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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와피아노 Mar 16. 2023

빨래가 얄밉다.

어떻게 한 단어에 담을 수 있어?

 목소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내면을 돌볼 줄 알아서일까? 내 글쓰기 낭독 수업, 일명 '내글방낭'을 듣는 사람들 모두 성품이 좋았다. 만나고 싶었다. 줌으로 만나는 게 성에 안 찼다. 그래서 1월에 춘천에서 만남도 가졌고, 더 나아가 이 사람들을 무대에 세워주자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이다. 리더는 사람을 세워주는 사람이니까. 나를 믿고 수강해 준 사람들에 대한 보답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생각한 것을 바로 추진하는 나한테 놀라고 있는 요즘! 고마워서 낭독회를 만들어볼까 했던 생각에서 어느새 난 액션을 취하고 있었다. 책상에 앉아 밤을 새우며 무대를 구상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영상을 만들고, 사회 대본을 외우고, 연습을 시키고... 책상에서의 일이 이런 거라면 현장에서는 직접 발로 뛰어야 했다. 아무리 검색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세상이라도 눈으로 보는 것만 할까. 직접 공연장 가서 답사하고, 뒤풀이할 식당을 찾아 헤매 다닐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동네 가서 식당을 찾으려니 그날 하루에 2만보를 걸었다면 얼마나 걸었는지 알 법하지 않은가?


나의 열정과 그 마음을 알아준 출연진들의 마음이 합해진 덕분에 공연은 정말 성공적으로 끝났다. 뒤풀이 장소는 겉으로 볼 때는 1층만 있는 줄 알았는데 지하에도 있어서 우리만의 독무대가 되어 낭독회에 대한 피드백도 진지하게 나눌 수 있었다. 낭독회라는 단어를 보니 그 뒤에 숨은 작업들이 얼마나 많은데 낭독회라는 단어 하나로 끝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빨래가 떠올랐다. 




평상시 빨래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단어 뒤에는 흰색, 검은색 옷 분류하기, 세탁기 돌리기, 다 된 빨래 꺼내서, 널든지, 건조기 넣든지, 그리고 개서 옷장에 넣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줄여 '빨래'라는 한 단어로 불리면 끝이라니! 이 복잡다단한 여러 과정을 담은 동사들은 쏙 빠지고 빨래라는 명사 하나에 담는다는 것이 너무 날로 먹는 기분이랄까? 그렇다고 색깔 분리해, 돌려, 꺼내, 널어, 걷어, 개! 이러느니 차라리 빨래 한 단어가 적당하긴 하구나하는 마지못한 결론에 이르니 피식! 웃음이 났다. 왜 시비 걸고 혼자 웃고 난리야. 


그러고 보니 인생은 어떤가? '으악'할 정도로 너무 엄청나게 날로 먹은 단어가 여기 떡하니 있었구나. 그 어느 인생도 단지 인생이라는 한 단어에 담을 수 없을 텐데. 하지만 복잡하게 말해 뭐 할까. 그 많은 과정의 동사를 열거하지 않아도, 인생이라는 것이 묵직하게 확 와닿는 걸. 그냥 이해가 돼 버리는 단어가 바로 인생이다. 


낭독회, 빨래, 인생뿐일까? 모든 명사가 동사로 살아서 다가온다면 우린 아마 날아오는 동사에 깔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를 일이다. 명사 뒤의 동사가 이렇게 쉽게 떠오르는데 하물며 어떤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면 그 마음은 또  어떤가? 그건 온 우주가 숨어있기에 그냥 한 사람의 이름으로만 불려지는 것일 거다. 누군가 내 이름을 떠올렸을 때 이유 없이, 소리 없이 웃음 지을 수 있다면 난 그걸로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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