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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ug 22. 2024

창고천 따라 안덕계곡을 가다

애초 목적지는 군산이었다.

태풍이 북상한다지만 맑은 날씨라 군산에 올라 대평 바다를 보려고 감산리에서 차를 내렸다.

귤밭 이어진 언덕을 내려서자 대뜸 창고천이 팔 벌리고 길을 가로막았다.

군산오름 길머리 찾기도 어려운 데다 땡볕은 사정없이 정수리를 찔러댔다.

감천로 시멘트 포장도로의 복사열도 만만찮았다.

다리를 건너도 귤 농장 비닐하우스만 엎드렸을 뿐, 숲으로 난 사잇길은 보이지 않았다.

잔등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우물쭈물 망설일 계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꿩 대신 닭이다.

햇살도 강렬하니 울창한 수목 속에 자태 숨긴 창고천 생태공원 비경을 찾기로 즉각 행선지를 바꿨다.

오곡 영글게 하는 고마운 태양은 과수와 곡식들 흠뻑 쬐게 돌리고, 폭염 비껴 선선한 그늘로 들었다.

창고천 맑은 물줄기가 깊은 계곡 이뤄 처처에 소를 이룬 채 신비로이 흐르고 있었다.

올레길 리본은 나풀거렸지만 일요일이라도 인적 뜸해 대낮인데도 좀 휘휘했다.

상록수 울창한 숲은 어둑신한 데다 낭떠러지 저 아래 계곡은 한참 깊어 물소리조차 바람소리에 파묻혔다.

창고천은 한라산 남서쪽 1100 고지 습지에서 발원해 안덕면 지역을 통과하여 감산리 해안으로 흘러든다.

계곡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창고천 생태공원은 천연기념물 제377호로 지정된 안덕계곡을 포함해 공원으로 조성한 곳이다.

오호! 이 또한 아주 안성맞춤, 아주 특별한 선물이 되겠네.

안 그래도 폭우 한바탕 휩쓸고 지났으니, 깨끗하게 청소된 안덕계곡을 가보리라 별렀던 참이므로 쾌재가 절로 터졌다.

다양한 식생이 분포된 이곳.


생태공원에선 수직절리와 수중에서 발생한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수성 퇴적층을 볼 수 있다는 안내문이 보였다.

설명대로 길쭉하게 뻗은 하천 양편으로는 기암절벽과 짙푸른 상록수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주변 경관이 빼어났다지만?

계곡길 따라 가벼운 트레킹을 즐길 수 있었는데 울창한 숲이 만들어주는 그늘 아래는 시원함을 넘어 서늘했다.

곳곳 웅덩이에 물 깊게 고인 소도 여러 군데.


도고샘 입구 데크길에 들어서자 벼랑 중턱쯤 창고천에 물줄기를 보태는 맑고 깨끗한 도고샘이 숨겨져 있었다.


그러나 햇살 닿지 않아 사철 어두울 거 같이 음습한 데크는 이끼 낀 채라, 내 하중 하나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듯 위험해 보였다.


이는 관리 소홀을 넘어 관리 태만에 가까운 현장이 아닐 수 없었다.


도고샘 터에서 놀랬으면서 다시 용천수 샘솟는다는 양재소 물길 내려가는 데크가 보이자 빨려 들듯 계곡으로 향했다.


제주 용천수는 산물, 한라산에서 내려온 물이라는 뜻과 물이 쉴 새 없이 계속 솟아 흐르기에 살아있는 물이라는 뜻도 포함된다.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는 저류지에 널펀펀한 암반이 펼쳐져 있다니 시야가 훤히 트이지 싶었다.


허나 여기도 역시 숲 전체에 동백나무 조록나무 녹나무 등 수목이 너무 우거져 계곡은 잘 안 보였다.


상록수림 지대라는 팻말 이끄는 대로 내려가자 이번엔 난데없이 청청한 대밭이 펼쳐졌다.


이쪽 길은 아무도 안 다닌 듯, 곳곳에 무당거미가 큼직하게 거미줄을 쳐놓기까지 해 더 으스스했다.


창고천 생태공원은 전체적으로 사람 손길은 물론 발길이 덜 미쳐 지나치게 적적했다.


환경보전 측면에서는 잘된 일이지만, 게다가 공원 가꾸기 내지 공원관리는 영 미흡한 편이었다.


안내문 따라 이리저리 오르내리면서 생태공원 대략 섭렵은 했으나 걸린 시간은 얼마 안 된다.


한 장소에서 평균 머문 시각이 그만큼 짧았던 셈.


까닭은 워낙 주위가 음산하니 후미져서이다.


탁 트여 전망 좋다면 발걸음 느긋해지련만, 오죽하면 폭염 기승부리는 날씨에도 도망치듯 숲길 빠져나오기 바빴으랴.


여기부터는 창고천 생태공원과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진  안덕계곡이다.


겨자빛 신록 번지는 사월에 방문해 보고 구월에 다시 찾았으니 5 개월여 만이다.


안덕계곡으로 내려가니 상록수림 녹음  여전 욱욱했다.


산천은 의구하니 더 보탤 거 없으므로 단지 이번엔 전번과 달리 입구가 다를 뿐일까.


그 무엇도 고정불변한 것은 없다 하였듯 안덕계곡 또한 변치 않았을 리 만무.


초목 무성해져 그때보다 계곡 풍광이 한층 더 장엄해 보인 거 외에도 어이 또 없으랴.


태풍이 몰고 온 폭우에 바윗덩이마다 물길에 이리저리 쓸렸을 테고 벼랑 바위 몇 쪽은 떨어져 내렸을 터.


몇 차례 폭우에 씻긴 계곡은 그래도, 수세미질 팍팍해서 닦아낸 주방 싱크대와도 같이 말갛다.


앞뒷문 활짝 열어젖히고 대청소 깔끔 맞게 한 다음 맞바람으로 잘 환기시킨 교실과도 같다.


다만 아직 웅덩이 물 충분하게 여과되지 않아 투명하지는 않았다.

안덕계곡 상록수림은 국가지정 문화재 천연기념물 제377호다.


담팔수, 보리장나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붉가시나무 등이 군락 이뤘다.

그만큼 어둑신한 계곡은 으슥할 정도로 깊고 그윽했다.


아득한 선사시대를 주제로 한 한국판 SF 영화 촬영지로 쓰임 직한 골짜기였다.


널펀펀한 암반 쓰다듬으며 계류 흐르고 계곡 양편 둘러싼 기암괴석 즐비하게 시립해 있었다.


안내문 때문일까.

양치식물 너울대는 사이로 반 벌거숭이 고대 부족이 툭 등장할 거 같았다.

토테미즘 같은 거석신앙을 받드는 원시인들과 곧장 조우할듯한 분위기.

아니나 다를까, 말로만 듣던 그늘집 터가 연달아 모습 드러냈다.

바위 그늘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반 동굴 형태의 주거지가 아아아~외치듯 크게 입을 벌리고 나타났다.

겨우 눈비나 피할 자그마한 공간이지만 그래도 집터여서인지 아늑해 보였다.

유타주의 캐년랜즈에서도 비슷한 모양의 옛 주거지를 본 적 있는데 여름철 그곳은 완전 모기 소굴이었다.

널찍은 했으나 눅눅하고 침침하던 캐년랜즈와는 달리 옹기종기 서너 명 살림터로는 깔끔 졌다.

생활의 필수조건인 식수도 절벽 틈에서 졸졸 흘러내리니 안성맞춤, 이만하면 거주여건 대충은 갖춰진 장소다.

탐라시대 후기 아치형 주거지로 적갈색 토기와 곡물을 빻는 공이돌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안덕계곡의 백미인 깎아지른 수직의 암벽 주상절리대가 압도해 왔다.

반반하게 대패질 잘 된 대형 각목이 다발로 서있는 절리대 표면은 매끈했다.


주상절리를 바로 곁에서 손으로 쓰다듬어 볼 수 있는 기회란 어디에서도 그리 흔치가 않아 벽면 수행자처럼 오래 암벽 앞에 서있었다.


안덕계곡 구간은 비교적 짧지만 이리 임팩트 대단한 공간도 드물 지 싶다.


용암 절리가 무너지며 만들어낸 계곡 아래 오목한 물웅덩이마다 소이루고 물길 열어 흐르는 계류소리 청량히 여울졌다.


데크길 끝나 나들목 빠져나오자 이 물줄기 계속 더 따라가 보고 싶어졌다.


하천 범람 때마다 물 가득 채워지면서 깊이가 제법 돼 짙는 녹색 물빛을 띤다는 올랭이소는 별도로 탐방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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