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린(蹂躪) 당하는 자연

by 무량화

삼매봉 지나 여의물 구간이다.

저 아래 바다에는 외돌개 돌올하게 서있고 범섬 호젓이 떠있다.

백년초 박물관 허름한 건물을 지나면 짙푸른 야생의 숲 이어지다가 매리어트 제주 리조트가 줄줄이 나타난다.

연달아 박서보미술관 건립현장이 가림막 너머에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래서일까.


몇 년 전만 해도 그 사이 구간은 울울창창한 숲이었다.

그 숲이 슬슬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삼매봉개발이라는 회사에서 리조트 시설을 만들면서부터이다.

숲 자욱하던 경사지에 한 채씩 건물이 들어서더니 재작년인가 위용 대단한 건축물이 바다 굽어보며 모습 드러냈다.

전망 끝내주는 위치에 오성급 메리어트 호텔은 그렇게 위용 뽐냈다.



그간 일어나는 조짐들이 안 좋았다.

무슨 일인가가 그 숲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수목들은 서로 불안한 눈빛 되어 숨 죽인 채 웅성거렸다.

조용히 그러나 불안스레 술렁거리는 숲.

사람들 오가더니 괴물 같은 기계들이 투입됐다.

큰 나무들이 베어지면서 숲은 마구 짓밟혔다.

불도저가 동원돼 화산석인 바위돌들을 뽑아냈다.


삼매봉은 하논 분화구를 둘러싸고 있는 오름 봉우리다.

하논과 삼매봉은 한 몸체였지만 일주도로가 뚫리면서 두 지형으로 갈렸다.

그러나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을 지닌 주변부다.

말하자면 인근이 다 독특한 기생화산체라 가벼이 개발할 수 없는 녹지일 텐데.

그러나 건축허가 미루던 시에서도 불가피 했던 건, 메리어트 건물 착공 이후 시에서도 개인소유 토지라서 더 이상 묶어둘 명분이 없었다고.

건축허가서를 훑어보니 지하 1층 지상 1층의 근린생활시설이다.


차도와 바투게 붙은 집ㅣ건물이라 살림집이라기보다 아마도 아랫층은 별장 자리 윗층은 카페 자리 같다.

고작 요 정도 건물 짓자고 그토록 자연을 마구잡이로 훼손시켰나?

밀밀한 녹지에 집 지을 생각을 한 쥔장 의식체계도 그렇고 허가를 내준 시청 처사도 기가 차고 어이없기는 매일반이다.

개인 소유권 행사라 할지라도 현재 대한민국 곳곳에 자연녹지지역으로 고시돼 도시 근교에 개발 제한받는 토지가 무수한 판에 이럴 수가.

전망 좋은 터에다 집 지으면 그마만큼 부가가치 높겠으니, 암튼 돈독 오른 자본주의 생리가 얄궂다만.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뭉개진 자연환경은 원래대로 다시 복구하려면 백 년 세월이 걸린다.

그 단적인 예가 영국에서 죽음의 강으로 불린 템즈강 경우겠다.

산업혁명 이후 공업폐수와 인구 증가에 따른 생활하수로 심하게 오염되었던 템즈강을 살리는데 정부와 온 국민이 나섰다.

그 결과 1883년 경 템즈강에서 자취를 감춘 연어가 1970년대 후반부터 다시 나타나게 되었다니 근 1세기나 걸린 셈 아닌가.

비근한 사례를 들자면 2008년부터 오름 훼손을 막기 위해 십 년 넘게 자연안식년에 든 물찻오름의 원시로 돌아간 숲 현장이겠다.

일 년에 한 번 한시적으로 열리는 에코힐링 체험 행사에 참가하여 자생력에 의해 복원돼 가는 놀라운 숲을 목도하였으니.


미국 국립공원마다 인색할 정도로 편의시설이 미비해 불편을 느낀다.

그들은 잠시 빌려 쓰는 자연을 후손에게 원상태 그대로 물려주고자 최소한의 시설로 옹색하게 버틴다.

그게 맞다.

자연을 훼손시키고 환경을 파괴해 가며 무언가 구조물을 남기면 결국 우리 대에서 그곳 고유의 아름다운 풍광은 지워지고 만다.

또 하나, 캘리포니아에 있는 화잇마운틴에 무드셀라 이름으로 지정된 나무가 있다.

그러나 어느 나무가 최고령 무드셀라인지 표식이 없어 알 수가 없다.

반면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한라산 영실의 수령 72년 된 구상나무 대표목을 올해 일반에게 공개했다.

국가유산 방문 해 특별 프로그램으로 사전 신청자를 대상으로 그 나무가 공개되는 걸 보며 어리석구나 싶었다.

대표목 앞에서 오로지 사진 한 장 남기거나 합장 배례만 할까?

관심의 대상이 되면 이파리 하나라도 훼손되고 나무가 다칠 뿐이다.

유린(蹂躪) 당하는 건 인권만이 아니라, 한자어 유(蹂)와 린(躪) 모두 발 족부가 달려있듯 '발로 짓밟다'는 뜻.

매사 중요 결정을 하기 전에 거듭거듭 심시숙고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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