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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슷 Mar 28. 2024

[쓰밤발오2] 레미제라블을 2.5권째 읽는 중

얼마 전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봤다. 기대 없이 보러 갔다가 벅차올라서 나왔다. 기대하지 않았던 건 고전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뻔하게도 극장을 나올 땐 괜히 '고전'이 아니구나라는 상투적인 말이 절로 나왔다. 역시 오랜 시간 사랑받은 문학이니 후기도 많고 평점도 높은 보장된 작품이었다. 


오랜 기간 사랑받았다는 말은 오래전에 쓰였다는 말이다. 지금을 살고 있는 나와는 도덕적 감수성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당연히 그 차이를 감안하고 읽어야 하지만,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감동의 눈물을 흘렸어도 현재의 내 자아를 완전히 죽일 수 없어 여전히 속상한 마음을 지우지 못했다. 물론 이 마음과는 별개로 정말 대단한 극이다. 


2024년 목표 중에 하나는 토지 읽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는데, 벅차오르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일단 소설 레미제라블 책부터 빌렸다. 민음사의 5권짜리 시리즈. 지금은 3권의 중반까지 읽었고, 고비가 찾아와서 이 글을 쓰는 중이다. 부디 5권까지 무사히 다 읽길 바라면서 말이다. 


읽으면서 빅토르 위고의 필력에 놀라고, 그리고 이 방대한 내용을 3시간짜리 뮤지컬에 담은 각색한 사람에게 놀랐다. 책을 3권째 읽는 중인데도 나는 아직 뮤지컬의 1막 중후반만 보고 있는 셈이다. 뮤지컬을 볼 때도 등장 시간을 떠나서 각 인물이 살아있으며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느꼈는데 책의 목차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인물마다 한 권 분량의 서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얽히고설켜있는 이 복잡한 관계가 매끄러울 수 있다니 더 놀라웠다. 한 명의 캐릭터에 대해서만 당시 프랑스의 시대상, 성격 등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쓰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작가는 등장인물의 삶을 다 살아본 것처럼 자세하게 썼다. 아마 나는 나로 살고 있는데도 저렇게 한 권에 녹여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뮤지컬을 볼 때 꼭 원작을 읽어야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아마 레미제라블을 요약하라고 하면 뮤지컬 줄거리를 쓰면 될 정도로 잘 각색되었다. 뮤지컬 자체의 이야기만으로도 완벽하다. 삭제된 내용을 책으로 읽으며 뒷 이야기를 몰래 듣게 된 것 같은 친근감과 더불어 어떻게 삭제를 하고도 이해할 수 있도록 요약했나 싶어 감탄하기 일쑤였다. 원래 책 보다 뮤지컬을 더 좋아하는 나에게는 좋은 노래들과 익숙한 뮤지컬식 문법으로 고전을 맛볼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고 행복한 경험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고비가 찾아왔냐. 

3부의 중심인물인 마리우스에 대한 애정이 없다. 책도 장발장으로 유명하지만, 뮤지컬은 아예 장발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리우스도 당연히 등장하는 주요 인물이지만,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그의 전사 내용을 읽고 있자니, 사회생활하듯 '아 진짜요?'만 외치면서 속으로 하품을 삼키게 된다. 지루하다. 2권에서 프랑스 역사와 수도원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찾아온 고비다. 그래도 2권에는 장발장이 계속 나오는데, 지금은 (아직까지는) 마리우스만 나온다. 새삼 소설 속 주요 인물들에게 갖는 애정의 크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아, 내가 프랑스 역사에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도. 나는 우리나라 역사를 좋아하는 편이라, 학창 시절 친구들이 역사 재미없다고 할 때마다 이해할 수 없었는데. 몇 년이 지나 이제야 이해한다. 역사라고 다 재미있는 건 아니구나.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5권 다 읽어 내고 싶다. 읽으면서 대문호의 필력에 자주 감탄하고 싶다. 나도 매일 쓰다 보면 그 필력의 발톱만큼은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에 차고 싶다. 무엇보다 천재가 내놓은 작품을 소비하는 건 늘 즐거운 일이기도 하니까. 성취감도 엄청날 것 같고. 그래서 포기하지 말라고, 중간 점검 하는 의미에서 글을 적는다. 격려 차원에서. 


다 울었니? 그럼 다시 책을 읽어보자. 


장발장씨 또 언제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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