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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l 22. 2024

웅장한 엉또폭포 대장관 앞에서

1.  폭포소리 대신 새소리 여울지는 엉또폭포

한 달 사이에 엉또폭포를 세 차례 방문했답니다.

첫 번째로 찾은 날은 내리 이틀간 우중충한 날씨였는데요.

밤에는 제법 세찬 비가 내렸더랍니다.

새벽같이 눈이 떠졌습니다.

동터오는 하늘엔 구름층도 별로 없었어요.

폭우 왕창 내린 뒤라야 폭포가 쏟아진다는 엉또폭포가 궁금해졌지요.

진작에 깨어난 한라산은 목욕재계한 정갈스러운 자태였고요.

서둘러 첫차를 탔네.

신시가지에서 내려 완만한 언덕길을 올라갔지요.

형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깔끔하게 정비된 주택가를 한참도록 걸었습니다.

산기슭 제법 올라온 듯 돌아서보니 저 아래 월드컵 경기장 지붕이 보였고 얼마 후엔 강정바다가 또렷이 드러났어요.

걷다가 숨차면 자주 뒤돌아 바다를 잠깐씩 지켜봤습니다.


근처 4백 미터 급 고군산오름은 보통 산책 삼아 동네 뒷산처럼 오르는 산인데 그 서쪽에서 떨어진다는 폭포는 종무소식이더군요.

강창학종합경기장도 지났건만 어디가 어딘지 오리무중, 내처 안갯속을 부유하는 듯.

이른 아침부터 술래잡기할 기분은 아닌데 폭포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놀이를 하는 중이네요.  

앞마당 빗질하는 식당 주인에게 엉또폭포 가는 길을 묻자  "에이~이 정도 비 가지고는 폭포물 안 내려와요." 한다.

이왕 나선 걸음이니 그렇다고 중도 작폐할 수야 없는 노릇이지요.

새로 들어선 주택가가 끝나자 농장지대가 나오며 조붓한 산촌 길이 이어졌어요.

근처 도로마다 물이 흥건히 고여있었습니다.

조심조심 물길 건너뛰며 옳거니! 쾌재를 불렀답니다.

길섶에 달팽이가 유독 자주 눈에 띄었거든요.

폭포 쪽으로 바삐 내닫는 사람들도 보였고요.

우렁찬 폭포 아니라도 실줄기같이 내리는 폭포 기다릴지 몰라서인지 다들 잰 걸음새였지요.

엉또폭포 이정표가 나타나기 시작한 건 그때쯤이었어요.

이어지는 농장 뒤편으로 범상치 않은 웅자 드러내며 깊은 숲이 펼쳐진 것도 그때부터였습니다.

십여 분 더 걸어가자 비로소 엉또폭포라는 큼직한 팻말이 보였지요.

제주말은 같은 한국어라도 번역이 필요할 정도라는 건 잘 아실 겁니다.

엉또의 '엉'은 암벽 아래 움푹 들어간 바위그늘집보다 작은 굴을 말하고 '또'는 어떤 장소의 입구를 뜻하는 것이라네요.

폭포가 있으면 응당 물줄기 흘러내려갈 계곡이 따를 터.

과연 계류 힘찬 물소리가 들렸는데요.

마구 뒤엉킨 바윗돌 사이로 물이 흐르는 내는 악근천이라고 했습니다.


갈수록 점점 더 숲은 울울창창 깊고 짙푸르러 졌지요.

빨려 들어가는 듯한 숲 속 데크길을 걷는데 아득한 벼랑에 난 잔도라도 걷는 느낌이었답니다.

수풀이 하도 무성해 이끼 잔뜩 낀 데크 아래로는 낭떠러지일 것 같아 어서 벗어나고자 종종걸음 쳤을 정도였는데요.

도미노 현상처럼 다다다닥 데크가 무너지기라도 하면 끝 모를 허당인 흑암 속으로 곤두박질쳐질 듯한 두려움 엄습했어요.

드문드문이나마 산책객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 데다 햇살 퍼지며 자연은 기운찬 정기를 사방에 뿜어대는데도 불구하고요.

이는 필시 공포영화를 너무 많이 본 후유증 아니겠어요.

어둑신한 데크길이 끝나자 경사 가파른 층계가 기다렸습니다.

잠시 호흡 고르며 사방을 둘러보았지요.

아직 가본 적 없는 아마존 밀림지대가 이러할까요.

몇 백 년 잊힌 계곡이었던 마추픽추 원시림도 이만큼 숲 밀밀하지는 않았거든요.

난대림 무성한 나무들이 이처럼 너무 조밀하게 들이차서 숨 가쁘게 압도해 오는 울울한 숲은 처음 봤어요.

간밤의 비로 눅눅히 젖은 계단이라 난간을 붙잡고 조심스레 한 층씩 밟아 올라갔지요.

저 아래를 내려다보면 떨리지 싶어 바로 앞 발치만 보면서 오르다 보니 제일 높은 전망대에 이르렀더랍니다.

그제야 마주한 엉또폭포 절벽의 위용이라니.

화산섬인 제주도이긴 하나 이처럼 웅장한 암벽이라니! 과연 장관이었습니다.

경이롭도록 위엄찬 절벽의 기개와 둘레를 감싼 숲이 어우러져 빚어낸 대단한 경관에 입이 벌어지고 말았네요.

너무 놀라 어이가 없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거나 혀를 내두른다는 표현을 쓰는데 딱 그 시추에이션!

물줄기 흔적은커녕 젖은 티조차 없는 암벽이지만 외연스런 기세에 눌려 저절로 합장 자세가 되더군요.

여기다 우렁차게 내리꽂는 폭포수까지 마주한다면 스르륵 기절해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그래도 여름 장마철에 한 번은 꼭 와보고 싶단 욕심은 생겼답니다.

적막이 깊어서인지 바람도 없는데 나뭇잎 사근대는 소리가 들렸지요.

잠에서 깨어난 뭇 새들 지절대는 소리 가득한 숲.

삐뾰르릉~ 찌르르~ 호호이~ 짹짹~ 꾹꾸르~ 호르르~휘파람 같은 소리도 섞여있었어요.

묘하게 기익긱거리는 새소리의 정체는 폭포 절벽에 깃든 천연기념물 323호인 황조롱이(매) 가족들이라고.  

새들 노랫소리를 녹음하고 싶은 생각 간절했으나 참아야 했던 이유는 전체 분위기가 몹시 휘휘해 무서워서였네요.

연달아 뻐꾹~뻐꾹~먼 데서 아득히 뻐꾸기 소리 들렸지요.

어디선가 새벽닭 꼬끼요오~ 길게 뽑아 제치는 바람에 정신 수습해 마을로 발길 돌렸습니다.

나가는 길 표식 따라 숲길 돌아서자 엉또산장 무인카페, 그 옥상에서는 가물가물 마라도가 보였어요.

올 때와 반대로 귀갓길을 잡아 설렁설렁 걷다 보니 월산동 버스정거장이 있었으나 내처 걸어 염돈로에 이르렀지요.

여기부터는 대로라 아주 낯익은 길이지요.

2.  화창한 날, 엉또폭포 찾은 이유


날씨 아주 화창한 날, 다시 엉또폭포를 찾았답니다.

다들 알다시피 억수장마 지거나 한바탕 폭우 쏟아진 다음에야 위용 드러낸다는 엉또폭포.

당연히, 흘러내리는 폭포수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지요.

비 제법 온 뒷날이라 은근 기대 걸고 갔어도 가느다란 실줄기 같은 물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더랬거든요.

그렇거늘 청명한 날씨가 계속됐는데 무슨  폭포가 있으리란 생각 같은 걸 하겠어요.

단지 폭포 위 지형이 궁금해서 갔던 거였네요.

물길이 어찌 났는지, 건천이 있다면 얼마나 너른지, 혹시 다리가 걸렸다면 어떻게 생겼는지....

원시림같이 울창한 숲 속 깊숙이 자태 비밀스레 숨기고 있는 엉또폭포.

일부러 신비 컨셉을 빌린 건 아니겠지만, 천연 난대림이 넓은 지역에 걸쳐 울울창창하게 펼쳐져 있지요.

장대하고도 거친 기암절벽을 타고 쏟아지는 엉또폭포의 규모는 50m나 된다고 합니다.

분위기 공포스럽기조차 하던 새벽 시간대와는 달리 대낮이라서인지 압도해 오는 전경 그저 경이로울 뿐이었네요.

두 번째 방문이라도 기가 질려 묵연히 바라만 보다 돌아섰습니다.

엉또산장 휴게실에 들렀더니 마침 폭포 영상을 돌려주고 있었는데요.

양동이나 드럼통으로 쏟아붓는 정도가 아니라 대홍수 때 댐 수문 열어 수천 톤 물을 방류하듯 굉음 울리며 치달리는 폭포.

빗발 성성한 날 무서운 기세로 쏟아져 내리는 엄청스런 폭포, 비바람 거센 날 미친 듯 폭포 지며 사방으로 튀는 보얀 물보라.

신사처럼 점잖게 내리는 장신의 늘씬한 폭포, 세 줄로 얌전히 흐르는 폭포와 그 아래 소((沼)도 영상 고스란히 보여줬지요.

전망 좋은 휴게실 창가에서 시원한 바람맞으며 음료를 마시고 내려오니 산장 안주인이 있었어요.

나무 평상에 올려놓고 판매하는 하귤을 하나 샀지요.

인심 넉넉한 안주인은 방금 딴 비파를 접시에 담아 맛 보라며 우리에게 내밀었어요.

산장 정원엔 하귤나무에 귤이 주렁주렁, 비파나무에도 가지 휘도록 누런 열매 총총 달려있었지요.

살구며 복숭아 풋열매도 낯빛 때롱 때롱했답니다.

내려오는 길, 가든 카페 마노르블랑은 외진 곳임에도 입소문이 났는지 이 카페 앞에도 차들이 줄지어 서있더군요.  

새하얀 집 이쁘고 잘 가꾼 정원 볼만했으며 이곳 역시 소담스러운 수국꽃 한창이었고 코스모스꽃 한들거렸지요.

하긴 제주는 어디나 수국 천지, 굳이 별도의 입장료 받는 수목원이나 카페 아니라도 도로변이고 골목길 처처 수국 포토존.  

끝으로, 목적했던 바 엉또폭포 위쪽 지세를 살펴본다고 꾸역꾸역 산길 올라갔으나 허사였습니다.

지도만 보며 조붓한 차도 따라서 한참 외길을 걸어갔지만 점점 산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 이건 아니다, 란 감이 순간 오더라고요.

막다른 외딴집에서 아낙이 나오기에 엉또폭포 위로 난 길은 없는지 물었지요.

그녀는 단호히 옆으로 난 길은 없으며 계속 이 길로 가봐야 결국은 길이 끊긴다고 했어요.

우리는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는 그쯤에서 주저 없이 뒤돌아섰습니다.

3.  대장관! 웅장한  엉또폭포
 

장마전선이 한반도로 북상한다는 뉴스가 들렸습니다.

일기예보와 달리 비는 감질나게 슬쩍 흙을 적시다 말곤 했지요.

하늘은 줄창 찌뿌둥했으나 습도만 올라가 후덥지근한 날씨였어요.

어제는 어쩐 일로 말갛게 갠 하늘이었는데 오후부터 비구름이 빠르게 몰려들었답니다.

여세를 몰아 밤새 장맛비 거칠게 흩뿌리더군요.

오전 내내 빗발 위세는 더 호기로워졌어요.

천둥번개까지 간간 으름장을 놓았고요.

오늘이야말로 기다리고 또 기다린 엉또폭포와의 첫 상봉이 이루어지겠군, 흐흠.

비로소 우리의 만남이 성사되는 날, 설렘 속에 빵빵한 기대감을 갖고 엉또폭포로 향했습니다.

평소엔 장대한 암벽만 보이며 서있다가 한라산에 많은 비가 오면 폭포 물이 엄청나게 쏟아져 내린다는 엉또폭포.

실제, 서귀포 시내에 폭우 제법 내린 다음이라 실낱같은 물줄기라도 기대하고 가봤으나 절벽엔 물기 흔적조차 없었는데요.

복불복이 아니라 산간에 70mm 이상의 강수량이 있을 때나 폭포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는 말대로였지요.

허탕치고 돌아오며 아쉬운 심사 달래려고 엉또산장에 들렀더랍니다.

산장 휴게실에서 서비스하는 폭포 영상을 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동영상을 되풀이 감상하며 이번 장마철엔 꼭 그 웅장한 위세 접해보리라 작정했더랬네요.

기상 장대한 기암절벽에 푸르른 상록 원시림만으로도 절경 이룬 이곳.

여기다 50m 높이의 폭포수까지 힘차게 쏟아진다면 대단한 장관일 터.

중산간도로 1136번을 타고 달리다가 강창학경기장을 지나자마자 오른쪽 중식당 앞으로 난 도로로 꺾어 들었습니다.

엉또폭포 들어가는 길 초입부터 이미 차들이 길게 진을 치고 있었는데요.

교통경찰이 배치돼 있었고 KBS 중계차량도 자동차 기나긴 줄에 끼어 있기에 차를 내려 걷기 시작했지요.

흥분감 지그시 눌렀으나 저만치 폭포의 풍만한 나신이 건너다 보이자 발걸음 나는 듯 빨라졌어요.

축복이듯 하늘 푸르게 개였고 악근천을 내닫는 물소리는 록 음악처럼 요란스러웠고요.

처음 엉또폭포를 찾았던 아침, 인적 거의 없어 적막하다 못해 휘휘했는데 지금은 길 비좁게 인파 몰렸더군요.

폭포의 위용이 눈앞에 펼쳐지자 거의 강력한 자력에 빨려 들듯 데크길 스윽 지나 날다람쥐처럼 주르륵 계단 올랐지요.

수직으로 낙하하는 거대한 폭포 앞에 섰습니다.

과연 대단하더군요.

말을 잊고 그냥 입 벌린 채 멍하니 바라면 봤답니다.

폭포수 굉음 우렁찼으며 물안개 비말되어 사방천지에서 몰려와 피부가 찹찹해졌지요.

이과수 보고 나서 나이아가라를 보면 초라하게 느껴진다고 하나 저마다 지닌 특색 있어 섣불리 우열 가릴 일은 아니네요.

평상시엔 전혀 모습 드러내지 않다가 폭우 내린 이튿날 잠시 신기루처럼 나타나는 폭포라니 놀랍지 않은가요.

파도 밀려오듯 계속 밀려드는 인파, 그쯤에서 전망대 자리를 내주고 엉또산장으로 넘어왔어요.

도로에는 들어오는 차와 나가는 차가 얽혀 북새통을 이뤘더군요.

돌아오면서 보니 중산간 대로변까지 차들이 주차돼 있었지요.

교통경찰은 두 팔 높이 들고 경찰봉으로 가위표(X) 만들어 모든 차량의 '엉또로' 진입금지를 알리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양의 폭포수 쏟아내는 엉또폭포, 새벽부터 방문객 몰려 진종일 만원사례 외치며 모처럼 행복한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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