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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20. 2024

백록담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

영실 둘러선 오백장군 기암들 거느리고 깔딱고개 헥헥대며 넘어섰다.

햇살 뜨거워도 짙푸른 계곡 바람 시원하게 몰아쳤다.

신록에서 녹음으로 건너가는 유월 숲은 스무살 청년처럼 건강미가 넘쳤다.

벌써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팀도 있었다.

새벽같이 와서 덥기 전에 하산하는 젊은이에게 철쭉이 좀 있더냐고 물어봤다.

그가 소지한 대형 카메라로 미루어 사진을 찍고자 올라온 듯 해서였다.

에이~ 벌써 다 졌어요,라며 싱겁다는 듯이 웃는다.

단호한 한마디에 기대감 툭툭 털어냈다.

숫제 홀가분하다.

꼬닥꼬닥 나무계단 딛고 올라 드디어 해발 1400고지.

구상나무 싱그런 향 덕분인지, 높이가 있어서인지 흐르던 땀이 점차 식어갔다.

무엇보다도 오르막을 지나 산길 완만해진 덕인듯싶었다.

청청한 상록 침엽수가 하얀 뼈로 화한 고사목 지대를 통과했다.

처음 볼 때는 감탄사 절로 터졌던, 산정에 드넓게 전개된 놀라운 대평원.

연분홍 철쭉꽃이 천상화원 이뤘더라는 곳이다.

군데군데 더러 늦된 철쭉꽃이 남아있었다.

윗세족은오름은 하산길에 오르기로 하고 노루샘 지나쳐 윗세오름으로 곧장 향했다.


윗세오름 휴게소 층계에 앉아 김밥과 과일로 점심을 때우고 남벽분기점으로 전진했다.


양편은 구상나무숲,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되는 푸른 터널 길을 지나면 이번엔 뙤약볕 내리쬐는 평원길.


그래도 백록담 남쪽 화구벽이 점점 선명하게 드러나자,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용암의 기기묘묘함에 온전히 시선을 고정시켰다.


남벽에 수직으로 솟구친 바위마다 칼바위 송곳바위, 자코메티 조각같이 예리한 자태 연달아 나타나 지루하지가 않다.


웃방아오름 아래를 지나는데 섬휘파람새와 뻐꾹새 서로 화답하듯 노래 주고받는다.


용출수 고인 방아오름샘 맑은 물에 꼬리 까닥대며 물 한모금 마시고 가는 새 이름은 뭘까.


점점 이글거리는 태양, 방아오름 전망대 나무 데크에 털썩 주저앉아 두 다리를 뻗는다.


또다시 왔다 가노라, 분기점 굳이 찍을 마음도 사라진다.


그냥 거기 머물며 남벽 하염없이 올려다본다.


좀 전에 본 남벽이 자코메티 작품 닮았다면 여기서는 용암 덩이 눈싸움하듯 마구 겹쌓인 모양새가 익룡 발갈퀴 닮았다.


폭발하던 그 기세 그대로 흘러내리다가 서로 눌리고 덧겹쳐지고 다시 비집고 터져 나온 마그마, 야수처럼 이빨 드러낸 채 날카로이 울부짖는다.


구름도 삼가 접근을 꺼려 저만치서 새털 조각으로 흩어져 버린다.




온 길 되짚어 하산을 한다.

백록담 가에서 뻐꾹새가 우리를 전송해 준다.

윗세오름 휴게실 앞 새로 만든 대피소를 잠깐 둘러본다.

건물 외관이 마치 아담하고 세련된 작은 교회 같다.

실내에는 간이의자가 줄지어 놓여있고 에어컨 시설이 되어있으니 아마 난방도 가능하겠지.

허리까지 덮는 적설량으로 길이 막힌 날, 설산 등반하다가 조난 당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겠다.  


이번엔 노루샘에 들러 시린 샘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삼다수 물병 비워 물을 받아 배낭에 넣는다.

에비앙에 비할 바 없는 이 물이야말로 한라산 최고 높은 지역에서 솟은 특급 삼다수다.

족은윗세오름에 오르려 했으나 제주 쪽 하늘은 안개구름이 가득하다.

시야 트이지 않는 전망일 터라 미련 없이 포기하고 만다.

하산길은 서두르지 않아도 금방 내려와진다.

오늘 우리 2만 2천보나 걸었네요, 도반이 싱그레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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