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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18. 2024

고살리, 비릿한 날것의 야성 그대로

쇠소깍은 한라산이 찍어 놓은 푸른 마침표다.

백록담 남벽 아래에서 발원한 효돈천이 바닷물과 섞이기 전, 마무리로 굿판 질펀하게 펼쳤다.

쇠소깍에서 효돈천 계곡을 따라 위쪽으로 올라갔다.


효돈교 다음으로 쇠소깍 다리에 이르면 사방이 트이며 잘 닦인 산책로가 효돈천을 따른다

건천 계속 이어지다가 하효동에 이르면 남내소 시퍼런 못이 섬찟하게 웅크렸다.

남북 길이 70m에 동서 길이 40m에 달하는 효돈천에 있는 가장 깊고 크고 넓은 소(沼)다.


깊이 가늠할 수 없는 암록빛 으스스한 남내소, 자연이 빚어낸 기기묘묘한 조각품 깔려있는 남내소 인근이다.

애틋하고도 슬픈 선남선녀의 사랑 얘기가 전해 내려 오며 기우제를 지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길은 아득해지고 계곡 암반 밟고 넘어가며 암벽 타기 하듯 탐험자처럼 치고 올라가야 한다.

집채만 한 바위 널브러진 예서부터는 무리라 이 코스는 과감히 건너뛰었다.


선덕사로 훌쩍 날아가 고살리 탐방로를 걷기로 했다.

효돈천은 한라산 남사면을 타고 내리는 13킬로에 달하는 기나긴 물줄기다.

용암이 바다로 흐르며 빚어놓은 다이내믹한 계곡으로 신만이 남길 수 있는 걸출한 작품 무수하다.

한라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보호구역이자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구역의 핵심지역을 총망라한다.

거친 곶자왈 숲은 무한 깊고 벼랑 아래 계곡도 깊디깊다.

남원읍 하례 2리 어웍도 인근은 옛적에 사람들이 살던 집터가 여러 군데 남아있다.

집터에는 몇백 년 묵은 산귤나무가 서식하며 깊은 산간이지만 쇠달구지가 다니던 길도 나있다.

그늘 짙어 버섯 무리 지어 피어났고 장엄한 풍광 자아내는 바위 무더기 곳곳에 널렸다.


제주의 속살을 들춰보려면 가보길 권하는 고살리 숲길이다.

가장 제주다운 진면목을 보고자 할 경우 곶자왈을 추천하는데 그중에서도 특이한 생태계를 두루 품은 이곳.

난대림이 넓게 분포돼 있는 데다가 한란과 무엽란, 솔잎란 등 귀한 식물과 계곡의 기암괴석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곳.

아직은 사람 손을 덜 타 원시 숲 밀밀하며 새소리 바람소리 외엔 사위가 너무 적요해 괴괴할 정도다.


상록림 아래라 땅에 깔린 두터운 잎새들 삭지를 않아 낙엽 카펫 밟는 느낌은 그럴싸하다.

청신한 나무향 대신 틉틉한 이 내음은 또 뭐지?

고여있는 물 웅덩이며 두터이 이끼 싸인 바위에서 풍기는 비릿함.

숨골 아니라도 비척지근한 날것의 야성 그대로가 얼크러 설크러 진 채 숨 거칠게 내쉬는 오지답다.

고살리 탐방로의 명소인 속괴는 사시사철 물이 고여있는 작은 소로 우천 시에는 폭포가 볼만하단다.

커다란 바위에 적송 한 그루가 주사위같이 생긴 네모난 바위 옆에 우뚝 서 있으나 활엽수에 가려 몸체만 붉다.

예전부터 영험한 장소로 알려져 비손 하는 이들이 많이 찾았을 정도로 신비로운 속괴다.  

그러나 고살리 숲길은 흐르는 물길보다 웅덩이가 흔해서인지 모기가 엄청나게 많았다.


계속 움직이며 걸어도 어느새 흡혈귀처럼 착 달라붙어 배를 불리는 모기 등쌀에 그만 고개 절레절레.


시커먼 산모기는 얼마나 지독한지 헌혈 넉넉히 나눠주고도 열흘 정도 가려움증에 시달려야 했다.


여름철 지나야 놈들이 남긴 팔뚝과 다리에 난 상흔 사라지지 싶다.


따라서 모기퇴치제는 필수, 반드시 긴팔 윗옷에 긴바지 착용할 것!


숲 깊어 햇빛 비치지 않는 그늘길이므로 그래도 시원해 걸을 만은 했다.


고살리 탐방로는 전체 구간 길이가 2.1km밖에 안 되나 자연환경과 생태가 잘 보전된 곳이라 원시림과 계곡이 발달돼 있었다.


그러나 오가는 이 거의 없는 숲길 휘휘하고 으슥해 혼자라면 엄두도 낼 수 없을 터.


겨우겨우 고살리 마을 표식을 만나 냉큼 시멘트 포장도로로 올랐다.


얼마쯤 큰길 따라 걸어가니 남원읍 하례 2리에 이르렀다.


이제 서귀포 시내로 가는 차만 기다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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