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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슷 Feb 05. 2024

[돈벌이 찾기] 불안의 세월 다 보내고

퇴사한 지 1년 반이 넘어간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호기롭게 썼던 글이 생각난다. 난 프리랜서로 일할 거라고. 그 패기에 내가 짓눌렸다. 내가 너무 작고 초라했다. 이전 직무가 프리랜서로 가능한 직무도 아닌데 언감생심이다, 꿈도 크지 속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그래, 일단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돈은 벌어야지. 일단 내 경력을 더 살릴 수 있는 걸 선택하자. 인생은 기니까. 살다 보면 또 찾을 수 있을 거야. 


라고 나를 다독이며 전공 수업 들을 때 너무 재미없어 평생 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아무도 비웃지 않았는데 공부하면서 자주 민망했고 멋쩍은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살다 살다 내가 이걸 하고 있다니. 


자격증은 획득했다. 경력도 있고 자격증도 있으니 이제 지원할 일만 남았고 구직사이트에 들어가서 관심 있는 산업, 경력을 잘 살릴 수 있는 직무에 지원을 했다. 과거의 오만함에 지금의 내가 상당히 창피하게도 지원하면 당연히 될 줄 알았다. 나는 최소 1인분의 일을 해내는 사람이니까. 근거 없는 자신감과 자부심에 돌돌 말려있었다. 결과는? 탈락. 자신감과 자부심에 돌돌 말려 멍석말이당했다. 


초라해진 자아와 현타의 시작과 함께 반년은 아팠다. 겨울이면 종종 찾아오던 비염이었지만 이번엔 여름부터는 차원이 달랐다. 2-3일 약 먹으면 괜찮아지는 질환이었는데 약을 먹지 않으면 일상이 불가능했다. 심지어 내 몸이 유난히 비염약에 취약했는지, 비염약을 먹은 날의 반나절은 몸에 힘이 쭈욱 빠진 상태에서 잠들었다. 먹고 나면 2-3일 괜찮고, 또 앓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냈다. 뭔가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한 채로.


최근까지도 비염이 심했다. 이비인후과도 다녔는데, 약 먹으면 그때뿐. 큰 차도는 없었다. 이렇게 평생 비염과 함께 해야 한다니, 그러니까 내 컨디션은 전의 컨디션으로 회복할 수 없는 걸까? 난 돈도 벌어야 되는데. 더 복잡해졌고, 훨씬 무서워졌다. 불안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진짜 아픈 거 맞아? 취직하기 무서우니까 회피하는 거 아니야? 자책했다. 괘씸하기까지 했다. 그저 나를 할퀴기 위해서 질문을 던졌다. 아픈 게 죄도 아닌데 형벌을 내리듯이. 오히려 마음에도 상처를 내니까 후련했다. 


시간은 내가 아프다고 해서 기다려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겁만 더 났다. 퇴사 끝에는 뭐가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오랜 시간 쉰 '나'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서러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퇴사 후 보낸 시간들은 대체로 행복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은 나를 '무언가'로 만들지 못했고, 이제는 불안감을 느끼도록 나를 벼랑 끝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차라리 후회라도 하면서, 지나간 시간들을 원망하고 괜히 베개에 주먹질이라도 하는 것이 나았을까. 


그러던 12월 초, 엄마가 진지하게 물었다. 혹시 공무원 준비할 생각이 없느냐고. 마지막으로 지원해 줄 테니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공무원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생 때 예습하는 마음으로 내 전공도 아닌데 법전공 수업을 몇 개 듣기도 했다. 엄마가 알고 있는 나의 성향과 공무원이라는 직무가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도 미래가 안 보이는 때라 엄마의 제안이 솔깃했다. 하지만 주변에 이미 공무원이 되신 분들에게 물어보고, 수험생활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내가 감히 엿볼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제안이 나에게는 찬물 같았는지, 정신이 번뜩 들었다. 아 내가 지금 징징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냥 뭐라도 해야 한다. 그런 생각들이 나를 깨웠다. 


1월이 되고는 이렇게는 살 수 없다. 구정 전에 비염과 끝장을 보겠다며 한의원도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어제 오랜만에 비염약을 먹었다. 한의원 진료를 받아보니 여러 가지 신체 기능이 떨어졌다고 했다. 이 또한 많이 회복했다. 


몸은 많이 괜찮아졌다. 마음도 대체로 평온하다. 본격적으로 돈벌이를 찾기 위해 글을 남긴다. 어떻게 내가 평온을 되찾았는지, 어떻게 돈벌이를 찾아가고 있는지 미래의 나를 위해 기록하겠다는 각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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