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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Oct 04. 2024

비숍은 아스펜 축제 중

주말에 Aspen을 보러 Bishop으로 향했습니다.

고도 8천 피트 이상의 산지 물가에서 자생하는 아스펜.


가을이 되면 노랑 옷으로 성장하고 아주 잠깐, 눈부신 축제를 펼칩니다.


주말이나 맞춰야  다녀갈 수 있는 비숍인데 절정의 시기가 정확히 주말이란 법도 없어 겨우 찾아왔다가도 헛걸음하기 다반사.

비숍 크릭으로 들어서, 먼저 Sabrina Lake을 찾았는데 이미 단풍 말짱 진 다음이었습니다.

마른 낙엽 내음만 음미하고 돌아서자니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니었지요.

재작년에도 지난해에도 시기를 놓쳐 빈 숲에 이는 바람소리만 듣고 왔었거든요.

아늑하게 싸 안긴 Aspendel 마을은 기온이 덜 낮았던지 이제 막 아스펜 순노랑으로 익어가는 중이기에 맥 빠진 기분 그나마 약간은 만회할 수 있었습니다.

먼 길 왔으니 다른 호숫가도 마저 둘러보기로 하고 South Lake으로 갔습니다.

산 하나 휘돌아 넘어갈 정도의 거리인데 이곳은 길가 초입부터 여기저기 노랗게 물든 아스펜이 반겼습니다.

수천의 금빛 촛대 위에 일제히 불이 켜진 듯 비숍의 시월 숲은 눈허리 시도록 환했습니다.

싱잉볼 혹은 유리 종소리를 닮은 샛노랑 아스펜. 


온 천지에서 실로폰 소리가 들리는 거 같은 산기슭에는 가을 양광 따스히 내려앉았습니다.

두껍게 입은 재킷차림이 무색하게 바람결도 부드럽고 날씨는 아주 온화했습니다.

사철 하얀 눈 얹은 채 높직이 둘러선 암봉들 위로 창천은 구름 한 점 없이 청청했습니다.   

일단 호수까지 올라가 주차시키고 비숍 패스 접어들어 트레킹 좀 하다가 적당한 곳에서 되돌아섰습니다.

좀 전에 보았던 아스펜 단풍이 눈에 밟혀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있었으니까요.

뷰포인트마다 폰으로 풍경과 자신을 담는 사람들, 삼각대 세우고 사진 찍는 작가들이 꽤 됐습니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이번 주말이 아스펜 단풍맞이 시즌의 최적기였더라구요.

요행스럽게도 제대로 때맞춰 비숍을 찾은  셈이었더군요.

추색(秋色)의 향연은  바야흐로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제 사진 실력으로는 실제 아름다움의 백분의 일도 표현 못 해서 그렇지, 자연이 빚어낸 명작에 환호하며 탄성 지르고 싶은 충동, 골골에서 일었답니다.

숨 막히는 도취이자 전율이고 아예 혼절해 버릴 듯한 미감의 극치를 누가 완벽히 다 담아낼 수 있을까요.

 고흐는 아를르에서 본 풍경의 아름다움을 1%도 자신의 화폭에 담아내지 못했다고 토로했습니다.

하물며 기록용 사진이나 찍는 제가 감히 욕심낼 걸 욕심내야겠지요.

비숍의 아스펜 축제에 동참하여 그 아름다움 만끽하며 마음에 새긴 걸로 만족하고 감사할 뿐이랍니다.

며칠 새로 아스펜 잔치 마무리되고 말 테니 노랑나비 떼 가뭇없이 스러지기 전 부디 캘리포니아에 사는 이웃들은 비숍으로...  


오래전 어느 가을, 온양에서 문학 세미나를 마치고 모두가 인근 맹사성 고택을 방문했습니다.

청백리로 길이 역사에 남은 명정승의 고택 앞마당에 선, 우람한 '맹씨행단' 은행나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신라금관 영락처럼 잎잎이 황금빛 찬연해 절로 두 손 합장하게 만들던 은행나무.

우수수 바람 일적마다 금가루처럼 날리던 은행잎의 감동이. 하이 시에라 아스펜에 겹쳐졌습니다.

만추의 은행잎이나 시월 아스펜이나 노란색 중에서도 순수히 밝은 노랑, 투명한 영혼같이 맑은 빛깔이지요.

가을이 주최한 빛의 축제에 초대받아 빈객 되었던 그 하루, 넘치는 은총을 느꼈습니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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