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논
매화 피어야 봄이 오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하논 들녘에 들꽃 피어나야 진짜 봄이 온 거였다.
자운영 소식이 궁금해 들어간 하논이다.
겨우 자운영 잎자루만 보고도 마음이 놓였다.
오, 곧이어 분홍보라 이쁜 꽃을 만나겠구나.
바로 옆자리에 연보라 반지꽃, 하얀 별꽃, 꽃분홍 광대꽃과 쇠갈퀴꽃, 연하늘색 봄까지꽃, 샛노랑 금화 같은 민들레꽃, 논두렁에 냉이꽃도 지천이었다.
하얗게 흐드러진 냉이꽃을 보자 백의 떨쳐 입고 불의에 저항한 이재수의 난이 생각났다.
하논 온 김에 옛 이름이 한논성당이었던 옛 터를 들러보기로 했다.
조붓한 들길 걸어가는데 이 지역에 유독 많이 서식하는 꿩이 예서제서 꿕꿕 목쉰 소리를 냈다.
재잘거리는 멧새 소리에 화음 넣듯 섬휘파람새도 고운 목청으로 화답했다.
딱따구리도 타다닥! 제 식대로 새봄을 노래하고 있었다.
멀리 마을 어느 집에서 정오도 지난 시각에 꼬끼오~~ 닭이 길게 목청을 뽑았다.
길가에 흐드러진 유채꽃은 잔바람에도 연신 한들거렸다.
찔레 순 움쭉 자란 풀섶에 쑥이 보얗게 돋았기에 쪼그리고 앉았다.
아무 대비 없이 나왔지만 손톱으로 쑥 한 움큼을 뜯어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햇쑥으로 슴슴하게 된장 풀어 국을 끓이면 새 봄의 기운과 향 가득 마실 수 있을 터다.
한 줌 더 뜯으려는 데 쑥 잎에 작은 쐐기가 붙어있어 얼른 일어났다.
하긴 누리에 봄이 와 새 생명마다 힘차게 깨어나는 중, 찔레 햇순을 좋아하는 쐐기라 어느새 알을 깨고 부화한 모양이다.
성당 옛 터 진입로에 접어들자 귤농장 양 옆으로 돌담에 기댄 동백나무 무성했다.
길 위에는 동백꽃 송이째로 툭 툭 떨어져 발길에 이개 졌고, 부산스레 오가는 동박새 맑은 소리 여울지고 있었다.
요새가 한참 귤나무 전지철이라 윙윙대는 기계소리 시끄러워도 동박새 소리 덕에 귀는 순해졌다.
하논성당 터 입구를 지키는 은행나무 나목이라도 늠름한 자태였으며 현무암 석물로 배치시킨 제대와 독서대 묵직했다.
이곳은 산남지방(한라산 남쪽)에 최초로 들어 선 천주교 성당 자리였다.
1901년 제주도에서 일어난 도민들의 봉기였던 신축민란이 터지기 전까지는.
'이재수의 난'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신축교안은 외세를 뒷배로 한 가톨릭 신자가 행패를 저지르고 약탈을 해도 관아에서 처벌하질 못했다.
국운이 쇠할대로 쇠한 구한말 고종이 프랑스 선교사들을 "나처럼 대하라!" 란 특권을 부여한 때문이다.
이에 근거, 잘못을 범하고도 일단 치외법권지대였던 교회로 달아나면 관리들도 잡지 못했기에 교인들의 온갖 악행이 끊이지 않았다.
외세종교를 등에 업은 봉세관 강봉헌의 자심한 착취로 인한 갈등과 충돌, 그로 인한 프랑스 군대의 침입, 3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신축민란으로 제주에 뿌리내렸던 가톨릭은 심하게 타격을 입었다.
1901년 5월부터 한 달간 제주도에서 천주교회와 도민 사이에 벌어진 어이없는 충돌 사건.
그 바람에 하논성당은 불에 타버렸던 것.
훗날 이 터에 상징적인 "화해의 탑'이 서게 된 연유다.
종교가 무릇 본연의 역할을 저버리고 권세를 등에 업었을 때 그 폐단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현장이기도 한 이곳.
전쟁과 난리가 발생하면 우두머리도 목숨 잃지만 아무 죄 없는 백성들 다수가 피해를 입는다
순박한 민초들이 억울하게 희생되면 새하얀 냉이꽃 될까.
백의의 영혼들이듯 봄마다 피고 지는 냉이꽃에 그래서 그들이 겹쳐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