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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27. 2024

Who am I? 24601?

레미제라블

사람과의 만남이 아니라도 왈칵 반가움이 일었다.


얼마 전 동네 브로바드 선상 카페에서 위 포스터를 만나면서다.


여름방학을 마무리하는 선물로 자녀들과 함께 볼만한 뮤지컬인 <레미제라블>이다.


아주 한참 전 머더스데이 때 필라델피아에서 보았던 포스터 디자인 그대로인 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오월 찬란한 햇살이 무색하리만치 월낫 스트릿에 서있는 쇄락한 극장 입구에 저 포스터는 도배하듯 좌악 붙어있었다.


어둑컴컴하니 후진 극장 외관과는 달리 무대는 장중하면서도 정교했으며 카리스마 넘치는 장발장과 쟈베르의 연기는 객석을 압도하며 긴장케 했다.


1830년대 비참한 군중들의 삶이 질척거리며 펼쳐졌고 혁명 전야의 생동감 흐르는 젊은이들의 희망찬 합창은 압권이었다.


그날의 뮤지컬이야말로 대단한 흡인력으로 우리를 온전히 옭아매었다.


연출자의 절제된 기량이 돋보이던, 후다닥 변화하는 놀라운 무대장치며 세심히 재연시킨 의상과 소품이며 가히 환상적이던 무대조명.


그 무엇보다도 신비로울 정도로 섬세한 소프라노, 강한 의지의 바리톤, 힘차고도 부드러운 테너, 조화로운 삼중창 합창곡까지 오페라처럼 완벽히 소화해 내는 탄탄한 배역들이 돋보였다.


청순한 코제트의 노래도, 가엾은 미혼모 팡틴의 유려한 목소리도 매혹적이었지만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시켜 주는 자베르 경감의 눈빛 연기며 탐욕스러운 여인숙 부부의 수선스러움은 극에 잔재미를 더해주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한동안 발잔의 고뇌 어린 노래 '나는 누구인가?'의 여운에 파묻혀 지내기도 했다.


나는 누구인가, 묻고 또 물으면서.


진작에 한국 공연도 있었다는데 포스터 속 코제트는 도대체 얼마나 여럿일까.


대여섯 살 코제트 역을 맡아 처연스레 노래 부르던 당시의 소녀는 이제 숙녀가 되었을 것이다.


물아일체가 되어 오롯이 빠져들었던 그날의 기억이 포스터로 인해 되살아나며 동시에

엊그제 본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It's a story


이 이야기는


Of one who turned from hating


증오에서 벗어난 한 사람의 이야기란다.


A man who only learned to love


그 사람은 사랑하는 법을 배웠지.


When you were in his keeping.


널 만나면서부터


코제트 널....



죄수 번호 24601


장발장 그리고 마들렌   


Who am I?


나는 누구인가?


진짜 어느 것이 나인가?


장발장의 그 대사를 나에게도 적용시켜 거듭 던져보는 질문... 질문.... 나는 누구인가?


아주 오래 전인 학창 시절 위고의 장발장에 빠져들어 밤을 밝혀가며 그 책을 읽었다. 


몇 년 전 머더스데이, 선물 받은 티켓으로 필라에서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았는데 엊그제는 작년부터 보고 싶어 찜해놓았던 뮤지컬 영화를 거실 티브이에서 만났다


그 158분 동안 나는 온전히 다른 세상에 편입되어 있었다


구원이란 바로 그런 거, 사랑이란 바로 그런 거였다


한마디로 벅찬 감동 그 자체였다.


몇 번이나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던 눈물.


레미제라블은 볼 적마다 영혼을 울리는 감동의 대작이었다.


사랑과 용서, 구원과 희망을 노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프랑스 최고의 작가 빅토르 위고가 무려 30년 간의 구상 끝에 반평생에 걸쳐 완성한

소설 <레미제라블>은 1862년 4월 3일, 11개국에서 동시 출간되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초판 인쇄본이 일주일도 가지 못하고 전부 매진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의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휴 잭맨).

우연히 만난 신부의 손길 아래 구원을 받고 새로운 삶을 결심한다.

정체를 숨기고 마들렌이라는 새 이름으로 가난한 이들을 도우던 장발장은 운명의 여인,
판틴(앤 해서웨이)과 마주치게 된다.


죽음을 눈앞에 둔 판틴은 자신의 유일한 희망인 딸 코제트(아만다 사이프리드)를 장발장에게 부탁한다.

그러나 코제트를 만나기도 전에 경감 자베르(러셀 크로우)는 장발장의 진짜 정체를 알아차린다.

오래전 누명으로 다시 체포된 장발장은 코제트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탈옥을 감행하는데…



원작 ‘레미제라블’의 배경인 19세기의 파리, 그러나 촬영은 거의 영국에서 진행되었다.

무대의 작품을 대형 스크린에 옮기는 작업은 말 그대로 큰 모험이었다.  

커다란 배를 수리하는 작업에 동원된 수많은 재소자들과 섞여 있는 장발장을 클로즈업시키는 장면에서다.


평소에도 선박의 수리를 위해 쓰였던 이 공간에 물을 채워 재소자들이 수리할 배를
뭍으로 끌어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 장면을 위해 제작진은 180미터 길이에 15미터 높이의 보트를 항구로 옮겨야 했다.

이후 영국 최고의 세트장인 파인우드 스튜디오에는 프랑스 예술가인 구스타브 도어의 작품을 참고하여 선착장과 공장, 그리고 역사적인 부둣가의 장대한 세트가 8주에 걸쳐 만들어졌다고.

판틴의 육체적, 정신적 쇠락을 보여주기 위한 이 공간을 위해 여러 미장공과 목수, 조각가, 해양전문가들이 투입되어 실제 항구의 냄새와 비슷한 고약한 냄새 또한 세트장에 진동케 했다.

이처럼 썩어가는 낡은 배들과 진흙 범벅의 도시의 모습을 통해 판틴의 존재감이 얼마나 비참해졌는지를 확실하게 표현했다.



이제까지 우리가 만나온 모든 뮤지컬 영화들은 배우들이 미리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녹음한 후, 몇 개월 뒤에 상대 배우와 함께 연기를 펼치며 립싱크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반면 영화 <레미제라블>은 뮤지컬 영화 역사 사상 최초로 라이브 녹음을 시도했으며 매 테이크마다 배우들은 세트 바깥에 있는 피아니스트의 반주에 맞춰 실시간으로 노래를 불렀다.

외부 촬영 시에 배우들은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이어폰을 꼈다고 한다.


피아니스트들은 모니터를 통해 배우들이 제대로 노래하고 있는지, 그들의 동작과 멜로디와 템포가 맞는지 지켜보며 배우들의 감정과 속도에 맞춰 피아노 연주를 진행했다.

이렇듯 어렵게 영화를 만든 톰 후퍼 감독은
“<레미제라블>에는 여러 감정을 담아야 하는 장면들이 있다. 나는 연기자들이 연기를 하면서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하길 바랐다.”라고 밝혔다.



토니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연기는 물론 뮤지컬 배우로도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휴 잭맨.

엑스맨 시리즈로 널리 알려져 있는 그는
드라마 스쿨 과정을 마치고 첫 오디션에서 영화 <레미제라블> 속 자베르의 노래 ‘Stars’를 부르기도 했다.

판틴 역의 앤 해서웨이의 경우, 그녀의 어머니가 바로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판틴 역을 한 적이 있었다.

7살 정도였던 앤 해서웨이는 어머니를 따라 뮤지컬 레미제라블 공연장을 수시로 찾았으며 카메론 매킨토시는 그녀로 어린 코제트 역으로 세울까 고민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 밖에도 코제트 역의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열한 살부터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열렬한 팬으로, 열다섯 일 때 학교의 뮤지컬 공연에서 코제트 역을 맡은 적도 있었다.

자베르 역의 러셀 크로우는 아주 오래전, 호주 뮤지컬을 준비 중인 카메론 매킨토시 앞에서 오디션을 본 적이 있다.

또한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에디 레드메인)를 짝사랑하는 에포닌 역을 맡은 사만다 바크스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이미 에포닌 역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던 배우다.

게다가 ‘역대 최고의 장발장’이라 불리는 콜 윌킨슨이 영화 <레미제라블>에서는 세상 모두에게 외면받는 장발장을 유일하게 보듬어주는 미리엘 주교로 등장한다.


한동안 영화의 여운에 잠겨 지내던 나는 거듭거듭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진짜 어느 것이 나인가?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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