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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30. 2024

블로깅이 고마운 이유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여니 안개 비 고요히  내렸다.


고사리 장마가 드는 사월부터 오월 며칠 쨍하다가 유월 들자마자부터 장마철로 접어든 제주.

날마다 이어지는 궂은 날씨라 어차피 외부활동이 어려운 상황, 그래선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사시대 수렵인들은 눈 첩첩 쌓인 겨울이나 하늘이 뚫린 듯 억수장마 질 때 무얼 했을까?

우선 동굴에 불씨 꺼지지 않게 모닥불 피워놓고 가까이 둘러앉아 있었으리라.

이 눈 그치면..... 이 비 멎으면..... 어느 방향으로 나가 사냥할지 상의했을까.

나가기만 하면 먹거리 사방 지천이니 미리 의논하고 자시고 할 거도 없었을까.

모닥불 사이에 두고 우우 야아아~노래 불렀을까.

그러면 무슨 신명에 노래가 나오냐 타박했을까.

샤먼이 아니라도 빙빙 돌면서 다들 춤을 췄을까.

보릿고개 노래처럼 얘야, 배 꺼질라! 누군가 손사래를 쳤을까.

불빛 등지고 돌아서서 홀로 벽에 그림을 그렸을까.

뾰쪽한 돌 거머쥐고 손아귀 아프도록 동굴 벽 깊숙이 음각을 남겼을까.




그 짝이다.

봄 내내 날마다 컴퓨터 자판 앞에 두고 사진 다듬거나 글씨 새겨 넣으며 지낸다.

상이 끊기거나 시선 피로해지면 바닷가 또는 숲길 거닐며 푸른빛 충전시킨다.

심신 정화와 환기를 위해서다.


비 혹은 황사 심하게 이어지는 우중충한 기상도라 외출이 묶인 지도 어언 달포 넘었다.

외부 활동이라면 반짝 해 날 때 운동 삼아  

거니는 해변 산책이 전부다.

돔베낭길 송골 지나면 두어 시간도 잠깐일 만큼 놀만 한 바다가 있어서이다.


자갈밭 돌도 고르고(탐석가 흉내) 게도 잡으면서(수렵 채취인 흉내) 지루할 새 없이 지내긴 하지만 집에 들앉아서도 심심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즐길 거리가 기다리는 덕분이다.

그러면서 새삼 브런치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

즐기기 위해 자진해서 펼쳐놓은 재미진 공간인 이 블로그 애플리케이션을 열어줬기에 고마운 것.

아부할 뜻 추호도 없는 것이 알다시피 블로그 운영하는 여타 웹사이트 흔해빠졌다.

그럼에도 아직은 숫내기인 이 자리, 이웃 맺기 방식도 모르지만 들어서면 쉴 수 있는 내 방을 가졌다는 게 이 시기 특히 다행.

조회수나 추천수며 댓글에 구애받지 않음은, 이 놀이마당을 욕심 없이 즐기자 해서이다.

책임이나 의무가 따르지 않는 편안함, 오로지 스스로 좋아서 하는 놀이판이 블로깅질 아닌가.

여타 잡동사니에 신경 써야 된다면 그게 긴장감이고 스트레스지 무슨 놀이?

아울러 객쩍은 일상사를 들여다 봐주며 놀이판에 동참해 주는 이웃들도 고맙다.

만일 이 놀이마저 없었다면 하루하루 집안에서 무얼 하며 지냈을까.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는 건 나름의 놀이 기구가 있어서 일 터다.





살아간다는 것(Lifetimes)이 원제인 영화 <인생>은 도박으로 가난에 몰린 일가의 비극이 담겼다,

흐릿한 등불 아래 길고도 무료한 저녁시간을 그림자놀이로 달래는 사람들.

차츰 솜씨가 늘자 도시로 나가 생계유지 수단으로 삼게 된다.

그림자 극으로 밥벌이를 하게 된 것.

인간은 재미를 추구하는 유희적 동물임과 동시에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도구적 동물이라 했다.

그 와중, 문화혁명의 소용돌이 속 홍위병의 피바람이 지난 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살아남은 주인공.

노인의 일대기에서는 더러 <25시>를 연상시키는 부분도 없잖으나 창조는 모방에서 출발한다던가.

아무튼 유희적 인간의 놀이터로 블로그만 한 것도 없지 싶다.

Homo Artex가 별 건가.

미셸 로르블랑셰는 <예술의 기원>에서 '인간은 존재하는 순간부터 예술가였다'라고 선언했다.

우리는 자유로운 호모 루덴스이자 호모 아르텍스다.

장마진 오늘도 마음만은 환하고 밝게!

모든 건  시간이 지나면 흘러 흘러 마침내  끝에 이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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