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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2. 2024

강과 산

지난 입하 무렵의 저물녘, 핏 스쳐 지난 남도 땅이 떠올랐다. 여행의 뒤끝이 노상 그러하듯 감미롭게 스며드는 노곤함과 함께 습습히 젖어오는 감상에다 그냥 나를 묻기로 했다. 그 까닭인가. 곁을 따르는 지리산과 섬진강이 맺지 못한 연(椽)으로 서로 그리워하는 애틋한 연인이듯 느껴졌다. 그때 먼저 우릴 영접한 것은 강이었다.


세간사 훌쩍 뛰어넘은 초탈한 자유인 양, 어찌할 수 없는 생의 적막인 양, 그렇게 허허로운 섬진강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울울한 청대밭과 너른 모랫벌 거느린 채 육자배기 질펀한 가락되어 흐르는 섬진강. 유장한 흐름의 행간에 아지못할 허무가 밴 듯하고 왠지 모를 저항의 기운이 서렸다고 여겨짐은 괜한 선입관인지.

  부드러운 연두로, 속 깊은 청록으로, 서늘한 남빛으로, 강물은 길고도 오랜 침잠의 고적에 몸서리치듯 뒤채이며 자주 태(態)를 바꾼다. 그렇게 풀 길 없는 한이며 목 메이는 설움과 치닫는 격정을 어딘가로 띄우는 섬진강. 섬진강은 그대로 남도 사람들의 삶이었다. 그 언저리에 태를 묻고 황토마루에 육신마저 묻히는 날까지 강을 바라고 사는 사람들.


자연히 사람들은 강을 닮는다. 거칠고 힘찬 기질을 지닌 낙동강, 기세좋게 내리닫는 한강은 역사를 만들었으며 기적을 일구어 냈다. 반면 섬진강은 나직한 은둔자였다. 어쩌면 그리도 남도인과 섬진강은 서로가 닮은 형인지. 백의의 한결같이 유순한 민초들이 묵묵히 강처럼 흘러갔는가 하면 질곡과 핍박의 거듭 속에 굽이굽이 순탄치만은 않았던 그들. 하냥 흘러가고 어쩐지 순탄치 않으며 아무래도 돌이킬 수 없기로는 인생이나 강물이나 한가지로 닮아 있었다.


그 섬진강에 화답을 보내는 것은 지리산이다. 지리산이 거기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제사 알 것 같다. 신록의 풋풋함이든 성하의 건강함이든 조락의 쓸쓸함이든 백설의 고요함이든 어느 계절없이 벅찬 감동 그 자체인 지리산. 그에 짝하기 조금치도 손색없는 섬진강이다. 둘은 천생 배필이다.


허나 너무도 뚜렷한 대칭을 이룬다. 섬진강은 여백과 선을 중시하는 동양화다. 불현듯 떠오른 선과 선이 공간 위에 형태를 잡아가는 동양화다. 그런가하면 지리산은 면의 표현에 비중을 두는 서양화다. 아기자기 섬세하면서도 엄숙한 위엄을 갖춘 서양화다. 그럼에도 동과 서는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극과 극은 상통하기 마련. 결국 이질적인 대비는 그 무엇보다 강렬하게 상대의 미적 효과를 극대화시켜준다.

남도 사투리만큼이나 유정다감한 섬진강은 장엄웅대한 지리산 자락을 감돌아 흐르다 이윽고 남해에 이른다. 그 긴긴 여정 동안 강과 산 사이에는 교감이 이루어진 것일까. 기실, 사모하는 마음이란 작정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갑자기 들이차는 조수다. 저절로 부풀어올라 피어나는 꽃망울이다. 사랑의 시작은 우연에서 비롯되어 방향도 질량도 예측불허이자 막무가내요 돌발적이고 운명적인 게 아니던가.

강이 거기 있어 산은 더 산답고, 산이 거기 솟아 강은 더욱 그윽하다. 산은 강을 보필하고 강은 산을 받쳐주는 훌륭한 한 틀이다. 그러나 만날 수 없다. 다만 서로 그리워하며 산은 묵묵히 강은 유유히 제 몫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하나로 섞이지 않아 더욱 영원한 사랑. 그들의 사랑은 상처 입히는 애집이 아니라 상대로 하여금 우뚝 빛나도록 북돋우는 배려다.

 가끔씩 겹겹의 연봉을 강물에 띄우므로 산과 강은 짧은 해후를 한다. 하지만 그림자는 실상이 아니다. 허상과의 만남은 공허하다. 부질없음이다. 꿈에서 깨어나 다시 산은 저만치서, 강은 이만치서 옛과 다름없는 간격을 두고 산다. 그렇다고 거리감이 마음마저 멀게 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 향기로운 사랑이란 품을 수 없는 그대를 먼 빛으로 바라만 보아야 하는 당신이 매양 간절한 마음으로 애타게 그리워하는 마음이리. 소유함으로 오히려 빛을 잃고 마침내 스러져 버리는 게 사랑의 속성. 아니 온전한 하나될 때 이미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마는 환상같은 사랑이니. 벅차도록 끌어안은 동시에 물보라로 흩어지는 인어공주의 전설같은 것이 사랑이리.

 언젠가 문화산책 시간에 본 그림 한 폭이 제목과 함께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그 화면이 생각난다. 조롱 안에 갇힌 새가 지그시 고개를 빼들고 벽에 걸린 족자의 새를 응시하는 모습이다. <서로 그리워하며>라는 화제(畵題)가 붙은 그림으로 중국의 문인화가 쇼수 한명괴의 수묵담채화였다. 서로 그리워한다는 것은 얼마나 애틋한 심사인가를 섬진강과 지리산을 보며 거듭 실감했다. 오늘, 그리움이 있어 아름다운 삶. 그 대상이야 꼭히 사람이 아닌들 어떠랴. 그런 구원의 사랑 하나 가슴에 품을 수 있어야 시인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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