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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와피아노 Jul 12. 2023

남편이 명퇴를 했다

눈물이 난다, 기대돼서

* 사진의 시는 시인 선우미애 님 시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



드디어 남편의 퇴직원이 수리되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인데 순간 '이제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올 것이 왔구나 했다.

날짜만 되면 착착 들어오던 월급도 없을 테고, 나가야 하는 보험금과 공과금은 우리를 옥좨올 수도 있다.

아직 뭐가 될지 기대되는 20대가 아닌 이 철없는 50대 부부는 이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루가 지나서 퇴직원을 취소한다면? 하는 생각을 하니 진저리가 처졌다.


남편은 눈 안 보인 후 살아남는 길은 오직 교사가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맹학교 고등부 입학에서부터 사범대를 졸업하기까지.

10년간 공부한 끝에 교사가 된 것인데.

쓰레기 같은 사람들 때문에 보장된 직장을 때려치워야 하는 것은 억울한 일이었다.

선생으로서 가장 하고 싶은 학생을 가르치는 일도 못 하게 하고, 안마와 침을 놓는 임상실 운영도 못 하게 팔, 다리를 다 잘라 놓은 상태였다.

자연스레 왕따 만들고, 그런 곳에서 남편은 투명인간 노릇 밖에 할 게 없었다.

그런 쓰레기통 같은 곳에서 20년을 허우적거리며 지금까지 참아온 남편이 너무나 가엾고, 불쌍하다.


그 고통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사회생활 다 어려워. 조금 더 참아봐."

하지만 그러다 죽으면 무슨 소용인가?

누구를 위한 인내인가? 죽기 위해 참으라는 소리 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몇 년 전부터 명퇴를 종용했고, 20년이 채워진 올해가 돼서야 명퇴 신청을 했고, 수리가 된 것이다.

20년이란 세월이 짧은 것은 아니니까 순간 울컥할 수 있겠지...


미련은 없다.  

남편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준 것이라고.

그가 하고 싶은 일!

사람을 가르치고, 침을 놓으면서 아픈 사람을 고치는 일을 하며

날개를 달고 날아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희망 앞에서 눈물이 나는 것은 슬퍼서가 아니다.

기쁘기만 한 일도 아니지만, 아파할 일은 분명 아니다.

기대해 보자.

이보다 더 힘들지는 않겠지.

이보다 더 더러운 세상은 아니겠지.

이보다 더 괴롭힘 당하는 일은 없겠지.

학교만 아니면 늘 좋은 사람들, 도와주고자 하는 분들이 훨씬 많았으니까.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버리는 것이다.


우리에겐 최대의 터닝 포인트가 될 시점.

50대에 또다시 청년이 된 기분이다.

20대와 다른 점은 많은 실패를 통해 얻은 연륜과 경험, 자신감, 조금의 자금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알기에 지금이라도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서두르지 말자. 심장아 나대지 말아라.

바른 푯대를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 앞에 놓인 그 길을 똑바로 갈 수 있을 테니까.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이기지 않고 행복하다.

누운 풀처럼 행복하다.


그래서 눈물이 나는 거다!!


*아래 폴러리 '나무와 피아노'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porlery.com/app?type=cast&id=594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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