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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와피아노 Mar 28. 2023

금지한 것들에 대한 유혹

"아포가토 주세요!"

나는 30대 초반에 태국에서 지냈다. 음악 선교사로 태국의 한 신학교 음악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태국에서 지내기 전에 아버지 같은 신학교 학장 목사님은 건강이 최우선이라면서 출국 전 몇 주간이라도 한의원에 다니라며 소개를 해주셨다. 그곳에서 만난 한의사 선생님은 "뚱땡이 할머니 되고 싶으면 찬물 드세요!" 하는 경고성 쐐기를 박았다.


겨울에도 얼음을 와그작거리며 씹어 먹는 나였었는데. 이때 당시 내 몸무게가 40kg 초반이었는데도 그런 충고를 준 거 보면 찬 음료의 저력은 그렇게 무서운 건가 보다 했다. 난 그 충고를 존중해서 365일 여름여름인 태국에서도 따뜻한 물을 마셔야만 했다.


지금은 낭독을 하기 때문에 목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찬물은 입에도 대지 않게 되니 자연 뚱땡이 할머니로부터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어 다행이다. 그런데 지나는 길에 내 눈을 사로잡은 파스쿠치! 아직도 혼자 카페 가는 게 망설여지는데 나도 모르게 내 두 발은 그곳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아포가토 주세요."

                                                         "드시고 가세요?"

                                                              "당근요!"


꽤 오래전 아포가토 맛을 알게 해 준 잠실에 있던 한 파스쿠치. 그동안 아포가토를 잊고 있었다. 한데 지난달 낭독회에서 봄을 쌉싸름하고 달콤한 아포가토에 비유한 표현을 듣게 되었다.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어 올봄에는 아포가토를 꼭 먹어봐야겠다 하는 결심까지 세웠다. 그래서 오늘 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파스쿠치를 보며 운명이라는 생각에 나는 지나치게 저돌적으로 주문을 했던 것이다.


나 스스로 차가운 것을 금지한 이래 지금껏 참아온 것에 대한 보상이나 하는 듯 입으로, 눈으로, 온몸으로 느껴봐야지 하고, 우선 핸드폰을 꺼내려는데 차에다 두고 온 것이다. 다시 가기에는 너무 멀고. 설상가상으로 십여 년만에 맛보는 아포가토는 이미 에스프레소가 뿌려진 상태로 나와버렸다ㅜㅜ


  '아~ 이게 아닌데... 모든 게 완벽하지 않아, 내 뜻대로 되는 건 없어.'


일단 자리로 와서 아이스크림을 작게 한 스푼 뜨고 에스프레소에 적신 후 입에 앙! 물었다. 입 안에서 스르르 녹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부드러움과 진한 에스프레소가 섞인 커피 아이스크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난 그 순간 달콤 쌉싸름한 봄을 맛보았다.


이 기분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얼른 카운터로 가서 종이와 볼펜을 빌렸다. 면적 넓은 노트를 내밀어준 덕분에 미리 부은 에스프레소의 기억은 순간 삭제가 됐다. 다시 자리로 와서 내 앞에 놓인 아포가토를 그리고, 이 글을 써 내려갔다.


모든 것이 글감이 되는 요즘. 나는 점점 작가의 자세로 변모하고 있다. 그리고, 피아노를 공부했던 예전보다 더 예술가로 물들고 있는 중인 거 같다. 그러는 사이 아이스크림이 많이 녹았다. 이제 한 동안 못 먹을 거라는 생각에 이 맛을 잊지 않으려고 한 스푼 한 스푼 천천히 음미하며, 감탄하면서 그렇게 기분 좋게 아껴 먹었다.


방금 전 목의 이물감 때문에 이비인후과를 다녀오던 길이라 내 양심에 눈물로 호소했다. 소확행 파스쿠치 아포가토를 한 번만 눈 감아 달라면서.  마지막 남은 국물까지 호로록 마시고 사뿐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금지한 것들에 대한 유혹의 달콤함이 바로 이런 건가 보다^^!


<폴러리에 녹음한 것도 들어보세요~>

https://www.porlery.com/cast/593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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