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을, 사막의 무어인이다. 그러나 얼토당토않은 세계와 알게 모르게 종횡으로 얽혀있는 우리. 내 의지나 뜻과도 전혀 무관하게. 이번에 딸은 한국방문에 앞서 한 달 전부터 꼼꼼스레 계획표를 짰다. 먼저 일정에 맞춰 항공권부터 예매를 했다. 본인은 왕복, 아빠는 융통성 있게 원웨이 티켓으로 만일의 경우수를 참작했다. 일단 괜찮은 숙소를 마련하려 호텔 검색에 들어갔다. 딸은 애초부터 조선비치를 맘에 뒀다. 어릴 적 조선호텔 앞 인어상 근처 바위 그늘에서 게를 잡으며 놀았던 기억이 삼삼해서다. 당시 부산 최고였던 그 호텔을 건너다보면 신데렐라 궁전처럼 대단해 보였기에 이번에 이용해 봐야지 했다는데. 그러나 10/24~10/28일에 더해 말일까지 통째로 예약불가. 이상하다며 전화로 문의해 보라고 전번을 찍어 보냈다. 통화 결과도 마찬가지, 만실이라 예약불가란다. 거기뿐 아니라 그랜드조선도 하얏트도 엘시티 시그니엘이며 아난디코브의 호텔까지 전부 다 만실. 부산영화제 시즌인가 했더니 구월에 벌써 끝났단다. 시월 말 즈음해서 부산의 특급 호텔은 하나같이 부팅 불가였다. 아들에게 그 말을 했더니 APEC이 있잖아요, 그런다. 친구네 딸은 서울 신라호텔에서 결혼식을 하려고 일 년 전에 예약해 놨는데 APEC 관계로 취소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굳이 서울로 시진핑 숙소가 정해졌으므로 어쩔 수 없다나 어쨌다나. 딸은 대신 부산항 야경이 내려다 보이는 코모도에서 이틀, 옥외 자쿠지 전망이 괜찮다는 해운대 파라다이스에서 이틀을 지내기로 결정했다.
지난 2023년 3월, 2025년 APEC 제주 유치에 함께해 주기 바란다는 오영훈 제주지사의 특별당부가 있었다.
아·태 지역 회원국 정상과 외교·통상 장관, 경제사절단 등 6000여 명이 참여하는 국제행사를 유치하므로 경제 효과 1조 5595억 원, 부가가치 창출 5,536억 원, 취업자 증가로 긍정적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2025년 APEC 유치는 제주가 세계로 나아가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APEC 정상회의 제주 유치 기원 캠페인'에 많은 관심과 협조를 보내달라 했으므로 당시 시청 서포터스로 활동하던 때라 적극 참여했더랬는데. APEC 유치전에 뛰어든 도시는 부산, 인천, 제주, 경주 네 곳이었으며 최종 경주로 낙점이 되며 잊혀져버렸다. 올해가 바로 그때 제주민이 공들였던 APEC이 열리고 있었지만 거의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언제 열리는지조차 깜깜했는데 이처럼 현실에서 부딪치게 되므로 비로소 아하~ 싶었다. 결국 우리는 하나의 그물로 얽혀있는 존재들 맞는구나. 숙소 부팅을 하며 당연히 아무런 연결끈이 없다고 여겼던 APEC인데 거부할 수 없는 관계망이 이처럼 촘촘히 짜여있다니. 아무리 싫어도 끊어낼 수 없는 고리요 벗어날 수 없는 올무에 걸린, 빼도 박도 못하는 지엄한 연기(緣起)의 법칙에 다름 아닌 그것 인드라망. 인연화합이란, 모든 현상과 존재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원인(인)과 조건(연)이 모여 이루어진다. 세상만물 중에 아무런 이유없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신비로운 인과의 이치. 세계는 본래 한 몸 한 생명의 인드라망으로 엮여 존재하며 나아가 우주 삼라만상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은 적확하다.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을 법한, 사막의 무어인과는 어떤 연기법으로 맞닿아 있는 걸까.
엊그제 김해공항으로 제주행 비행기를 타러 왔더니 전체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탑승일 전날 개별 문자가 왔기에 대강 짐작은 했다. 평소보다 보안검색 단계가 최고로 상향조절돼 탑승수속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므로 일찍 나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제33회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라는 커다란 국제행사를 앞둔 시점이니 당연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경주 APEC 행사 참석 인원 6천여 명이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을 하기 때문이다. 그날 공항은 최고 수준의 보안경비태세라 군경이 좍 깔려 있는 등 분위기부터 무척 삼엄했다. 한복 차림에 청사초롱을 든 선남선녀가 입국장 곳곳에서 외국손님들을 환영하며 맞고 있었다. 28일 오후에도 고위관리회의가 있어서였던지 공항 밖 도로에는 의전차량들이 경찰 에스코트를 받으며 연신 지나갔다. 그래도 차질 없이 나는 제주행 비행기를 탔고 딸내미는 인천공항으로 해서 이튿날 오전 LAX에 잘 도착했다. 밤비행기라 통잠을 잔 덕에 컨디션 개운해 곧바로 근무에 임할 수 있었다고 했다. 오늘은 종일 APEC 관련 뉴스로 하루가 지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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