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귀포 아침 날씨는 멀쩡했다.
그러나 한낮이 되자 여지없이 또 해무가 밀려들었다.
삼매봉을 넘어 뭉실거리며 달겨드는 짙은 해무.
동쪽 멀리로 내뺄 작정을 하고 잽싸게 배낭을 챙겼다.
201번 버스에 오르자 어느새 구름 쪼가리처럼 보얀 해무는 낮은 포복을 하고 바닷가 거의를 장악해 버렸다.
표선을 지나 성산포에 이르러도 새처럼 가벼운 안개 걸음이라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다간 두 시간 넘게 달려봤자 번번 KO패 당하는 거 아냐?
잠시 갈등이 일었다.
김녕 고운 물결에 발 담가 보리라던 처음 생각이 흔들렸다.
이왕 나선 길, 아쿠아슈즈까지 신고 왔으니 내처 가보자 싶었다.
다행히 구좌 쪽에 이르자 운무 자취는 사라지고 하늘 쾌청했다.
첫 번째 들린 바다는 세화해변.
찰방거리며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만조 때라도 바닷물이 깊이 들이차지 않아 아이들과 놀기 안전한 바다.
반면 파도가 제법 쎄서 윈드서핑도 즐길 수 있는 바다다.
이곳 물빛은 깊고 오묘한 에메랄드 색이 아닌 옅은 색깔의 아콰마린이다.
그래서 유독 바닷물 투명하다.
물가에서 깨작거리며 겨우 발만 적시고 다음 해변으로 향했다.
다음은 행원리에 있는 코난 비치다.
해상풍력단지를 끼고 있어 새하얀 풍차가 바다에 아랫도리를 묻고 있어 풍치도 그럴싸.
해변은 작지만 오밀조밀 정겨운 데다 스노클링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나야 조선조 광해군이 유배당해 제주에 오며 기착했던 포구로만 알았던 행원인데.
현무암에 싸인 속닥한 해변 모래결은 아주 고왔다.
발등에 찰싹대는 물결도 부드러웠다.
잠깐 물만 적시고 나오다가 해변에 사람들이 웅성대기에 가보니 커다란 지네가 바위에서 기어 다녔다.
제주에 와 어쨌든 살아있는 지네는 첨 봤다.
어릴 적 작은할아버지댁 한약방 천정에 두름으로 엮여있던 마른 지네보다 크기는 좀 작았으나 소름이 돋았다.
안 그래도 제주도로 거처를 옮기며 주택에서 살고 싶어도 돌담 많은 제주라 비암과 지네가 흔하다는 소리에 기겁하고 12층으로 올라온 사람이다.
께름한 기분을 상큼한 해풍에 날려버리고 월정으로 달렸다.
월정마을은 이름이 참 예쁘다.
달이 머무는 곳이란다.
제주바다에서 서쪽은, 서정 어린 풍광에 물빛 신비로운 금능 협재해변을 최고로 꼽고 동쪽은 월정이라 여기는 1인이다.
물론 중문 색달해변, 함덕해수욕장이며 표선 해비치 바다도 나름 특색 있지만.
월정리는 입구부터 곡선미 뽐내는 밭담으로 매혹시키는 데다가 해변 따라 둘러선 카페촌 멋지고 바다 품도 여유롭게 너른 편이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기온이 30도까지 오른 무더위라서 인지 꽤 많은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여기서도 바다에 발 담그는 시늉만 하고는 김녕으로 향했다.
어느새 슬슬 해가 기울어가고 있었다.
김녕 상세기해수욕장으로 들어서자 후덥지근한 바람이 선들선들 시원한 해풍으로 바뀌었다.
다만 하늘빛이 요상해지며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기상도도 그러하지만 이미 노을녘.
눈부신 일몰은 기대하기 어려운 하늘이었다.
유럽영화 배경 같은 해질녘 풍광은 아늑했다.
그러나 감성에 오롯이 취해들 여건이 아니었다.
비치파라솔은 죄다 접혀있고 텐트 아래 의자들도 포개져 있었다.
일곱 시에 해수욕장이 폐장되므로 물에서 철수하라는 안내방송이 떴다.
안 그래도 급한 마음인데 재촉까지 따르니 서둘러 사진 몇 장 챙기고 얼른 뒤돌아섰다.
거처에 닿으니 아홉 시가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