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보러 가던 영남 대로 벽화길

by 무량화

대구시 중구 계산동 현대백화점 뒤쪽에 복원된 영남대로 옛길 담벼락, 풍속화가 그려져 있다.


선비들이 청운의 뜻을 품고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영남대로 과거길'이다.

예전 대구읍성 남쪽 성곽 앞길은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이 지나다니던 길이다.

그뿐 아니라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건너가기 위해 걸었던 길, 임진왜란 당시 왜적의 침공로였던 길이다.

영남대로는 조선시대에 남북을 잇던 경부 가도의 영남지역 간선도로다.

역사와 문화의 대동맥, 영남대로는 조선시대부터 갑오개혁 때까지 존재했던 동래에서 한성을 연결하던 과거길이다.

영남로(嶺南路), 동래로(東萊路), 경상충청대로(慶尙忠淸大路), 경상대로(慶尙大路) 등의 명칭으로도 불렸다.

한양으로 향하던 사람들과 문물이 이동하는 주요 교통로로 대구약령시 일대 떡전골목과 염매시장을 관통하였다.

지금의 약령시 주변 길로 제탕원과 제환소, 제분소가 밀집해 있는 작은 골목이다.

유다를 거 없이 그렇고 그런 시장터 비좁은 골목길인데 이처럼 이야기를 품은 과거길로 재탄생시켰다.

소소한 역사 소재에서 발굴해 낸 과거길이 의외로 관광객 몰리는 포토죤으로 변했다.

무릇 이곳 영남로뿐 아니라 부산 동래에서부터 시작돼 한양까지 이어지는 길인데 관광자원화 시킨 곳은 여기뿐이다.

눈여겨볼 거 없는 미미한 꼬투리에서 알곡을 건져 재편집해 낸, 문화도시 대구의 탁월한 역량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반짝이는 영감에 의한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4차 산업시대다.

과거는 곧 미래의 바탕, 그렇게 현대 거리에 온고지신을 접목시킨 일례겠다.



영남대로 옛길은 영남 지방에서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길목의 하나이다.

부산 동래에서 양산, 밀양, 팔조령, 대구, 문경새재, 충주를 거쳐 용인에서 한양까지의 약 960리 길을 일컫는다.

죽령은 주르륵 미끄러진다 해서,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속설 때문에 좀 에돌더라도 문경새재로 이어졌다.

경상도의 58개 군과 현, 충청도와 경기도의 5개 군과 현을 지나 비로소 한양에 이르렀다.

험한 산을 넘고 나룻배로 강을 건너면서 실제 걸어서 가려면 보통 보름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괴나리봇짐 안에는 신발, 부채, 붓, 벼루, 서적, 칼 등이 비상식량인 엿과 미숫가루와 함께 들어있었다.

설렘과 기대를 안고 짚세기 신을 몇 번 바꿔 신어가며 걷고 또 걸었던 길.

그렇게 숭례문을 통과해 사대문 안에 입성하여, 문무 관료의 등용문인 문과와 무과 과거시험을 치렀다.

과거는 아무나 볼 수 있던 시험이 아니었다.

양인과 양반가 자제만이 유생이 될 수 있었던 조선조다.

출신성분이 낮으면 응시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과거제가 현대는 누구에게라도 개방돼 평준화길이 열렸다.

그러나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렵기는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로 출세의 그 문은 좁디좁은 문이다.

하여 금수저 흙수저 타령이나 하며 스스로 가재 개구리 자청, 자기 비하에 빠지게도 된다.

오백 년 조선 왕조시대 내내 벼슬에 오르기 위한 과거제가 있었기에 선비라면 과거 대비한 공부에 머리 싸매고 덤벼들었다.

“인간 세상 영광 중에 과거 급제가 으뜸"이랬던 숙종 임금도 있었듯이 과거에 합격하면 사흘간 풍악 울리며 거리행진을 했다.

그렇듯 모든 선비들의 로망인 과거에 급제해 장원을 하게 되면 임금으로부터 어사화 받잡고 벼슬길 훤히 열렸으며...

고향으로 금의환향할 적에 어사화를 꽂고 어화둥둥...


그처럼 조선시대로 잠시 시간여행을 하게 되는 레트로 감성길이 영남대로다.

천 리 길 한양으로 가던 그 길도 이제 KTX로 세 시간 만에 주파한다.



주소:대구광역시 중구 약령 길(약령시 인근 인도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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