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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13. 2024

폰페라다에서 소설 <다빈치 코드> 생각

카미노 스토리


비밀로 가득 찬 템플 기사단의 성을 카미노 길목에서 만났다. 기독교의 기사수도회 가운데 가장 유명한 조직으로 알려진 단체이기도 하다. 싸우는 수도승, 가난한 기사들의 모임, 성스러운 전사, 성전 기사단으로도 불리는 선민의식이 강한 템플기사단. 십자군 전쟁 당시 용맹함과 수많은 무공을 세운 기사단으로 명성을 떨쳤다.


예루살렘이 회교도들에게 유린당하자 기사(knight)들이 나서서 성지 회복을 외쳤다. 이에 많은 귀족들과 젊은이들이 호응했고 교황과 왕 그리고 각처의 영주들이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 단체가 바로 템플 기사단(Knights Templars)이다. 1119년 창립 이래  유럽 역사 속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집단이었던 템플기사단은 1314년 3월 18일, 지도자가 이단으로 몰려 처형당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흰색의 두건 달린 긴 망토와 방패, 강렬한 붉은색 십자가는 템플기사단의 심벌이다.


‘철로 만들어진 다리’라는 뜻인 폰페라다 이름의 유래를 알고 보니 딴은 그럴 만도 하다. 11세기 아스토르가의 주교가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자들이 도시로 들어서려면 건너야 하는 실 강과 보에사 강을 안전하게 지날 수 있도록 다리를 건설하면서부터 발전했다는 이 도시.


 페르난도 2세는 순례자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이곳을 템플 기사단에게 맡기게 된다. 이후 폰페라다에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템플 기사단의 성벽을 어느 요새보다 튼튼하게 세웠다. 신권이 왕권보다 우위를 점했던 당시라 템플기사단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따라서 기사단의 위세가 어떠했을지는 미루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폰페라다 상징물이 된 템플 기사단의 성(Castillo de los Templarios). 지금은 물기 말랐으나 해자가 깊이 둘러쳐져 다리를 건너야만 철통 같은 성에 닿을 수 있는 구조다. 묵직한 나무다리가 내려진 화산암 견고한 성 입구에 섰다. 관람시간이 지난 성문은  굳게 잠겨있었고 탑 위의 깃발만 저녁 바람에 펄럭거렸다.


12~13세기에 지어진 템플 기사단의 요새로 방어용 망루, 맹세의 탑 등이 있다는 안내글을 읽었다. 실루엣 근사한 열두 개의 탑은 별자리를 의미하며 당시 기사들은 세 겹이나 되는 성벽에서 세 번의 맹세를 했다고 한다. 그들만의 비밀 입단식을 하면서 치르는 일종의 비밀결사단 충성서약이겠다. 이같이 신분 노출은 물론 엄격한 계율을 지켜야 하는 등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비밀단체인 템플기사단. 그에 연관된 소설은 발표됐다 하면 스테디셀러로 뜨는 이유가 그만큼 신비로운 단체였기 때문이리라.


십수 년 전 미국 작가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는 가톨릭의 강한 저항을 받으면서 더 인기리에 팔려나간 소설이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가공의 세계, 픽션이다. 이에 과잉반응을 보인 자체가 독자의 호기심을 가일층 자극, 오히려 궁금증을 부채질한 결과로 이어졌다.


성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설 다빈치 코드는 자재로운 필력에다 빠른 전개,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로 독자들을 흥분시켰다. 하지만 보다 근접한 속 사정은 여기에 기원을 둔 또는 영향을 받은 18세기 일루미나티(Illuminati)나 세계정부를 꿈꾼다는 프리메이슨이 연결돼 있는 까닭은 아닐지. 세상이 흉흉하면 횡행하는 일종의 음모론적 사회관으로, 모습 드러내지 않는

비밀스러운 단체 배후에는 거대 세력이 조종한다는 류의.


폰페라다 성벽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 템플기사단의 주요 보물인 성배와 성궤. 여기에는 기사단의 전통에 따라 후세의 기사들에게 대를 이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고 한다. 또한 템플기사단의 기도문 속에는 이 두 보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비밀스러운 내용이 들어 있다 하니 호기심이 증폭될밖에.


어스름 노을빛에 잠겨드는 성채는 건물 자체만으로도 보라색 곱게 싸인 아름다운 상자갑같이 신비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뽄페라다에서는 매년 7월 첫 번째 보름달이 뜰 때(분위기 한번 제대로 잡는다) 중세의 템플 기사단을 기리며 밤을 보내는 축제가 열린다 한다. 그 축제가 아니라도 템플기사단은 이미 의식 깊이 각인, 저장되었으나 워낙 엄청난 얘기라 생각만으로도 환각제에 취한 듯 그저 어릿어릿해질 따름.


성채 외에도 시청사 주변의 조각상이 눈길을 끌었고 길게 펼쳐진 시가지 끝 광장 카페 풍경은 한껏 평화로웠다. 석탄인가를 채굴하는 광산지대가 가까워서인지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마을 같았다. 구시가지 언덕에 위치한 성 안드레스 성당 (Iglesia de San Andres)은 중세에 세워졌다 하나 17세기의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된 깔끔한 외양을 하고 있었다.


언덕 꼭대기의 엔시나 바실리카 성모 성당 (Basilica de Nuestra Senora de la Encina) 역시 르네상스 시대에 지어졌다는데 1573년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이 있던 자리에 재건축된 교회. 마침 대전 모처 성당에서 온 순례자들을 위한 특별 미사 시간이라 모처럼 한국말 미사에 참례했다. 밤늦게 숙소로 돌아오니 옛 수도원이었던 알베르게는 과거 영화를 증언하는 후광이듯 밝은 황금빛에 감싸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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