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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13. 2024

별방진 메밀꽃밭 나비 떼에 홀리다

보얀 안갯속에 마을은 낮게 엎드려 있었다.


가르마같은 고샅길 희미하게 이어졌다.

해무 밀려드는 하도리 들판길은 고향이듯 정스러웠다.

동구 퐁낭에선 까치 우짖었고 먼 산 어딘가에서 뻐꾹새 소리 아련했다.

비를 예고하는가, 제비 무리 땅바닥 스칠 듯 낮게 날아다녔다.

환해장성 찾아 나선 지 며칠째, 제주성을 둘러본 이튿날 별방진 성곽으로 향했다.

게서 뜻밖에도 흐드러진 메밀꽃밭을 만났다.

서귀포 일원에선 축축한 장맛비에 이미 녹아내린 메밀꽃이다.

반가움에 성곽보다 먼저 메밀밭으로 내달았다.

하긴 먼저랄 거도 없다.

성을 둘러싸고 있는 바깥쪽 공지에 조성된 대단지 메밀밭이니 동시에 모두를 섭렵한 셈이다.

연두색 이파리 레이스 치마처럼 두르고 하이얀 메밀꽃 불그레한 대궁 위에 점점이  피어있었다.

누군가는 소금 뿌린 듯 희다고 한 메밀꽃.

한창때 지나 더러 고동색 메밀이 맺히기도 했으니 순백색은 아니나 그래도 장관이었다.

그 메밀꽃밭에 청매화 난분분 휘날리듯 나비가 무리 지어 날아올랐다.

나풀나풀, 영혼처럼 가비얍게 날아다니며 춤을 추는 흰나비들.

수천의 나래짓은 숫제 현요眩耀함이었다.

현기증 일게 하는 눈부심이었다.

성벽에 기대어 나비 떼 군무에 홀린 채 세사 까무룩 잊게 한 시간이라니.

한참도록 땡볕 마주하고 그렇게, 더운 줄도 모르고 서서 나비 떼를 관찰했다.

처음엔, 비 쏟아질 낌새에 미리 꿀을 비축해 두려는 가보다 했다.

허둥지둥 서두르는 품새로 봐서 먹이를 나르는가 싶었다.

한참 지켜보자니 그보다는, 나래 무거이  젖기 전에 짝짓기를 하려는 모양새 같기도 했다.

나비는 찬란한 죽음으로 환생을 기약한다.

실제로 나비의 한살이 과정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이어질 것이므로.

꽃은 향기가 되고 향기는 나비가 된다 했던가.

그러나 별방진에 모여든 나비는 꽃 향에서 생겨난 게  아니라 왜구에 맞서 싸우다 순사 한 백의의 민중이 아닐까 싶었다.

별방진에 사다리 세우고 개미처럼 기어올라 조총 쏘아대는 왜의 병사들.

성을 지키고자 창칼로 마구마구 쳐내고 돌덩이 힘껏 던지며 목숨 아랑곳 않고 대적하던 무명옷의 부락민들.

백의의 넋들이 메밀밭 흰나비 아니 되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일, 저토록 나비 떼 숱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사람은 죽어서 새도 되고 나비도 된다 하였다.

육신 헌 옷처럼 벗어버리고 영혼 자유로이 훨훨 날아가 정말이지 그럴지도 몰라라.

사람의 전설 / 정병화 시


당신이 자꾸만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한때 그대가

은하계와 은하계 사이를 날아다니는

한 마리 거대한 새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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