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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13. 2024

하도리 별방진과 밭담길

제주도 해안선을 따라 120킬로나 이어 쌓은 조선시대 석성인 환해장성.

현재 하도리 환해장성은 곳곳이 무너진 채로 백여 미터만 남아있었다.

우도를 침범한 왜구들이 본섬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쌓은 방어벽인데 성벽치고는 규모나 높이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환해장성 흔적을 지나 별방진에 이르렀다.


조선 중종 때 축조됐다는 방어 성곽인 별방진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읍성 훼철령’에 따라 성곽들이 대부분 훼손되었는데 이를 문헌 고증에 따라 되쌓아 현재 제주도 기념물 제24호다.

<신동국여지승람> 제주목 관방조에 “별방성은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2,390자이고 높이는 7자이다.”라는 고증에 근거해 복원하였다.

지난해 왔을 적에는 메밀꽃이 소금 뿌린 듯 하얗게 흐드러졌었는데 이번엔 메밀 순이 한 뼘쯤  돋아나 있었다.


조선 중종 때 목사 장림이 쌓은 성곽으로 부락을 지키는 군사 기지 성격의 시설인 만치 성벽 구조는 매우 견실하였다.


성곽 자체가 예로부터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군사적 요충지에 설치한  방어유적지답다.


성벽 위로 나있는 길을 걷다가 성 안쪽 밭에서 고구마 순을 심는 모자를 만났다.


여든여덟 할망은 굽은 허리를 숙인 채 밭두둑에 고구마 순을 묻는데, 칠십 다 됐다는 아들은 밭둑에 앉아서 담배만 태웠다.


"오늘 저녁에 비가 온다니 고구마 순이 아주  좋아하겠어요."


할망은 귀가 어두운지 묵묵부답, 그저 하던 일만 성심껏 이어가고 있다.


그러자 아들이, "울 어마이는 고구마 심다가도 물때 되면 물질하러 달려갑서예" 라고 엉뚱스런 답을 한다.


"울 어마이는 하도리 상군 해녀라서 아직도 바다에 들면 최고"라며 엄지척도 해 보인다.


"이 밭은 나라 땅이라 임대받아 어멍이 소일거리로 붙인다 마씀"이라고 묻지도 않은 말까지 했다.


여전히 할망은 쉴새없이 손만 놀렸다.


"지는요, 무릎관절 수술을 받아서 쭈그리고 앉아하는 밭일은 못하고 운전이나 함 쿠다"고도하였다.


왜 일손 거들지 않고 빈둥대냐는 힐난이라도 들은 아이처럼 기어드는 소리로 그렇게 변명인지 설명인지를 덧붙였다.


더운데 물이라도 드시고 가게 마씸, 이라며 내게 삼다수 물병을 들어 올리기에 말씀만도 고맙단 인사 남기고 성곽길 마저 걸었다.


늙수그레한 아들의 무안한 듯한 말투며 표정에서 아직도 순박한 구석이 남아있는 시골 인심의 단면이 느껴져 절로 고개 끄덕여졌다.


아들은 노친네 일손을 거들지 못해 민망스럽고 할망은 다리가 성치 않은 아들이 못내 안쓰러울 따름.


물때 이르기까지 할망은 땅만 쳐다보며 고구마 순 묵묵히 심고 있었으리라.


별방진, 하면 촌노 모자가 빚어내던 풍경 잔상 떠올라 미소 슬몃 어리지 싶다.

별방진을 뒤로하고 찻길에서 바닷가와 이어진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제주에서 해안선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도리.


이곳은 제주의 농업유산인 밭담이 잘 보존돼 있는 지역으로 ‘하도리 밭담길’이란 이름이 붙어있다.


밭담길은 어디서나 참 정겹고도 아릿한 풍경이다.


제주 밭담을 잇대놓으면 그 길이가 지구 반 바퀴를 돌 만큼 길다고 들었다.


그중 하도리 돌담 길이가 제주에서 젤로 긴 코스라는데 유감스럽게도 밭담 축제는 월정리에서 선점하였다.


그렇듯 하도리나 월정리 외에도 곳곳의  밭담에 매료당하기 충분한 제주다.


밭 둘레에 친 밭담 외에도 집으로 통하는 좁은 올레담, 무덤가의 산담, 목장 경계용 잣담등이 돌 많은 제주에는 여기저기 산재돼 있다.


오래전에 상연된 로드 무비 서편제는 잃어버린 우리 것인 판소리와 한의 정서를 잘 버무려낸 영화였다.


거기서 유독 인상에 남겨진 한 신이 밭담길 걷는 내내 뇌리에서 맴돌았다.  


돌담 이어진 남도길 어드메쯤에서다.


소리꾼 가족이 덩실덩실 진도아리랑 부르며 걸판지게 어우러지던 모습 겹쳐진다.



사람이 살면은 몇백 년 사나

소리 따라 흐르는 떠돌이 인생

첩첩이 쌓인 한을 풀어나 보세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또한 이 길은 해녀들이 물질과 밭일을 하기 위해 지나다녔던 길이라 숨비소리길이라고도 부른다.


하도리가 해녀마을인 이유를 알만도 했다.


별방진 성내 마을에서 만났던 여든도 한참 넘으신 할망은 애환 서린 이 길을 매번 종종걸음으로 걸었으리라.


현재 내 걸음새야 한갓지게 꼬닥꼬닥 유유자적 거닐지만 너나없이 일평생 살아온다는 게 어디 그리 녹록하던가.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 이내 가슴속엔 시름도 많다 /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지금 세월엔 별로 그렇지도 않다지만 우리네 정서를 대변하는 감정이 '한'(恨)이라는, 그것도 한 서린 정서라는 걸 진도 아리랑이 대변한다.


들쑥날쑥 꼬불꼬불 울퉁불퉁 끝 모르게 이어진 밭담길 따라 걷노라면 산천 주유하며 풍류 놀음 즐길 기분이 아니 든다.


누구라도 오히려 인생에 대한 숙고 거듭하게 만드는 사색 길이 하도리 밭담길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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