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 입고 평화 생각

2017

by 무량화

메주콩을 삶거나 콩국수 국물을 만들 때면 순식간에 푸그르르~ 콩물이 잘 넘칩니다.

물이 끓어넘칠 때마다 뚜껑을 열어주면 삶는 시간도 더 걸리고 콩 비린내가 날 수 있어 조심해야 되는데요.

콩을 증기로 찌는 시설이 아닌 경우, 콩 삶기가 꽤 신경 쓰이는 부분이지요.

가마솥 같으면 찬물 한 바가지 솥뚜껑 위에 끼얹어 열기 식혀주지만, 양은찜솥을 가스불에 올렸으니 그럴 수도 없고요.

양이 적으면 압력밥솥을 사용하겠으나 그도 아니라면 꼼짝없이 옆에서 보초를 서야 하는 일이지요.

4~5시간 콩이 삶아지는 동안 지켜봐야 하는 데다, 자칫 불 조절 소홀히 하면 콩이 솥 바닥에 눌어 태워먹게도 되거든요.

하여튼 그간 메주콩을 여러 번 삶아봤지만 아무 사고 없이 잘해왔는데, 닭도 홰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잖아요.

콩을 정하게 씻어 하룻밤 불린 다음 밖에서 콩을 삶았답니다.

막간을 이용, 채소 농사 준비하려고 뒤꼍 묵은 밭 뒤엎는 삽질을 시작했지요.

밭 세 두둑을 고르게 갈아엎고 나머지 하나마저 거의 끝나갈 무렵쯤, 부르르 콩물 넘치는 소리가 나더군요.

냅다 쫓아와 들썩대는 솥뚜껑을 약간 밀친다는 게 오히려 꽉 닫고 말았는데,.

그 순간 폭발하듯 뚜껑이 확 제쳐지며 콩물이 솟구치는 거였어요.

마치, 쳇기 심한 아기가 젖을 토하듯이 좌악~직사포처럼요.


펄펄 끓어오르던 콩물이 직통으로 오른 손등과 팔목에 일부 끼얹어졌지요.

그 통에 그만 졸지에 작은 사고를 당하고 말았네요.



아픈 걸 조금치도 못 참는지라 여태껏 플루 예방주사 한번 맞아본 적 없는 겁쟁이가 바로 전데요.

앗 뜨거라, 소리 지를 새도 없이 손등과 팔목 일부가 벌겋게 화상을 입고 말았지요.

화닥거리는 손을 얼른 대야 물에 집어넣고 화기부터 식힌 다음 연고를 발랐으나 금세 물집이 잡히며 부풀어 오르더군요.

덴 부위가 얼마 넓지 않은 일부분이고 연한 피부 쪽은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긴소매 옷 입으려니 옷깃에 스쳐 붕대까지 감아야 되네요.

아무리 연고를 발라줘도 자칫 실수로 물집 터지면 이차감염이라도 될까 봐, 이불 밖으로 팔을 쭉 뻗고 잠 자야 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고요.

당분간은 세수나 설거지도 한 손으로 대충 하게 생겼어요.

처음으로 데어보니 알겠더군요.

이쯤 상처로도, 산불 번져 마구 타들어가던 숲의 비명소리와 불길 진압하다 사고를 당한 화상환자들 고통을요.

무엇보다 소이탄 공습으로 아비규환의 불바다 속에서 숨져간 군인들의 처참함이 짚이더군요.

베트남전의 참상을 알린 상징적 사진 한 장.

당시 네이팜탄 폭격으로 화상을 입고 울부짖으며 거리로 내달리던 소녀 사진도 떠올랐지요.

그와 동시에 한반도 긴장이 눅져지기는커녕 점점 가중되고 있기에, 전쟁이 새삼 더 공포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한국 내 이념 갈등과 정파 간의 쌈질이 어이없다 못해 더욱 한심스럽게만 여겨졌고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아야겠지만, 만에 하나 발생할지도 모를 핵도발은 상상조차 하기 끔찍스러웠습니다.

톨스토이 영향인지 평화는 전쟁의 반대 개념으로 생각해 왔는데요.

평화협정 따위로 한반도 평화가 보장되는 게 아니라니 여러모로 미스터리하기만 한 평화 같습니다.

하기야 나라 걱정보다 당장은 화닥거리는 손등의 저릿거림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 지금은 더 큽니다.

대단한 상처도 아니면서 유난 떤다고 엄살 심하단 소리나 들을는지 모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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