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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슷 Apr 23. 2024

[쓰밤발오28] 수면 복 많이 받으세요

내가 가지고 있는 복 중 제일은 잠을 잘 자는 복이다. 아무리 근심걱정이 나를 흔들어도 때가 되면 고요하게 잠을 잘 잔다. 심지어 청춘이니까 공항 노숙도 해봐야 한다면서 여행하던 시절, 공항에서 의자를 붙이고 편안히 잠을 자는 나를 보며 허리디스크가 있던 내 친구는 내가 많이 얄미웠다고 한다. 심지어 그땐 13시간 비행이면 밥 먹는 시간 빼고 전부 잠을 자기도 했다. 낮잠 말고는 잠이 안 온다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축복받은 사람이었다.


어제 쓰밤발오를 쓰고 누웠는데, 내 심장소리가 너무 크고 가슴이 답답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심호흡도 해보고, 신체에 힘을 빼준다는 4초 들이마시고 7초 멈춘 뒤 8초 동안 뱉는 숨쉬기도 해보고, 유튜브에서 명상도 해보고, asmr도 틀어봤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셔츠 입은 남자들이 셔츠를 뜯으며 상탈 하듯 상의를, 아니 갈비뼈 위 가죽을 뜯어야 심장이 덜 답답하려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킹콩이 된 것처럼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쳐보기도 했다. 소용이 없었다.


몇 달 전에도 한 번 또 이랬다. 그냥 잠이 안 왔다. 이게 정말 돌아버리는 일이라는 걸 내가 겪어보고 알게 됐다. 잠을 청하는 모든 시간이 고통이다. 이 정도 눈감고 있으면 잠이 들어야 하는데, 내일의 일정을 생각하면 지금 잠들어야 하는데,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잠이 오는 것이 아니라 걱정만 나를 찾아온다. 초대하지 않은 불쾌한 손님이 따로 없다. 그렇다고 일어나서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애매하다. 잠들기 시도라도 계속해야 하는 시간에 다른 일을 시작했다가 오고 있던 잠이 달아나버릴 수도 있다. 더 갑갑한 건 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제는 그냥 불을 켜고 새벽에 아침 루틴을 미리 시작했다. 영어를 하고, 스페인어를 하고, 책도 읽었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빌린 또 다른 책을 읽었다. 40분쯤 읽고 난 후에 하품이 나길래 바로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잠을 자려는 시도라도 했으면 더 일찍 잠에 들었을 수도 있지만 가보지 않은 길이니 알 턱이 없다. 중요한 건 더 짧게 깨어있더라도 훨씬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미리 아침의 일을 해두고 아침에 자면 되지! 하니까 오히려 웃음이 났다. 아침에 할 일 미리 새벽에 하는 사람? 저요!


어제의 일은 아침에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백수라서 가능하긴 했지만 교훈은 얻었다. 앞으로 잠이 안 올 때면 마음이라도 편하게 먹는 방향으로 생각의 흐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비상용 철학책을 침대 옆에 구비해 두는 것도 좋겠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하는 순간부터 눈이 꿈벅꿈벅하더니 하품이 났다. 잠자리에서 읽는 책은 잠을 재우는 보약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마음의 양식이자 잠의 보약이라니. 책, 정말 소중하다.


그래도 잠은 어두울 때 자야 한다. 11시까지 잤으니 6-7시간은 잔 것 같은데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뇌에는 무슨 안개가 낀 듯 자주 멍해진다. 생각은 녹슨 기어 맞물리듯이 삐걱삐걱하다 턱턱 걸리며 원활하게 흐르지 못한다. 무엇보다 평소보다 더 예민해져 사소한 것에도 짜증이 자주 났다. 잠을 잘 자야지. 복이 따로 없다. 다행히 지금, 졸리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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