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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ug 03. 2024

천백고지 습지에서 피서하기

지난겨울, 눈 소식이 들리면 설화 구경하러 여러 번 찾았던 천백 고지다.

여름엔 푸른 바다로 시선이 쏠리게 마련이지만 작열하는 태양 자못 기세등등한 해변이다.

비치파라솔이나 나무 그늘로 해를 피해봤자 사방에서 몰아치는 열기로 훅훅 찌는 해변.

풍덩 바닷물로 뛰어들어가 서핑 또는 스노클링을 한다거나 수영이라도 즐긴다면 모를까 더위를 피할 재간이 없다.

청바지 착용까지야 서슴지 않지만 그러나 수영복 차림은 이 나이엔 아무래도 민폐가 될 터.

물가에서 발이나 적실 바엔 차라리 숲으로 가서 걷거나 숲바람 쐬는 편이 훨 낫다.


사려니숲, 자연휴양림, 치유의 숲, 한라생태숲, 수목원. 비자림 등은 숲 그늘 짙어 한 여름철 번갈아 간다.


맹위를 떨치는 혹서가 계속되는 요즘.


그러나 생짜배기로 땀 빼지 않으려면 되도록  차에서 내려 맞바로 이어지는 숲이나 바다를 찾게 된다.


차도만 건너면 닿게 되는 판포리나 금능 협재해변이며 천백고지습지가 바로 그런 곳이다.

한여름 피서지로 최적인 천백 고지 습지야말로 코앞까지 곧장 차로 이동한다는 장점이 있다.


에어컨 가동 중인 차였음에도 내리자마자 피부에 와닿는 공기가 서늘하다 못해 다소  선득하게 느껴진다.


무더운 날 천백 고지에 온 것이 자못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재확인.


폭염에 쫓기며 그늘 찾느라 급급하지 않아도 되어서일까, 사람들 표정이 느긋하니 여유로워진다.


와아~ 사방천지가 시원타!


혹서에 시달리다가 별유천지에라도 초대받은 듯 저마다 감탄사 연발이다.


여러모로 한증막 더위 잊게 하는 피서지로는 그저 그만인 천백고지다.


실제로 천백고지 휴게실 옆에 조성된 고상돈 공원 숲에다 돗자리 펴고 누워 나뭇잎 살랑 흔들며 지나는 바람결 음미해도 좋겠고.


휴게소 난간에 앉아 한라산 자락에 피어나는 뭉게구름만 넋 놓고 바라봐도 좋으리라.


습지 인근이라서인지 긴소매 겉옷이 아쉬워진다.


안내센터 해설사에게 천백고지 기온이 어느 정도냐고 물어봤다.


아랫동네에 비해 약 8~9도는 낮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면서 가장 쾌적하게 지내기 좋은 기후대에 가깝겠구나.


체감온도가 보통 35도, 실제 33도를 찍고 있는 수은주를 감안하면 아마도 23~4도 남짓.


내 방 에어컨 온도보다도 낮다.


서귀포 시내에선 며칠째 중산간 지역까지 폭염주의보가 발효 중이다.


행안부에서는 온열질환 사망자가 발생했다며 야외 활동을 자제하고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라고 누누이 당부했다.


모자나 양산을 필히 착용하라는 권고도 줄곧 따라붙었다.

백록이 서있는 고상돈 공원에 들렀다가 숲그늘 이어지는 건너편 습지로 향했다.


목재 데크로 만들어진 생태탐방로 따라 습지를 한바퀴 도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20여 분 남짓.


그늘 계속되는 길이라 시원한 데다 급할 거 없으니 느릿느릿 걸으며 물 벙벙하게 고인 습지구름 사진을 담았다.


천백고지 습지가 건강한 자연환경임을 나타내는 주요 대기요염지표인 지의류들도 눈여겨봤다.


아주 깨끗한 자연환경에서 자라는 생명체로 알려진 지의류는 이끼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흙 위나 바위  노거수 표면에서 무늬처럼 번지며 자라는 균류로, 얼핏 이끼와 혼동하기 쉽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생명체 중 하나다.


균류와 조류가 공생하여야만 형성되는 독특한 생명체인 회녹색 주황색 지의류가 널브러진 바위마다 다수 분포된 천백고지 습지.


고산 지형에 발달한 습지로 2009년 람사르 습지에 등록된 제주도 내 습지보호지역의 하나이다.


람사르 습지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습지로서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람사르협회가 지정하고 등록하여 보호하는 습지를 말한다.


현재 대한민국 람사르 습지 등록지는 총 24개.


그중 제주에는 천백고지 습지를 비롯 물영아리오름 습지, 동백동산 습지, 숨은물뱅듸 습지, 물장오리오름 습지 등이 있다.


천백고지 습지에 사는 식물은, 팥배나무 산딸나무 솔비나무 정금나무 외에 희귀종인 자주땅귀개 한라물부추 바위미나리아재비 등등.


물론 데크에서 관찰해야 하므로 일일이  찾아보기 어렵다.


습지답게 파충류도 골고루, 제주도롱뇽 북방산개구리 무당개구리 유혈목이며 쇠살모사도 있다니 갑작스레 발치가 움찔거린.


동물은 상상만으로도 어여쁜 노랑턱멧새, 흰눈썹황금새, 곤줄박이며 노루, 고라니도 산다고 쓰여있다.


습지 낮은 곳에 고여있는 물은 야생동물들의 식수원, 그래서 자주 노루를 만나기도 하는데 뜨거워서인지 그 흔한 까마귀조차 안 보인다.


매미소리만 쨍~하다가 인기척이 가까워지면 뚝! 그쳐버린다.


긴소매 여벌 옷을 준비하지 않아 어깨 움츠러 들면서 자못 으슬거리기까지 하는 기온이라 두어 시간 만에 하산을 서두르게 되더라는.....


 한라산 골짜기 숨골 바람이 모인 듯 냉장고 속 시린 냉기라 그쯤에서 퇴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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