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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18. 2024

무지개와 함께 간 마라도


수차례 무지개와 만났다.

마라도행 뱃전 고물에서다.

파도 하얗게 부서지며 물이랑 일으켜 비말 튈 적마다 무지개가 떴다.

흩어지는 물보라에 무지개 홀연 피어났다가 스러지곤 했다.

갑판 난간 꽉 잡고서도 흔들흔들 뒤뚱대면서 아이들은 신이 나 환호 보내고 젊은이들은 사진 찍기 바빴다.

순간 확 튀어 오르는 바닷물 갑작스레 뒤집어쓰자 까악~비명 지르지만 갑판 쉽사리 떠나진 않았다.

멀어지는 제주 섬 저만치 한라산 우뚝 중심을 잡고 낯익은 방산 자태 저리 선연하게 보일 줄이야.

출발지인 운진항 인근 자세히 살펴보면 동쪽에 파노라마로 뜬 범섬 문섬 섶섬도 제각각 가늠이 됐다.

나지막한 가파도를 지날 즈음 바다색 유독 검푸러져, 주황색 구명조끼 숫자 헤아려지며 심청이 제물로 몸 던진 인당수가 문득 떠올랐다.

그럼에도 청남빛 굼실거리는 물결 바라만 봐도 눈길 시원해지고 멀리 수평선에 시선 던지노라면 폐부 후련히 트여왔다.

어느새 운항시간 25분이 지나 무척이나 멀게만 여겼던 마라도, 가파른 해안 절벽에 이어진 살레덕 선착장에 닿았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작은 섬.


요새처럼 벼랑 빙 둘러 선 마라도에는 눗누런 억새가 해풍에 후드껴 거칠게 휘날리고 있었다.

망망대해에 외따로 뜬 섬이라 그런지, 서귀포 날씨는 봄처럼 온화하고 나뭇잎조차 미동치 않았는데 마라도 바람은 몹시도 차가웠다.


살짝 둘렀던 스카프를 벗어 모자 위까지 둘러맨 뒤 둥둥 감싸줬다.


절해고도로 오뚝 선 마라도라 사방 거칠 것 없이 마구 불어 제키는 해풍 기세는 위풍당당 그 자체였다.


대한민국 영토의 끝이면서 시작인 국토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마라도.

국가 천연기념물인 마라도는 말 그대로 망망대해에 뜬 일엽편주다. 


조선시대 중죄인 유배지였던 제주섬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약 12m 떨어져 자리했다.

방어축제가 한창인 모슬포 남항 운진항에서 승선 신고서를 쓰고 신분증을 지참해야 탈 수 있는 마라도행 여객선이다.

선실은 1,2층에 각각 배치돼 있었으며 갑판에도 긴 의자가 놓여있어서 바닷바람 쐬며 뱃전에 서서 왔다.

물때가 조금때라 파도 잔잔했고 날씨는 청명했으며 하늘빛 기막히게 푸르렀다.

영화 빠삐용에서 본 수직 절벽 아찔하게 깎아지른 낭떠러지로 둘러싸인 해안선 실루엣은 장쾌했다.

해식동굴이 입 크게 벌린 기암절벽에 이어진 살레덕 선착장에서 언덕길 올라 등대 있는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대부분 오른쪽 길로 섬을 도는데 절벽이 있는 동쪽이 전망과 풍치 뛰어나 포토 스폿도 많다는 점, 팁으로 적어둔다.

해안가에 식당이 줄지어 자리 잡은 그쪽보다는 등대와 최남단 기념비가 있는 데로 길을 잡으면 좋은 게 또 있다.

충분히 눈 호강 시켜가며 정경 멋진 데서 사진 찍은 다음 느긋하게 끝 식당인 자장면 집에 들면 자리가 넉넉하다.

서쪽으로 걷던 관광객들은 대부분 줄나래비 선 식당 중, 앞머리에 있는 집을 택하므로 끝에 집은 손님이 적게 마련이다.  

해서 다수와 반대로 돌아보는 것이 유리한 데다 마지막 집 해물 짜장은 면을 별로  즐기지 않는데도 맛 각별했다.

이름은 유념해두지 않았지만 맨 마지막 그 식당 문간에서 고양이가 놀고 잘 생긴 개가 보초를 서는 민박 겸한 집이었다.


한때 마라도에 서식하는 길냥이들이 이슈화된 적이 있었다.


고양이 삼신이란 말이 있다시피 워낙 번식률이 높아 섬 내 생태계를 교란하는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중성화 수술을 시키기도 했다.


특히 천연기념물 뿔쇠오리를 해치는 바람에 그들 보호를 위해 일부 고양이는 마라도에서 제주도로 퇴출되기도 했는데.


글쎄? 귀여운 상위포식자가 사라지면 새는 안전할지 모르나 동시에 쥐가 들끓지는 않을지.

 

'열네 마리 늑대' 실화가 보여주듯 인위적인 개입이 없어도 능히 자연생태계는 스스로 알아서 개체수를 조절해 나가며 균형을 이룬다 하였다.




한두 시간이면 넉넉히 돌아볼 수 있는 작은 섬이지만 있을 건 골고루 다 있었다.


서귀포 남단의 여러 해안에서 육안으로도 보이던 우뚝 선 흰 등대 만인가.


연중 당제를 지내는 돌로 쌓아 올린 신당에는 촛농 흔적 뚜렷했다.


천천히 걸어 다니며 예쁜 성당과 소박한 교회, 해수관음이 선 절도 둘러보았다.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차면 바다로 빠질듯한, 그러나 휴교로 문 닫힌 초등학교에서는 교문 밖 해시계를 한참 바라봤다.

누렇게 마른 잔디와 시꺼먼 현무암 바위 사이에 유독 싱싱하게 뿌리내린 방풍나물과 번행초라는 바닷가 식물도 여기서 첨 만났다.


해풍 맞으며 자란 쑥이 약쑥이듯, 바닷가 바윗전에 용케도 뿌리내린 방풍나물은 이름대로 중풍을 막아준다는 약초.


제주 사람들은 상추 대신 번행초 잎에다 회를 얹어 먹는다는데 보얀 이파리가 도톰한 이 식물은 위장에도 특히 좋다고 한다.


데쳐서 시금치처럼 나물로 무치거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맛깔스럽고도 담박한 번행초는 이후 식탁에 자주 오르게 됐다.


먼 옛날, 마라도는 한때 숲이 울창했다고 한다.


농사처로 개간하며 불을 질러 나무란 나무는 모조리 태워버려서 지금의 탁 트인 민둥섬이 돼버렸다는데.


숲이 얼마나 울창했으면 모두 타는 데 사흘, 더러는 석 달이 걸렸다는 과장법도 차용되나 밋밋한 허허벌판에서 예전 풍경 연상하기는 당최 어렵더라는.


날씨가 쾌청해 한나절 발길 닿는 대로 이리저리 소요하기 더없이 좋았던 마라도.

 
돌아오는 뱃길은 오후라 파도 일어 롤링 좀 심했으나 그마저 호숩고 신바람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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