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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09. 2024

영도 흰여울마을의 노을빛

부산 구석구석

여울물 소리가 들릴 거 같은 흰여울마을.

영도 바닷가에 있으니 하얀 파도 너울이 보이고 파도 소리 철썩대며 따르리라 짐작되던 곳이다.

귀국 뒤 아들네와 이기대며 절영도 등 부산 명소를 차로 스르륵 돌면서, 나중 여유 있게 천천히 둘러볼만하다고 알려줬던 흰여울마을.

청명한 날이나 노을 내릴 때 이름도 이쁜 흰여울마을을 가보리라, 아껴 갈무려뒀었다.

날씨 기막히게 맑은 일요일, 전날 오후 내내 수영공원을 돌아다녀 노곤했으나 하늘빛 하도 고와 기어이 외출을 했다.

해안가 가파른 절벽 따라 촘촘 들어선 달동네 담벼락 정겨이 이마 맞댄 골목길로 이루어진 흰여울 마을.

흰여울길은 모두 열네 개나 되는 골목길로 이어져 있으며 아기자기한 점방 카페 공방 서점 등이 주민들의 일상과 어우러져 서로 이웃해 있다.



지금은 낭만적이고 서정 어린 관광지가 됐지만 이 마을은 우리네 쓰디쓴 역사의 상흔이 딱지 앉은 장소다.

육이오 때 피난 온 사람들이 무수히 몰려든 부산에는 자연스레 산기슭 여기저기 따개비 붙듯 판자촌이 들어섰다.

일거리 얻기 쉬운 도심 쪽은 일찍 피난 내려와 터 잡은 사람들 몫, 나중에 온 사람들일수록 도심에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부산항 맞은편 영도다리 건너로 밀려나 가장 늦게 형성된 산동네, 더 이상 몰릴 수 없는 삶의 끝자락 벼랑에 바닷새 집 짓듯 엉성하게 꾸린 피난민들의 터전이었다.

당연히 옹색한 산비탈에 지은 집들은 화장실을 갖추지 못했기에 집을 짓기 힘든 자투리땅에 공동변소를 지었다던데,


그래선지 길에서 공중 화장실을 수시로 만난다. 말끔하게 타일로 단장시킨 지금이야 포토존도 되지만.

영도구청이 도시재생사업으로 몇 채의 폐가를 리모델링해 지역 예술가들이 입주하면서 창작 공간이 되자 마을의 변화는 시작됐다.

현재는 바닷가 영도만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독창적인 문화예술마을로 거듭난 그 배경에는 SNS의 공도 크다.

예능 프로 <무한도전>에 소개되고 <변호사> 외 여러 영화 촬영지로 이름 알려지면서 입소문을 타고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됐다.

그리스 산토리니 마을을 닮았다고들 하나, 안 가본 그곳보다는 얼마 전에 찾았던 바르셀로나의 구엘공원이 분위기상 더 비슷하게 겹쳐지는 장소였다.

지중해가 저 멀리 보이긴 했지만 비탈진 산지에 조성된 가우디의 작품인 구엘공원, 무엇보다 광장 테라스를 둘러싼 구불구불한 곡선의 타일 벤치가 떠올라서였다.

비좁고 불규칙한 골목은 경사까지 가파른 데다 계단이 많은 구조다. 


그림이 있는 피아노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흰여울 터널과 절영해안산책로에 이르렀다.


여기야말로 바로 곁에서 흰여울 일면서 내는 파도소리 그 탄주를 들을 수 있는 곳.

해안산책로에서 올려다보면 수직에 가까운 축대 위에 걸쳐진 마을 전경이, 위에서 걸을 때보다 한층 더 아슬아슬하게 보인다.




강력한 태풍이 부산을 훑으면서 해안가 마을마다 피해가 심했는데, 지형상 온몸으로 태풍과 맞부딪쳤으련만 인근 수목들 겨울 나목처럼 이파리 상했을 뿐 여타 시설물 피해는 거의 없었던 듯하다.

경사지에 지그재그로 난 철계단이나 데크며 절영해안산책로를 따라 걸어봐도 주변 모두 대체로 무사하다.

도덕불감증에 공정치 못한 꼴불견이 곳곳에서 목도되는 이 사회, 그럼에도 이 모든 사업의 발주처인 영도구청 담당자는 올곧은 양심으로 공무를 집행했구나! 진심으로 상찬하고 싶었다.

특히 지자체마다 전시행정으로 떠벌려놓은 보여주기식 사업일수록, 콩고물 줄줄이 나눈 날림공사가 흔한 판이라 더더욱 돋보인 것.

오른쪽을 따르는 바다에는 섬도 띄웠지만 화물선과 원양어선 등 대형 선박들이 무리 지어 떠있었다.

환적이나 수리 또는 급유를 위해 부산항을 찾아오는 배들이 잠시 정박해 있는 남외항, 닻을 내리고 쉰다는 묘박지(錨泊地)다.

국내 최초의 해수욕장이기도 한 송도해수욕장과 남항대교가 오른쪽으로 비껴 선 채 마주 보인다.

송도해수욕장을 둘러싼 산자락 너머로 해가 운다.

바다에 어린 노을빛이 무척 곱다.

마을 흰 벽은 부드러운 노란빛이 되었다가 황금색으로도 변하는가 하면 주황빛에서 붉은보라로 바뀐다.

꿈처럼 아련한 빛깔들이다.

남루한 삶이 녹아있는 골목 풍경도 서정시로 환치되는 고즈넉한 시간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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