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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슷 May 01. 2024

[쓰밤발오36] 지독하다 지독해

영화 <스타이즈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영화 <스타이즈본>을 봤다. 어찌나 지독한 사랑이던지......


새벽에 수영하러 갈 때 이미 해가 떠서 밝은데, 달이 여전히 하늘에 남아있을 때가 있다. 스위치를 누르면 해나 달이 하늘 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건데도 아침에 달을 보면 그렇게 신기하다. 그런 날의 달은 유난히 더 밝다. 이미 하늘이 밝아져서 그런가? 괜히 달한테 마음속으로 '나 수영하고 올게 고생했어'라는 말을 남기고 수영장으로 들어간다. 수영을 끝내고 나오면 달은 사라져 있고, 건물보다 더 높게 솟은 태양 때문에 눈이 부시다. 영화를 보자마자 이 풍경이 떠올랐다. 잭과 앨리의 사랑이 그 풍경과 닮았다. 해가 떠오르며 함께 하게 된 해와 달, 어쩐지 더 밝다가 져버린 달.


외모에 자신이 없던 무명 가수 앨리가 노래하던 클럽에 유명 가수 잭이 오던 날, 둘은 사랑에 빠진다. 잭은 앨리의 재능을 알아보고 사랑을 담아 가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사랑이 커지면서 앨리는 점점 가수로서 인정받지만, 잭은 그 옆에서 어렸을 때 받은 치유되지 않은 상처, 가수로서 느껴지는 질투심, 계속 앓고 있던 정신병과 알코올 중독으로 점점 무너져간다. 결국 잭은 앨리의 가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는 실수를 하게 되고, 다시 일어서려고 했지만, 또다시 앨리를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누군가를 만나 평생 몰랐을 수도 있는 슬픔과 아픔을 겪더라도 그 만남에 감사하게 되는 사랑. 너무 아파서 '내가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을 괜히 던져보지만, 그 만남이 없는 나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 만남으로 인해 새롭게 색칠된 나까지도 사랑하게 만드는 그런 사랑. 선택하지 않은 길은 유난히 매력 있어 보인다는데 지금의 선택이 아프더라도 최선이라고 느껴지게 만드는 지독한 사랑. 떠나서 생긴 빈자리가 결코 텅 비지만은 않은 사랑. 이런 사랑을 참 좋아하는데, 이 영화에 담겨있어서 좋았다.


처음엔 앨리가 왜 저런 알코올 중독자와 사랑에 빠지는 건데! 하며 머리에 띠 두르고 반대하려다가 조용히 숨죽이며 영화를 끝까지 봤다. 지독함이 마음을 울리는 순간들이 슬프지만 충만했다. 영화에 흐르는 감성들을 고스란히 담은 음악들이 영화를 본 지 한참 된 지금까지도 그 감동을 이어주는 점도 좋다.


마지막 장면이 지금보다 덜 슬퍼질 때 한 번 더 보고 싶다. 뜨거운 여름밤에 보는 것도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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