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타고 가면서 읽으라고 건네준 한 권의 책. 1999년 말 미국 이주를 앞둔 나에게 소올메이트였던 친구가 선물한 책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였다. 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는 '자유로운 영혼 헬렌 니어링, 그 감동의 기록'이란 부제를 달고 1997년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책이다. "이 책은 우리가 반세기 동안 함께 하고자 애써온, 최선의 삶을 살고, 그 삶을 사랑하며 우리가 겪은 여러 가지 출발과 떠남에 관한 것이다. 사실 이 책의 제목 ‘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의 첫 단어 ‘Loving’ 다음에 쉼표를 찍어야 한다. 최선의 삶을 사랑하는 것(Loving the Good Life)도 중요하지만, 최선의 삶에 들어있는 그 특유의 변할 수 없는 요소는 바로 사랑(Loving)이기 때문"이라고 쓴 헬렌이다.
펜실베니아 대학 경제학 교수이며 저술과 강연자로 왕성하게 활동했으나 반전운동을 하다가 해직당한 스콧 니어링과 만난 헬렌은 버몬트와 메인주 시골로 들어가 자연에 순응하며 함께 자급자족의 생활을 해왔다. 두 사람은 흙과 더불어 살면서 조화로운 삶, 충만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삶으로 보여주었다. 버몬트로 들어가 스무 해를 농장일 하며 사는 동안 그들은 <조화로운 삶:Living the Good Life>을 공저로 펴냈다. 버몬트에 개발 바람이 불자 메인으로 옮겨가 스물여섯 해를 살면서는 <조화로운 삶의 지속:Continuing the Good Life>을 펴냈다. 스코트가 1983년에 백 살 생일을 지낸 후 스스로 음식을 끊고 세상을 떠나자 헬렌은 그로부터 8년 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출간했다. 그 후 사 년 뒤인 1995년, 91세로 헬렌도 스콧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등졌다.
내 책조차 한 권도 챙겨 오지 않았으니 책이라고는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가 당시 유일한 읽을거리였다. 밑줄을 치면서 여러 차례 읽고 또 읽었다. 그때 자연스럽게 스콧과 헬렌이 선택한 생의 마무리 방식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적절한 시기에 이르자 본인 스스로 곡기를 끊고 평화로운 가운데 서서히 자연스럽게 눈을 감은 그들. 하지만 오십 초반의 인생관은 얇고도 얕았으며, 초기 이민자의 일상은 무한 고단한 적응기로 경황없이 바쁘기만 했다. 일머리 익히느라 동동거리며 오십 대를 보내고 어영부영 두서없이 육십 대가 지나갔다. 그 와중에도 신세계를 알아가는 잔재미는 있었으니 돌이켜 나름의 특이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그러다 찾게 된 한국방문길이 생각잖은 역이민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예측불허인 삶의 여정이라듯 뜻밖에도 서귀포에서 몇 년 째 선물 같은 나날을 엮게 될 줄이야.
작년부터 하나뿐인 언니와 형부가 번갈아 병원 드나드는 일이 잦아지자 부쩍 신경이 쓰였다. 진작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등록시켜 놓았으나 그게 노후 준비의 전부는 아니었다. 두 분 다 평소 건강했고 아무리 평균수명이 길어졌다 해도 팔십 대는 팔십 대였다. 조카들이 부모님 아파트에 노인을 위한 안전 손잡이를 여기저기 설치하고 안 쓰는 살림들을 대폭 정리했다. 언니를 보며 노후 건강문제 나아가 죽음까지가 피부로 와닿으면서 심란스러웠다. 생명 가진 모두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 과정이다. 나 또한 특별히 성인병이 있는 건 아니나 칠십도 중반을 훌쩍 넘겼으니 건강관리에 집중해야 할 나이. 한국으로 리턴 후 역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부터 필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제주지사를 방문, 그 자리에서 사인까지 마쳤는데 미국보다 한결 간단한 절차였다. 며칠 지나 내 정보가 담긴 플라스틱 카드가 배달됐다. 앞서 부산에서 지낼때 아들에게 그 얘기를 꺼냈는데 '제가 알아서 할테니 그냥 계세요'란 답변이 돌아왔었다. 만일의 경우가 닥쳤을 시, 왜 자식에게 그 어려운 선택 혹은 결정을 하게 할 것인가. 해서 이미 해본 일이라 조용히 알아서 했다. 그간 제주살이 하며 나이 의식지 않고 칠랑팔랑 어지간히도 쏘다녔다. 다만 올해 된통 넘어지면서 좀 자숙하고 근신모드를 취하고 있는 중이긴 하다.
미국서 살던 2016년 나는 사전의료지시서(Advance decision to refuse treatment/AD, living will)를 작성해 공증을 받아 둔 바 있다. 주변에서 뇌경색으로 식물인간 상태로 오래 병상에 누운 지인을 보면서 받은 충격이 컸던 터. 하버드 보건대학 교수인 아툴 가완디(Atul Gawande)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라는 책을 읽고는 곧바로 서류에 사인했다. 환자 자신의 존엄권과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는 중환자가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보다 품위 있게 자연적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법적 문서인 AD다. 실제 죽음에 임박한 경우라도 현대의술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각종 약물등을 투여하는 의학적인 기술로 생을 연장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의식도 없이 숨만 붙어있을 뿐인 무의미한 생명을 이어가길 원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환자 본인의 자기 결정력이 상실되었을 경우, 누구도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존엄사를 택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는 없다잖는가. 하지만 요셉은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늘에 맡기겠다는 주장이 확고했으므로 AD를 작성하지 않았다.
식상한 화제에 속하긴 하나 Well-being, Well-Dying과 더불어 이젠 나이를 잘 먹는 Well-aging까지가 행복을 위한 화두로 대두되고 있는 요즘이다. 잘 알다시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웰빙 (Well-being)이라고 한다면, 사람이 사람답게 죽는 것을 웰다잉 (Well-dying)이라고 하겠으며, 사람이 사람답게 나잇값 하며 늙는 것을 웰에이징(Well-aging)이라 칭할 터다. 좀 더 살을 붙인다면 물질적 가치나 명예보다는 조화롭고 건강한 심신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을 행복의 척도로 삼는 것이 웰빙이다. 웰에이징은 노화를 거스르기보다는 현명하고 건강하게 나이 들어간다는 개념으로 노화에 따른 신체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심신 공히 아름답게 나이 들어간다는 의미이겠다. 죽음을 준비하기 위한 삶의 정리가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한 준비가 웰다잉이겠고.
이미 1958년 손창섭은 단편소설 "잉여인간"을 써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사회에서 어떤 역할도 맡지 못하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무기력하고 무능한 인간이라는 뜻의 소설을 생각나게 하는 영화가 있었다. 2022년에 나온 SF 영화 '플랜 75'다. 노인 인구 과잉은 일본경제을 말아먹는다. 그러니 국가와 미래를 위해 목숨 버리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라! 젊은 남자가 그렇게 뇌까리며 총구를 겨눈다. 몇 발의 총성이 들린다. 그리고 스스로도 쓰러진다. 할복자살을 예사로 하는 사무라이 후예답다. 고령자를 겨냥한 증오범죄가 점점 늘어갔다. 정부에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인정하고 지원하는 플랜 75 법률안이 발의되고 통과되며 곧바로 현장에서 실시된다. 플랜 75에 신청하는 절차는 아주 간단하다. 신청시 건강진단서나 가족 또는 의사의 동의서 따위 필요치 않으며 신청자에게는 10만 엔이 지급되기까지 한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각본도 썼다.
정책 발의자만 잔인한 것일까. 사회전체의 동조와 묵인하에 노인들은 알아서 떠나 달라는 압박이 사방에서 조여 온다. 내 나이를 헤아려보니 벌써 갔어야 할 사람이다. 더욱이 향후 십 년 뒤엔 65세로 하향조정을 하겠다는데 현재 55세라면 그들도 금방 해당될 터다. SF 영화이기 망정이지 끔찍하다. 영화 속 호텔 객실 미화원 미치는 78세, 가족은 없다. 그녀의 팀원은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 작업 중 동료인 이네코가 쓰러지자 호텔 측으로부터 모두 집단해고를 당한다. 퇴원한 이네코는 집에서 홀로 식탁에 엎드린 채 죽었다. 무료급식소에서 겨우 끼니를 때우면서 그렇게 죽음으로 내몰리는 노인들. 스스로 일해서 자립해 살겠다는 의지 뚜렷한 미치는 끝까지 인간적 존엄을 지키고자 분투하나 세상은 녹록하지가 않다. 생활보호 수혜자도, 수급자 전용주택도 사양한 미치는 신청해 둔 플랜 75 실행 순서가 되고....착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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