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제 꽃이 다 사라졌네."
아파트 단지 안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봄꽃들이 이제 정말 다 져버리고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에 몇 떨기만이 드문드문 남아있었다.
3학년 딸아이가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설 때, 나도 함께 나간다.
5분 정도, 우리는 손을 잡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아파트 단지 안을 걸어간다.
아파트 후문에 있는 헬스장 앞에서 아이는 학교로 나는 운동을 하러 가기 위해 헤어진다.
"아가, 오늘은 학교가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마친다고 하니까 하교하는 대로 집으로 곧장 와."
학교 행사 관계로 3학년은 목요일에 한 시간 일찍 마친다는 안내가 요 며칠 알림장에 매일 기록되어 있었다.
"알았어, 엄마. 엄마도 운동 잘해."
해사한 얼굴이 아침 햇살에 더욱 빛난다.
아이가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나는 운동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전은 나만의 시간이다.
운동하고 난 뒤 개운한 기분으로 읽고 싶은 책을 두 세권 뽑아 탁자 위에 두고 교대로 읽는다.
오늘은 오랜만에 집중이 잘 되었던지 시간이 한참 흘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벌써 시곗바늘은 오후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딸아이가 곧 올 시간이다. 부쩍 커가는 아이의 식욕을 채워주려 과일과 빵을 준비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딸아이는 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30분이나 지났는데, 전화도 없고 집에도 안 오네.'
늘 학교를 마치면 전화를 하던 아이인데.
불안한 마음에 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학부모인데요. 오늘 3학년이 한 시간 일찍 마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아직 집에 오지 않아서요."
"아, 그런가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네..."
확인을 하는지 잠시 시간이 흘렀고,
"네. 아이들 아까 모두 하교했다고 합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몇 달 전, 초등학교에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고, 평소 범죄 심리에 관심이 많아 관련 프로그램을 자주 봐왔던 터라 짧은 시간 동안 온갖 상상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듯 일어나고 있었다.
이를 어쩌지. 학교를 찾아가야 하나. 동네를 샅샅이 뒤져야 하나.
머릿속이 하얘졌다.
학교도 안전한 곳이 되지 못한다는 깨달음을 갖게 했던 사건이 자꾸 떠오르면서 불안감은 공포심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그때,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님, 아까 잘못 말씀드렸어요. 오늘은 정상수업을 하고 기존대로 하교합니다. 아까 말씀하신 공개수업은 오늘이 아니라 다음 주라고 합니다. 이제 곧 마칠 겁니다."
전화를 끊고 학급 알림장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다.
나는 알림장에서 '목요일'만 보았지, 날짜까지 꼼꼼히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4일 전부터 '목요일 시정 변경'이라는 안내문이 계속 올라왔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이번 주 목요일이라고 생각했다.
날짜를 확인하니 다음 주 목요일이었다.
나는 왜 보고 싶은 대로 보았던 것일까.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마음이 진정되었다.
잠깐 사이 지옥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이제 범죄 관련 프로그램을 덜 보아야겠다.
가뜩이나 걱정이 많은 성격이기도 해서, 평소 아이들에게 과하게 조심시킬 때가 많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걱정하고 불안해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면 그러지 않는 편이 낫다.
세상은 내가 보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보인다.
그래서 저마다의 세상은 모두 다르다.
힘들어도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충분히 가졌음에도 세상을 원망하는 사람이 있다.
아름다운 것을 더 많이 보아야겠다.
내가 보고 그리는 세상이 아이에게 영향을 줄 테니까.
세상의 아름다운 면만 보기에도 짧은 인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