯짓하는 바로 옆 건물, 실루엣이 자못 묵직하다 .

노을빛 반사로 순금처럼 번들대는 황금색 건물은 신세계백화점이다.

근처 센텀시티는 일찍이 수영만 지가를 천정부지로 끌어올렸다는데 이젠 마린시티에 바통을 넘겼다고.



휘영청 달 거느린 채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데크길 따라 걷다 보니 빌딩 숲에 어느덧 불빛 점점이 밝혀진다.  

광안대교 교각에 걸린 마린시티는 도회적 세련미 뽐내며 도도하게 서있다.

오랜만에 부산에 와서 깜짝 놀랐던 첨단 건물이자 최고가 아파트인 아이파크.

수영만 매립지에 선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로 스카이라인 가히 장관이다.

마천루 뷰만으로도 세계 무대에 세울 만큼 월등한 건축미를 자랑한다는 마린시티다.

걷고 있는 민락동 쪽으로도 고급 아파트가 즐비해 홍콩의 야경이 무색해질 판이다.


수영만 야경의 화룡정점은 역시 광안대교.


수시로 다양한 색채 선보이며 화려하게 명멸하는 조명 덕에 우아한 현수교의 윤곽이 더 돋보인다.

다이아몬드 브리지라는 딴 이름처럼 오색빛  다이아몬드 왕관을 얹은 듯 격조 갖춘  광안대교가 함께 있으니 홍콩쯤은 아마 비교 대상이 아닐지도.

 야경 명소 건너다보며 불빛에 취해 달빛에 취해 무아경에 빠져서  대충 7㎞는 조이 넘는 거리 걷고도 전혀 피곤감 느껴지지 않는다.

시인은 강물에 시를 쓰고 저녁 불빛에 시를 생각한다는데 잡문 하나 엮고 마는 자신이 좀 창피스러워지는 저녁.

그러나 사랑스러워라/걷고 또 걸어도/휘영청 더 걸어야 할/봄 길 남아 있음이여.

내게 멋진 산책길과 건강 허락해 주신 하늘의 축복이 감사 또 감사할 따름이다.

작가의 이전글 규장각을 보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