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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10. 2024

반지꽃 곁에서


뜨락이 없는 대신 베란다에 놓인 몇 개의 화분들. 그네들이 요즘 봄을 알리기 위해 한창 바쁘다.

아열대성 관엽식물의 변화는 별로 눈에 띄지 않지만 꽃석류 앙상했던 가지에 발그레 연한 새순들이 함빡 솟아났다. 뿐만 아니다. 수선과 창포가 한 뼘쯤 키 돋우고 섰는가 하면 찔레나무 분재에 연두색 풀물이 수채화로 번져간다.

오늘 아침, 그네들에게 물을 주다 보니 창포 뿌리짬에 의외의 꽃이 피어 있었다. 반지꽃, 시골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이른 봄의 진보랏빛 자그마한 꽃. 그것이 고 귀엽고 앙증스러운 꽃잎을 열고 있었다. 한꺼번에 세 송이씩이나.

지난해 봄. 절에 다녀오는 길에 쑥을 뜯다가 풀섶에 무성한 반지꽃을 보고 포기째 옴폭 떠다가 화분에 심은 적이 있었다.

초여름까지 그 반지꽃에서 꽃대가 올라와 계속 꽃이 피고 지더니 씨앗을 화분에 묻었던 모양이다. 제 스스로 땅에 묻혀 겨울을 나고 양광을 기려 피어난 작은 꽃.

순간, 오묘한 자연의 섭리 앞에 숙연한 느낌마저 들었다. '냉이꽃 한잎에겐들 그 목숨을 뉘 넣을까' 하신 가람 선생님의 속뜰이 이러했을까. 새삼 생명의 신비, 우주의 질서를 체감할 수 있었다.

지금은 갓 우수가 지난 이월. 아직 창밖은 겨울의 잔해가 채 가시지 않았는데 남향 베란다는 그대로 봄이다. 하루가 다르게 꽃망울 실해지는 진달래 그늘에는 괭이밥 이쁜 잎이 소복하다.

보이지 않는 잔 바람에 호르르 나부끼는 반지꽃이 괭이밥을 향해 귓속말이라도 전하는 것일까. 소곤대듯 살풋 고개 숙인 반지꽃에 괭이밥이 짐짓 귀를 기울인다. ​

그네들의 모습에서 나는 단발머리 나풀대는 예닐곱 살의 소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양지녘에 모여 소꿉놀이할 때면 사금파리에 차린 산수유 자잔한 꽃은 밥이 되고 쇠뜨기 돌나물은 반찬으로 차려져 반반한 돌멩이 상 위에 올랐다.

반지꽃으론 새끼손가락에 보랏빛 반지를 만들어 끼고는 개나리 노란 꽃을 머리에 비껴 꽂은 채 각시가 되던 소녀. ​소꿉질이 시들해지면 이내 바구니 찾아들고 들로 나갔다. 보리밭이랑에서 달래를 캐고 밭둑 따라 나물을 뜯던 어릴 적의 내 모습이 아스라하다.

그즈음, 얼음 풀린 냇가에서 외숙모의 빨래방망이 소리 들려왔고 주변의 버들강아지는 한결 도톰해 있었다. 삐릴리~ 창칼로 잘 다듬은 버들피리 불며 아지랑이 오르는 봄 언덕에서 뛰놀던 시절. ​​

안개이듯 순하게 봄비라도 내리는 아침이면
꽃씨를 뿌리며 조잘거리는 작은 몸짓들로 마당가는 생기가 넘쳐났. 고랑 갈라놓은 화단에선 흙냄새가 싱그러이 번져나곤 했다.

앵두꽃 망울이 부풀고 텃밭 장다리꽃이 노란 나비를 부를 즈음. 뒤곁을 둘러싼 대숲은 훨씬 청청해 있었다. ​

시골에서 자란 사람의 경우, 대부분 가슴에 안았을 이러한 추억들. 자운영을 알고 꽃다지를 알고 조바위 같은 할미꽃과 다정히 지냈다면 모두 친구가 되어도 좋으리. 거기에 반지꽃을 좋아했다면 더 말해 무엇할까.​

제철이기엔 좀 이른 지금. 우리 집에 피어난 반지꽃은 확실히 진객(珍客)이다. 앞당겨 봄을 가져다주었듯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마을 어귀 소나무 숲에 온 학이 아니어도 진보랏빛 조그만 꽃에서 느껴지는 어떤 예감.
내게 있어 적어도 그 반지꽃은 알라딘의 램프처럼 소망을 이뤄주는 경이로운 존재만 같으니. ​

민들레와 함께 초봄 들녘에 피어나는 반지꽃.
일명 제비꽃이라고도 한다. 반지를 만들어 끼기 때문에 반지꽃이라 부른다면 삼짇날 강남제비를 맞는 꽃이라서 제비꽃일까.

게다가 바이올렛이라는 또 다른 이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중년이 되어도 마음 항상 맑기만 한 내 친구의 세례명처럼 고운 이름이 바이올렛이다.

허나 오랑캐꽃이라는 별칭은 수긍이 안 간다.
이렇듯 조촐하니 수줍은 꽃이 어찌해서 변방의 야만족이란 이름이 되었을까. 날씨 풀려 반지꽃 필 무렵이면 국경 침노하는 오랑캐 때문인가,  분명 그럴만한 연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쉬 납득할 수 없는 이름이다.

아무튼 반지꽃은 내 식대로 언제나 반지꽃이라 불릴 것이다. 차마 한 줄기 따내어 반지를 만들 순 없지만 마음속에 끼어보는 반지인들 어떠랴. ​

반지꽃. 봄을 여는 꽃이며 또한 고향을 그리게 하고 유년의 회상에 잠겨 들게 하는 그런 꽃.


화분 한켠에 핀 그 꽃이 내겐 향 유심(幽深)한 춘란이나 고아한 매화보다 한결 소중히 여겨진다. 아무런 돌봄도 받지 않고 저 홀로 싹 틔워 피어난 꽃임에 그러하고 우리 집에 핀 첫 번째 꽃이기 때문이다. ​

한동안 반지꽃에 시선 주고 있노라니 하늘하늘한 줄기 끝에 살몃 치켜든 두 장의 꽃잎과 다소곳 펼쳐진 꽃잎 셋이서 나지막이 노래라도 부를 것 같다.

어릴 적 그 노래 <고향의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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