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아래 윗집에 사는 세 여자가 브런치를 먹으러 동홍동에 있는 한식당으로 향했다.
하필이면 주말은 그 식당이 노는 날이었다.
다른 음식점으로 가려다가 마침 눈에 띈 메가박스다, 우린 식사 대신 영화나 보자며 극장으로 들어갔다.
세 편의 영화 중 제1관에서 상영되는 <왕과 사는 남자>를 골랐다.
마침 시간이 곧바로 연결되기에 팝콘 한 통 사들고 셋이 죽 앞자리에 앉았다.
극장 입구에 '누워서 보는 영화관'이라 쓰여있듯 리클라이너 좌석이 갖추어진 터라 푹신한 의자는 착석감이 매우 좋았다.
영화가 시작됐다.
누구나 익히 아는 내용을 다룬 영화다.
나어린 임금 단종의 망연한 시선, 혹독한 고문 끝에 능지처참 당하는 사육신, 쿠데타로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세조, 노회 한 지략가 한명회의 존재감. 단종 복위를 줄기차게 시도하는 숙부 금성대군, 수양대군과
대립각을 세웠던 안평대군은 김종서. 황보인에 이어 강화 교동도에서 사사된다..
사육신은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의사(義士)는 유성원, 유응부 여섯 분이다.
생육신은 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온 여섯 분 이름이 술술 풀려나온다.
사육신과 생육신의 존함이야 역사시간에 외웠어도 뒤늦게 부각된 엄흥도, 그가 바로 왕과 산 남자다,
영월의 호장이었던 그는 뒷날 충의공(忠毅公)으로 추종된 엄흥도이다.
그는 유배온 왕 곁에서 몇 달 가까이 살았고 그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낸 사람이다.
1457년 6월 22일 영월 청령포로 밀려난 단종은, 그해 10월 24일 관풍헌에서 눈을 감았다.
그와 지낸 몇 달 동안, 궁을 떠나 난생처음 거친 자리에 임한 열 일곱 상왕은 백성들과 부대끼며 비로소 단단해졌다.
나약한 소년에서 눈빛 한결 깊어지고 강해졌다.
극단의 비극적 상황 속 인간의 처연함은 왕왕 무기력으로 표현된다.
그보다 더 연민을 자아내게 하는 단종의 의지 결연한 눈빛조차 이미 결말을 알기에 슬프게 다가왔다.
하지만 감독은 재치 있게도 역사적 사실에다 사이드 스토리를 더 흥미롭고 찰지게 끼어넣었다.
맛깔나게 잘 버무린 솜씨가 눈요깃거리로 세팅 잘된 식탁에서 완연 빛이 났다.
결말까지 훤한 내용이지만 영화 속에 풍덩 빠져들게 하는 연출자의 재주야 영화평론가들이 진작에 알아본 바이고.
소싯적에 날 가장 많이 울렸던 영화는 60년대에 본 '저 하늘에도 슬픔이'와 '단종애사'다.
당시 학교에서 단체로 간 극장은 출렁출렁 눈물바다를 이뤘었다.
언감생심 가죽소파 의자야 외화에서나 구경했던 시절.
긴 나무의자도 없어 땅바닥에 멍석인지 가마니 떼기를 깔고 앉아 옆친구와 머리를 박고 울다 보다 했던 그 영화.
단종애사 영화를 보고 얼마나 울었던지 눈이 다 퉁퉁 부었더랬는데. 이번에도 청령포 굽이 트는 동강 물줄기를 보자마자 또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흥행작의 보증수표요 믿고 보는 배우라는 유해진의 넉살에 쿡쿡 웃다가 어린 노산군만 나오면 입을 막고 흐흑 느껴울면서 러닝타인 두 시간이 어찌 흘러간 지도 몰랐다.
배경은 1457년 조선 시대다.
조선을 뒤흔든 계유정난으로 유배길에 오른 어린 왕 이홍위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은 엄흥도가 주축이나 의로운 금성대군과 냉혹한 한명회도 독보적 카리스마 넘친다.
사육신이 참혹스레 고문 당하는 장면의 긴장감과 처절한 가난이 일상화된 영월 광천골의 산촌 풍경이 평화로이 시점 교차된다.
핏자국 흥건한 대립과 자연 따라 살아가는 촌락의 평화가 서사를 한껏 옥죄었다 풀었다 한다.
정의로운 금성대군이 비밀리에 결사를 모의하는 단호한 시간과 군사 집결시의 긴박한 시간 사이의 밀도 팽팽한 고요.
바로 폭풍전야의 밤이다.
결연한 의지와는 달리 결과치가 아예 나와있으니 배역을 맡아 연기하기는 그만큼 어려웠을 게다.
쩌르르한 아픔 가운데서도 흐름 유쾌 경쾌하게 풀어낸 영화다.
종래의 눈물 쥐어짜는 최루성만으로는 현대의 객석은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
청령포라는 육지 안의 고도인 유배지에서 노산군이 마을 사람들과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을 담아낸 부분이 인간적이고 그래서 여운이 남는 이 영화.
다 아는 얘기이나 선과 악 이분법에 매몰되지 않게 부드러이 유도하는 대로 영상을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떠먹여 주는 방식이나 거부감 없이 스며들게 하는 세련된 기법이라니.
궁궐을 강제로 떠나며 마음을 닫은 어린 상왕에게 처음으로 사람 사이의 연대, 웃음, 나아가 삶의 의미를 알게 해 주며 닫힌 문을 열게끔 진심을 건네는 장치도 따스해서 좋았다.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 무참히 짓밟히면서도 사람은 사람을 향해 그예 마음을 열게 되더라는 사실 역시 훈훈하다.
무엇보다 그 작은 연대가, 비록 역사를 바꾸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한 인간의 비극을 견디게 하였다는
사실이 뭉클했다.
이 영화의 끝은 애도의 형식에 가깝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의 죄라면 궁중에서 태어난 죄.
생 죽임을 당할 만큼의 큰 죄를 지을 겨를도 없는 어린 나이가 아닌가.
그는 그예 강을 건너갔다.
가여운 열일곱 소년왕의 죽음, 홀로 가는 그 길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순간, 단종에게 사약을 올리러 왔던 임무 차마 집행치 못한 의금부도사 왕방연이 남긴 애연하기만 한 시조 한수가 떠오른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은 님 여의옵고/
내마음 둘듸 업셔 냇가에 안쟈시니/
뎌 물도 내 안 갓하야 울어 밤길 예놋다.
어린 상왕의 억울함은 온 백성이 안다.
하여 산천초목조차도 한결같이 울었다.
이런 부조리를 받아들이는 일도, 이를 극복하고 일상으로 회복하기도 쉽지만은 않지만 도리 없는 일.
소중한 대상을 잃고 나서 느끼는 슬픔과 고통 그 이상의 먹먹함이리라,
엔딩 자막이 올라가는데 울컥 해소되지 않은 아픔이 재점화된다.
얼른 화장실로 내닫는다.
수돗물을 틀어놓고 후련하도록 눈물콧물 씻어낸다.
모처럼 덕분에 안구정화까지 확실하게 했다.
이 말은 그래도 꼭 하고야 말겠다.
권선징악.... 인과응보... 사필귀정.... 자업자득이다.
죄는 지은대로 가고 덕은 쌓은 대로 간다고 했다.
인과의 법칙이 얼마나 무서운지, 업보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오십 년 세조의 생애가 적나라하게 그 실상을 보여줬다.
평생을 지독한 피부병에 시달리다 죽은 세조,
그는 세자로 봉한 스무 살 큰아들을 졸지에 잃는 참척의 고통을 당했으며 훤칠한 둘째 아들 예종도 즉위 1년 만에 눈을 감았고 심지어 원손은 세 살 나이로 세조 앞에서 죽었다.
어떻게 살 것인지는 자명하다.
삶의 무게감은 이리 가볍지 않음이니.
세조의 권력욕 아래 희생된 자 무수하거늘 살상을 밥 먹듯 하고도 잘 살 줄 알았다면 그는 어리석은 자다.
왕위 찬탈자라는 오명으로 영영세세 각인된 세조.
영화는 그에 대한 평가를 유예시켰지만, 이미 숙종이 단종을 복위시킴으로 세조는 인륜 저버린 불의한 죄인으로 자리매김됐다.
세종이 인정한 당대 조선 최고의 천재였던 김시습, 매월당은 천하를 피로 물들이며 조카의 왕좌를 빼앗은 세조의 비참한 말년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제발 벼슬만 받아달라며 세조가 부를 때마다 똥물을 덮어쓰고 거부했던 남자.
킹메이커 한명회를 "네놈이 영웅이라면 파리가 새다."라 조롱한 김시습.
변절자 신숙주를 향해 "이 더러운 놈아." 호통치며 그에게 토사물을 뱉어낸 매월당.
이 영화를 본 뒤 더더욱 생육신 김시습이 생각났다.
https://brunch.co.kr/@muryanghwa/2362
https://brunch.co.kr/@muryanghwa/8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