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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슷 May 27. 2024

[쓰밤발오62] 함께 살아갈 순 없을까

책 ⌜제노사이드⌟를 읽고,  책 내용의 스포가 담겨있습니다. 

이른 감이 있지만 벌써 선정해 본다. 올해의 책으로. 680쪽이나 되는 책을 읽으면서 단 한순간도 지루한 순간이 없었다. 약학과 생물학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없어 그 부분은 이해가 어려웠는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영화를 글로 읽는 기분을 경험할 수 있으니 몰입할 책을 찾고 있다면 추천한다. 읽으면서도 너무 좋아 책을 몇 번이나 끌어안았는지 모른다. 


일단 재밌다. 무거울 수도 있는 이야기에 재밌다는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재밌다. 추리 소설처럼 계속 궁금증을 자극한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등장하는 장면들 전부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그려져서 현장감까지도 느껴진다. 책이 원작인 영화를 보기 전에 단 한 번도 책을 먼저 읽어 본 적이 없어, 책의 팬들이 영화에 실망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인지는 알 수 있게 됐다. 영상으로 상상하게 되는 힘이 대단하다. 그래서 내용이 취향이 아니었더라도 흥미롭게 다 읽었을 것이다.


책은 인간, 구조 속에서의 인간, 그리고 그 구조를 각각 다루면서도 인간과 사회구조의 관계까지도 잘 녹였다. 내가 좋아하는 소재여서 더욱 흥미로웠다. 각 개인은 각자의 환경 속에서 자란 보통사람들이다. 환경도 다르고 기질도 다르니 다양한 모습으로 각자가 속한 크고 작은 구조 속에서 살아간다. 누군가는 보다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또 누군가는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상황에 뛰어든다. 반면 또 누군가는 '상상력이 결여된' 채로 본인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는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이 모습은 그들의 기질, 환경, 구조가 만들어낸다. 그리고 또 이 모든 사람들이 만든 어떤 구조는 다른 집단을 학살을 간접적, 직접적으로 일삼는 거대한 조직으로 변하기도 한다. 책에 이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나있다. 흥미 있어하는 분야라 내 평소 고민을 다시 던지면서 읽었다. 


세상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선한 쪽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사회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좋다. 성장하는 환경과 구조는 어떻게 바뀌어야 기질을 잘 갈고닦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선을 추구할 수 있을까? 물론 여기서 '선'이 어느 정도를 말하는지부터 이야기되어야 하겠지만, 그 심오한 토론은 여기서 차치하고, 여기서는 제노사이드라는 악행까지 저지르는 '함께' 살아가는 것을 선이라고 생각해 보면 말이다. 책에서 이야기한 "과거 20만 년에 걸쳐 서로 죽이는 것을 되풀이해 온 인류는 항상 다른 집단의 침략에 떨었고 그 공포심이 더 큰 두려움을 초래하여 피해망상 직전의 상태를 유지하다가 국가라는 방위 체제를 만들어 현재에 이른" 인류가 피해망상 직전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전쟁이 사라지는 쪽으로 기울기 위해서는 무엇이 준비되어야 하는가? 


이 책에서는 그 답으로 신인류가 나온다. 그들이 희망이라면 현 인류에게는 희망이 없는가? 그들과 협력하는 방법이 생길 수 있을까? 질문을 던져보지만 희망찬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지금 현재에도 지구에서는 책 속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거라는 생각만 든다. 신인류가 이미 있는지, 나타날지 정보도 없고 나도 지구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이니 신인류에게 마나 기대할 수 없다. 일단 나부터 희망에 닿지는 못 하더라도 방향은 그쪽으로 틀자.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각자 개인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그나마 선한 쪽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나는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가. 


이 답을 책에서 반면교사 삼기에 좋은 인물인 미국 대통령 번즈에서 먼저 찾아보자. 책에서는 번즈를 상상력이 결여된 보통사람이라고 한다. 미국의 대통령은 직접 전쟁을 수행하지 않으니 전쟁터에서 물리적, 심리적으로 거리가 멀다. 그래서 전쟁이 어떤 피해를 끼치는지 상상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가 속해있던 환경이나 구조 속에서 상상하는 법을 아예 잊었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는 목숨을 걸고 사람을 구하려는 주인공을 생포해서 시리아에 고문을 외주 삼아 넘기려고 한다. 주인공을 막으려면 그냥 사살해도 되는데 고문을 하겠다는 건 괴롭히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심지어 직접 괴롭히는 것도 아니다. 본인은 그저 '시라이에 넘기라'라는 명령만 하기에 죄책감과 책임감에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다. 상상력의 결여는 결국 잔인함에 도달한다. 어디선가 공감능력의 부재는 상상력이 없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 우리는 다른 집단의 인간을 수단화하지 말고 공감능력을 활용하여 목적으로 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사회나 개인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아직 답은 내리지 못하고, 계속 질문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던져보는 중이다. 이렇게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주면서도 재미까지 잃지 않은 책이 오랜만이라 반갑고 좋았다. 평생 이런 책만 읽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만나는 사람마다 꼭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이 나에게 던진 질문과 방향성을 늘 생각하며 나도 성찰하며 살기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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