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지에 관하여

by 무량화

서귀포하늘 푸르른 날, 한라생태숲으로 향했다.

오일육 도로를 휘돌아 성판악을 지날 즈음, 날씨가 돌변해 구름층 무거이 드리워지더니 한라생태숲은 벌써 비에 젖어들고 있었다.

저 아래 제주시는 숫제 뿌옇다.

맑았던 하늘인데 비가 내리다니... 같은 하늘이라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양쪽 날씨다.

한라산을 분기점으로 제주시와 서귀포 일기는 이렇듯 달라 가히 변화무쌍, 롤러코스트를 타기 일쑤다.

절물휴양림까지 걸으려던 애초의 계획을 접는다.

대신 요사이 깊이 천착하게 된 어떤 문제와 연관된 나무만을 집중해서 찾아보기로 하였다.

그 나무는 연리목이다.

깊은 사랑과 각별한 인연을 상징하는 '사랑나무'인 연리목이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인 천생연분이 있는가 하면 평생웬수인 악연도 있다.

그래서인가, 함께 밥을 먹는 가족수가 자꾸 줄어들고 있어 혼밥시대란 말조차 생겨났다.

가족해체 현상은 가족 구조가 붕괴되거나 가족 내부의 정신적 유대감과 정서적 기능이 무너져 가족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름을 뜻한다.

IMF 이후 급격히 늘기 시작한 이래, 점점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만연으로 가족해체가 가속화되고 있다.

또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복합요인이 모두 이를 부추기는 요인이라 하겠다.

가족해체는 사회의 최소단위가 깨어지는 매우 중차대한 사안으로, 전체 이혼 건수는 소폭 낮아졌으나 황혼이혼 건수는 대폭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가족해체의 대표적 원인은 이혼율 증가에 의해서이다.

하여, 갈수록 가족 결속력이 심각히 흔들리고 있다.

끝없는 사랑과 관용, 이해와 희생 없이는 가정이 제대로 유지되기 어렵다.

게다가 사람들의 윤리의식과 가치관도 크게 변했다.

지인은 글에서, 첫째가는 행복으로 꼽은 보물 1호에 부부화합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을 들었다.

순간 얼굴아 화끈해졌다.

그렇다면 나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으뜸가는 행복의 조건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부부가 구심점 역할을 하는 행복한 가정은 전체 가정에서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법륜스님은 즉문즉설에서 뭇사람들과 고민상담 시 수시로 자신이 독신인 게 생각사록 천만다행이라 말한다.

하나 되고자 결혼 후 별의별 문제로 갈등 겪으며 깨어지고 뒤엎어지는 사례를 하도 숱하게 접해서이다.

하버드대가 1938년부터 2013년까지 다양한 계층의 소년 724명을 뽑아 2년마다 그들을 인터뷰하며 인생을 관찰 연구했다.

75년 간의 장기 연구 끝에 <성인 발달 연구팀: 행복의 조건>에서 밝힌 '행복'의 첫째는 '좋은 인간관계'였다.

성공, 돈, 명예, 성취보다 가족, 친구, 공동체와의 깊은 유대감이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따뜻한 관계 형성 (Warm Relationships), 삶의 의미와 목적 찾기 (Meaning and Purpose), 긍정적 감정(Positive Emotion)과 몰입(Flow)이 뒤를 이었다.

결론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그리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에 달려있는 행복이었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세계 17개국 1만 88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놀랍게도 '물질적 행복'이 1순위인 경우는 한국이 유일했다.

일본 미국 영국 등 다른 대부분 국가들의 1순위는 ‘가족’인데 반해 한국은 3위였다.

물질적 행복과 건강 그다음 세 번째로 든 순위가 가족인 한국이다.

그래서인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족해체의 다양한 결과물 중 하나는 1인 가구 증가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내가 놓치고 산 것이 무엇인가를 오래 묵상하게 되었고 깊이 성찰하게 하였다.


연리지

한라생태숲은 자주 오는 터라 연리지와 연리목을 어디 가면 만나는지 훤하다.

연리(連理)는 두 나무의 일부가 서로 붙어 자라는 현상을 일컫는 말로 부부의 사랑을 비유할 때 쓰인다.

이른바 나무의 연리 현상에 따라 연리지(連理枝), 연리목(連理木), 연리근(蓮理根)이란 단어가 생겼다.

연리지 유래는 중국 <후한서>에서 출발한다.

후한 말 학자인 채옹의 효성을 적은 채옹전(蔡邕傳)>에서 연리지란 말이 처음 나온다.

효성이 지극한 채옹은 3년간 모친의 병간호를 하였으나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무덤 옆에 초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였다.

어느 날인가 무덤가에 뽕나무와 느티나무 싹이 터서 자라기 시작했는데 두 싹은 서로 바짝 붙어 자라더니 마침내 하나의 나무가 되었다.

이를 본 사람들이 채옹의 지극한 효심이 하늘에 닿아 나타난 기적이라 여겼다.

원래는 남녀 간의 사랑보다는 이처럼 부모에 대한 극진한 효성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고대 중국 문헌인 <산해경(山海經)>에 처음 등장한 비익조는 암수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라서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한다는 전설 속의 새다.

비익조야 말로 떨어질 수 없는 남녀 간의 깊은 사랑이나 부부간의 영원한 결합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 후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현종과 양귀비의 비극적인 사랑을 읊은 <장한가(長恨歌)>에서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連理枝)가 되기를 원하노라"라는 서사시를 남겼다.

백낙천의 시로 두 사람 사이의 영원하고 애틋한 사랑을 상징하는 뜻으로 연리지가 자리 잡게 되었다.

여기서 비익연리(比翼連理)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는데 굳건한 사랑으로 한평생 부부 화목함을 이르는 말이다.


고목 한 그루에 오랜 세월 얼키고 설킨 연리지


내심 찔리지 않을 수 없었다.

비익연리는 고사하고 백년해로 약속하고 오십여 년 만에 따로가(홀로가 아닌 것만도 다행) 되어 반쪽은 미국을 고집하고 다른 반쪽은 한국으로 훌쩍 날아와버렸으니.

함께 부부해로 하는 것이 상식인 노년 세대는 이를 쉬이 이해하거나 수긍하려는 자세와는 거리가 다.

분명 말 못 할 사연이 숨겨져 있으려니, 하는 노골적인 의혹의 시선 뒤로 단순히 지레짐작을 해버리고 만다.

반면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한 부부라도 사정에 따라 각자 따로 생활하는 경우를 쾌히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들의 개방적 사고는 놀라울 정도로 쿨해서 매사 흑과 백, 예스와 노가 분명하다.

싫고 좋음도 정확하게 드러낸다.

그 솔직담박함이 편해서 좋으나 나이 든 층은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세상은 빠르게 변해 가는데.

부부가 따로 지내는 삶의 양태를 두고도 처음 한동안은 타인의 눈빛에서 궁금해하는 심사가 바로 읽혔다.

어정쩡한 독거상태가 길어지자 이를 본 사람들은 그쯤에서 추리력을 거둬버렸다.

에이 뭐 헤어졌겠지, 이혼가정으로 속단하거나 또는 얼마 안돼 돌아가 합치겠지, 별거나 졸혼으로 여겨 내심 하는 꼴을 지켜보자는 눈치다.

누군가의 삶의 방식에 타인은 관심 꺼요, 신경 끄세요, 가 답이련만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들.

스스로도 기꺼이 관종에 편입되길 원하는 한편 타인의 일상사에 관심이 많은 게 한국인의 특성 중 하나가 아닐지.

거기서 비교심리가 태동돼 끊임없이 남과 나를 견줘보며 행/불행의 늪에 갇혀 지낸다.

유달리 체면치레를 중시하여 남의 눈에 어찌 비칠까 전전긍긍, 쇼윈도부부는 연예계의 문제만이 아니며 우울증이 사회 이슈가 될 정도로 GDP에 비해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현저히 바닥권을 치고 있으니.

게다가 아무리 양성평등시대를 살아가고는 있다지만 여성들의 주체성과 자립성이 현저히 낮은 나라 국민이기도 하지 않을지.

유리천장이 깨어진 지 오래건만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하긴 노년층의 경직된 사고는 아직도 내외(內外)의 분별이라는 부부유별 정신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나 또한 거기 예속돼 살아온 세대다.

참을 인(忍) 한자는 참고 견딘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칼날(刃) 아래 마음(心)을 놓았으니 어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마음으로 참아낸다는 의미이기에 영 아리고 쓰리다.

한쪽만의 희생으로 가정의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물론 나만 매사 참고 산 건 아니리라.

그럼에도 과거 가부장제 하에서의 여성 입지는 비좁았으니 구세대답게 약자로 산 건 분명하다.

일찍이 내가 좀 더 용기 있고 지혜로웠다면 애진작 운명에 반기를 들었을 터인데.

딸이 싱글의 삶을 견지하는 게 솔직히 부모 탓이 아닌가 싶어 자기반성을 하게도 된다.

아마도 딸은 바로 위, 2대에 걸친 여인의 삶을 통해 불교 관점으로 해석하자면 업장의 고리를 자신이 끊어내고자 함일지도.

하긴 내 의견 역시, 남녀 불문하고 자기 주관만 뚜렷하다면 능력 갖춰 당당히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갈 자신이 있을 경우, 독신의 삶도 살아볼 가치가 충분하다며 딸의 선택을 지지하는 1인이다

나이 든 이제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자주 자립 자유를 외치며 고맙게도 걸림 없는 홀로의 삶이 주는 행복을 만끽하는 중인 나.

이 나이에 이르러 웬만한 허들을 만난 들 무에 겁나랴.

건강 허락되는 한은 여기서 주어진 하루하루를 즐겁게 그리고 하늘에 감사하며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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