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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판 Sep 02. 2021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

나는 아직 삶을 모른다

사랑의 서사에는 외로움이 있다. 처음 외로움의 구멍은 아주 작다. 그 외로움을 누군가 파고든다. 그리하여 그에게 빠진다. 그는 떠난다. 그가 떠난 자리에서 큰 구멍을 발견한다. 그 구멍을 메울 수 없어 물끄러미 보다가 그것을 같이 보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다시 흠뻑 빠진다. 서른 즈음 상황은 달라진다. 이를테면 서른의 사랑은 분리다*. 삶의 영역에서 사랑의 영역을 분류하기. 이것은 있는 것, 저것은 없는 것, 그것은 어쩌면 가져갈 수 있지만 챙기려면 좀 버거운 것, 버겁기에 철저히 외면해야 하는 것. 그것들을 분류한 뒤 메울 수 없는 구멍의 일부분을 다른 것으로 채우고 나머지를 사랑의 자리로 남겨둔다.


나는 아직 사랑을 모른다. 평생이 지나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만의 사랑법을 정했다. 그것은 정말 자기애적이어서 내가 사랑의 풍파를 다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풍파를 더 세게 맞는 것은 상대였다. 전부 용납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런 사이에 상대를 욕하고, 깎아내린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것은 너여야만 한다는 생각. 그렇지만 상대도 곧장 나여야만 한다는 생각.


내가 신을 믿지 않는 이유는 간절히 빌어도 소원을 이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신은 나이고, 그것을 구도하는 것도 나이다. 이 단순한 진실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린다. 앞에서 밝은 미소를 하고 있는 사람도 뒤에서는 어떤 고통으로 표정을 찡그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때로 어떤 고통은 자신이 짊어지려고 한 것이 아님에도 짊어지게 된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철저히 계급이 존재하는 인도처럼, 우리도 갖고 있는 서로의 고충의 크기가 다르다. 이 난해함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도울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도와야 한다면 나를 가장 먼저 도울 것이고, 그 다음에 손이 미칠 수 있는 곳이 다른 사람일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살아가지만 여전히 사랑은 어렵다.


*“서른의 사랑은 포옹이다.”,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 정유정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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