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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ug 21. 2024

걸세오름은 조망권과 청량감 최고

오름이 360여 개를 넘는다는 제주다.

그중 십 분의 일도 못 오른 입장이니 주제넘긴 하다만.

지금까지 다녀본 오름 중 널리 추천할 만한 오름은?

걸세악이야말로 강추다.

1:  접근 용이하고 오르기도 쉽다.

2:  전망 최고다.

3: 그윽한 숲과 깊은 계곡까지 아우른다.

올 첫 번째 태풍이던 종다리가 천만다행 조용히 물러난 다음날이다.

새파란 하늘이 열린 눈부신 아침.

태양 찬란하고 바람 고요했다.

날씨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쾌청, 가만히 실내에 머물기 아까웠다.

태풍이 올라온다는 바람에 노심초사했던 기분도 환기시킬 겸 집에서 멀지 않은 오름으로 향했다.

걸세악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르고 보니 단연 최고의 풍광 간직한  fantastic 그 자체다.

서귀포 푸른 바다와 한라산 웅자 마주하노라면 절로 터지는 탄성.



 



서귀포 시내에서 멀지 않은 남원읍 관내에는 스물아홉 개나 되는 오름이 있다고 한다.

그중 걸세악은 표고 : 158m, 비고:48m, 둘레:970m, 면적:58,199㎥, 저 경:382m인 아름찬 오름인데 평야 가운데 솟아 우뚝해 보인다.

오름이 높지 않아 왕복 20분 정도 소요되는데, 오르는 내내 전망이 트여 분위기 쾌적하며 해 바라서 무엇보다 좋다.

걸세오름은 두 개의 원추형 화산체로 구성되어 있다.

남서쪽 봉우리인 서걸세(족은 걸세) 북동쪽 봉우리인 동걸세(큰 걸세)가 한줄기로 이어졌다.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산 124번지 일대로, 남원읍 하례로 393에 위치한 걸세악.

일주도로 효례교 옆 하례리 입구에서 효돈천을 따라 올라가면 동걸세 기슭까지 갈 수 있다.

산 모양이 마치 문을 걸어 잠그는 걸세(걸쇠)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걸세오름이라 칭한다는 일설.

다른 하나는 두 계곡 사이에 있는 오름이란 뜻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걸'은 개울 또는 도랑의 옛말이며 '세'는 새(사이)를 뜻하는 제주말이니 그럴 법하다.

오름 일대가 살쾡이와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는데, 예전 이곳에 살쾡이들도 많이 살았다나.

해서 어느 걸세건 셋 다 그럴싸하게 들린다.

서걸세 남서쪽 기슭은 급경사를 이루면서 효돈천 깊은 계곡으로 흘러내려 특히 장관인 계류를 선보인다.

동걸세로 향하다 보면 한라산 웅자와 마주하게 된다.

이때 두 손 합장은 물론 감탄사는 자동 발사되기 마련이다.

걸세악의 압권은 또 있다.

효돈천 깊은 계곡이다.

바위 웅려하고 물소리 힘찬 이 계곡이야말로 걸세악의 백미다.

 

태풍 살짝 지나간 덕에 투명할 정도로 맑게 트인 시야.

게다가 걸쇠악처럼 이리 조망권 훌륭하게 확보된 오름도 흔치 않을 거 같다.

계단 오르면서 수시로 돌아서게 만들던 탁 트인 전망, 눈앞에 질펀히 깔려있는 하례 마을 전경뿐인가.

태평양 멀리 펼쳐진 서귀포 바다엔 지귀도 선연하게 떠있고 섶섬도 아주 뚜렷하다.

지귀도, 쇠소깍에서 봐도 판자 쪽이 떠있는 듯 보이며 우리 집 창가에서도 조그만 판자 쪽처럼 보이는 섬이다.

아삼삼하게 아른아른 바다 멀리 떠있어서일까.

어쩐지 아련한 그리움 같기도 하고 비릿한 설움 같기도 한 기분이 드는 지귀도.

처음엔, 언감생심 선덕여왕 사모하다 불길에 타버린 사내 이름이라 흠-하고 웃었다.

자꾸 볼수록 제주 전설 속 이어도가 겹쳐지기도 했다.

거센 풍랑 하얗게 이는 날이면 가뭇없이 자취 사라지곤 했으니까.

무인도라서 가볼 수 없는 섬인 까닭에 아쉬움으로 더 애틋했던 지도...

망원경을 통해 자세히 보니 섬 왼쪽에 하얀 등대도 서있고 숲 제법 우거진 섬이라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지귀도 앞에 오롯하게 서있어 어찌 보면 마치 섬처럼 보이는 제지기오름 역시 어서 올라와 보라고 손짓한다.

아암, 올 구월엔 이래저래 자주 오름을 찾게 되지 싶거든.

 

전망대에서 우측 계곡 산책로로 접어들면 숲길 어둑신하다.

크든 작든 태풍은 태풍이다

전망대에서 우측 계곡 산책로로 접어들면 숲길 어둑신하다.

크든 작든 태풍은 태풍이다


여파로 떨군 나뭇잎들 그리고 부러진 가지 널브러져 숲은 어수선하지만, 그 덕에 묵은 삭정이들 정리는 확실히 됐겠다.

삶도 이와 마찬가지 아닐지.

고난이나 역경, 닥쳤을 당시야 괴롭고 힘들다.

극복하기까지의 과정은 누구를 막론하고 지극히 어려워 매우 버거울뿐더러 고통스럽기 마련.

반면, 그 통에 웃자란 욕망 전지되고 나약한 생각 솎아내게 되며 곁길로 샌 목표도 재정비하게 된다.

좌절 혹은 실패의 경험 통해 삶의 자세를 새로이 점검해 보게 될뿐더러 욕심껏 짊어졌던 등짐 적당히 덜어낼 줄 아는 지혜도 터득한다.

매사 자신만만 넘치던 패기도, 나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오만함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숲 속 나무들 언젠가는 버려야 할 쓸데없는 삭정이나 지나치게 무성하던 이파리 태풍으로 홀가분하게 떨구어 내듯이.

이렇듯 자연은 말없이 수많은 지혜를 깨우쳐 주는 삶의 지침서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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