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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와피아노 Jul 27. 2023

춘천행 전철을 기다리며

상봉역에서 만난 참새떼

춘천에 온 지 10년이 넘어가다 보니 그렇게 길눈이 환한 나지만 복잡한 서울 지하철이 꽤나 헷갈린다. 특히나 회기역 이후 북쪽으로는 서울에 살 때도 가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예전부터 생경했던 곳이다. 그래서 이곳은 꼭 전철 노선도 앱을 열고 봐야 한다. 가끔 itx-청춘 기차를 놓치면 춘천 가는 전철로 대신할 때 청량리든, 상봉이든 어차피 같은 노선인데도 다르게 알려줄 때가 있어 매번 헷갈린다.


오늘도 그랬다. 회기에서 급행이 있었는데 결국 놓치고 제일 확실한 코스인 상봉에서 춘천 가는 전철을 타기로 결정했다. 내리자마자 바로 1분 뒤에 춘천행을 갈아타면 됐다. 앗싸! 어, 근데 시간이 지나도 전철이 안 온다. 아뿔싸, 플랫폼이 다른 곳이었다.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처음 프랑스 파리에 갔을 때 종이  지도만 보고도 사람들을 인솔할 정도로 길이 빠삭했던 나였는데ㅜㅜ 


춘천이란 글자를 확인하고 승강장 벤치에 앉았다. 2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바람 한 점 없다. 얼굴에 땀은 흥건했고, 너무 더워 말할 힘도 없었다. 6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벤치에 사람들이 금세 꽉 찼다. 그들의 체온으로 더 더워졌다. 옮길까 하다 이미 너무 많이 걸은 상태라 그냥 앉아 있었다.


그때 어느 할머니가 덥다고 말을 하니 어느 할아버지가 "덥다 덥다 하면 더 더워요."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바람이 불었다. 뒤에 앉은 할머니 부채바람에 나까지 시원해졌다. 그 옆에 앉아 계신 또 다른 할머니가 "덕분에 나도 시원해지네. 고맙습니다."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전철을 기다리며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참새떼 같았다. 나이를 먹으면 모르는 사이라도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지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마치 유치원 아이들처럼. 어느새 전철이 왔다. 참새떼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모습도 웃기면서 귀여웠다.


지금은 썰렁한 전철 안에서 손 시려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땀도 식고, 이전의 노곤함도 없어졌다. 다만 참새떼들의 따뜻한 말만 남았다.

"덕분에 시원해졌어요, 고마워요."


<폴러리 나무와 피아노>

내용을 녹음했습니다. 들어보세요~

https://www.porlery.com/cast/5942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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