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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슷 Feb 22. 2024

길 잃다의 다른 말, 탐험하다

마이클본드 <길 잃은 사피엔스를 위한 뇌 과학>

나는 겁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하다. 그중 많이 하는 상상은 내가 겁내는 상황이다. 그 상황이 떠오르면 최악의 최악까지 상상한 뒤 그런 상황을 위해 대비책을 마련해 놓으려고 머리를 쓴다. 대비책을 마련하면서 또 여러 가지 설정을 추가해서 상황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어본다. 여러 가지 만들다 보면 어떤 상황이든 같은 결론에 다다른다. 내가 상상하지 못한 시나리오도 있을 것이며, 이미 내가 상상한 시나리오들을 전부 대비하려면 인생을 전부 무언가를 대비하기 위해서만 써야겠네? 불가능하구나.라는 결론에 말이다. 어느 날에도 무서운 상황을 상상하다가 똑같은 결론에 이르려는 찰나,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 내가 정신만 차리면 되겠구먼?'


그래서 갑자기 뇌에 관심이 생겼다. 정신과 뇌는 분명 연관이 있을 테니까. 친구를 만나러 가기 전 시간이 떠서 도서관을 구경하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제목보다도 소제목이 끌렸다. <길 잃은 사피엔스를 위한 뇌과학 - 인간은 어떻게 세상을 탐색하고 방랑하는가> 세상, 탐색, 방랑? 뭐야 내 취향 키워드잖아.



책에 의하면 인간은 원래 탐험가이며 길을 찾기 능력은 생존 본능이자 추상적 사고, 상상력, 기억력 등의 인지 능력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특히 놀랐던 것은 내가 영국 드라마 셜록홈스를 보고 꼭 배우고 싶었던 '기억의 궁전'이 이 길 찾기와 기억력을 연관시킨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특히나 여행지에서의 길 찾기는 그 지역 사람들과 교류하며, 문화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면서 그 지역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gps가 발달된 지금, 우리는 가지고 있는 길 찾기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여 뇌 기능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여행과 길 찾기 관련 내용이 나올 때 머릿속에 느낌표가 떠올랐다. 그래! 맞아! 내가 핸드폰 로밍하지 않고 여행 가고 싶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거였어!!


나는 꽤 오래전 휴학하고 40일, 30일 동안 해외여행을 하면서 핸드폰을 로밍하지 않았던 적이 있다. wifi가 되는 곳이 있을 것이고, 그때 당시 로밍이 지금처럼 싸지도 않았을뿐더러 장기 여행이고 국가 이동도 있어서 애매했다. 그 시절에는 나처럼 여행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지 인터넷에도 로밍하지 않고 여행을 할 수 있는 정보가 많았다.


시간이 흘러 그 여행들을 추억할수록 나에게는 그 시간들이 정말 큰 행운이었다고 자주 생각했다. 위험했을 수도 있지만 믿을 것이 나밖에 없었기에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열심히 살피면서 다녔다. 평소에는 주변을 잘 안 보고 다니는데 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 여행을 떠올리면 어느 랜드마크보다도 그 랜드마크를 보러 가던 길이나, 길에서 했던 생각, 지도가 업데이트되지 않아 그 지역 사람들에게 물어봤던 상황들, 사람들이 지나다니던 풍경, 새로웠던 마을이 떠오른다. 랜드마크야 지금도 인터넷에 검색하면 볼 수 있지만 내 생각이 묻어있는 그 길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오로지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낯설기만 했던 공간들이 내가 담긴 장소가 된 것이다.


나에게 여행이 큰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후에는 "나에게 여행이란?" 이 질문에 대답을 내리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까지는 낯선 것을 낯설게, 익숙한 것도 낯설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이제 문장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낯선 것은 낯설게, 익숙한 것도 낯설게 볼 수 있는 탐험"이다. 나는 탐험이 하고 싶다. 주변에 물어보고 내가 직접 눈에 담으며 길을 찾는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그런 탐험 말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장기여행에 나는 또 로밍을 하지 않고 여행을 하고 싶다. 지도를 다운로드하여놓고 돌아다니고 싶다. 여러 길을 통해 숙소에 가보고 싶다. 곳곳을 돌아다니고 싶다. 목적지를 향해 다양한 길을 알아내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니 여행을 다녀와서 내가 다닌 길의 지도를 그려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래는 내가 특히 인상 깊었던 문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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